중국 배터리 '물량 공세'에서 품질 개선으로 전략 전환, K-배터리에 위협 커져

▲ 중국 정부가 자국 배터리 기업들의 생산 확대를 지원하는 대신 품질 및 기술 강화를 유도하는 쪽으로 정책을 변경하고 있다. 중국 CATL 배터리 생산공장 내부 사진.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정부가 물량 공세에 집중하던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리튬이온 배터리 산업 전략을 품질 개선 및 기술력 강화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한 시장 점유율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판단에 따라 고품질 배터리로 해외 수주에 집중하며 한국 배터리업체를 향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20일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 정보산업부는 이날부터 리튬배터리 사업에 관련한 새 가이드라인을 시행한다. 해당 정책은 5월부터 논의가 시작돼 약 1개월만에 적용됐다.

새 가이드라인은 중국산 배터리가 글로벌 시장에 공급과잉을 주도하며 가격 하락을 이끌고 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추진돼 왔다.

이에 따라 배터리 생산량 확대를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중국 기업의 시설 투자가 제한된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전기차와 배터리를 주요 정책적 산업으로 점찍고 투자 보조금 등으로 자국 제조사의 생산설비 구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앞세워 왔다.

CATL과 BYD 등 중국 기업은 정부 지원금에 힘입어 최근 수 년 동안 배터리 생산량을 공격적으로 늘리며 한국 경쟁사들을 제치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 선두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중국이 배터리 ‘덤핑’을 유도한다는 비판이 커졌고 미국 정부는 실제로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 수입 관세를 기존 7.5%에서 25%로 인상했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배터리 생산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은 결국 이러한 사례가 세계 여러 국가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부로 분석된다.

정보산업부는 이번 가이드라인의 목적이 중국 배터리 업체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동안 이어진 물량 공세로 중국 기업들이 충분한 시장 점유율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는 판단에 따라 그 다음 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중국 배터리 산업이 성장세를 이어가려면 내수시장을 넘어 해외 전기차 고객사의 수주 사례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품질 경쟁력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테슬라를 비롯한 글로벌 상위 전기차 제조사는 최근 중국산 배터리 채용 비중을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주력 상품에는 대부분 한국이나 일본 기업의 배터리를 쓰고 있다.

중국산 배터리가 대부분 주행거리 등 기술 사양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뒤떨어지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중국 기업의 배터리를 선호하지 않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CATL과 BYD 등 중국 상위 업체는 최근 주행거리를 높인 신형 배터리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며 전고체 배터리와 나트륨이온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 연구개발에도 힘을 싣고 있다.

중국 정부도 정책적 가이드라인을 통해 이러한 기업들의 기술 발전 노력을 돕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가 중국의 배터리 산업 정책 변화에 따라 중국 경쟁사들과 더 치열한 수주 대결을 벌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배터리 '물량 공세'에서 품질 개선으로 전략 전환, K-배터리에 위협 커져

▲ 중국 CATL의 배터리팩 전시장 사진.

중국 제조사들이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과 생산 능력을 확보한 데 이어 한국 배터리업체의 기술 우위마저 따라잡기 시작한다면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 기업들은 주로 내수시장 고객사 확보에 집중해 왔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시장에서 한국 업체들과 직접적으로 대결하는 사례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며 자동차 제조사들이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국산 배터리 채용을 확대하는 추세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한국 배터리 3사는 미국과 유럽에 생산공장을 운영하거나 신설하며 현지 전기차 제조사의 수요에 대응 능력을 키우고 있다. 각국 정부 지원을 통해 수주 경쟁력도 높아졌다.

중국 정부를 등에 업은 배터리 기업들의 공세를 방어하려면 주요 고객사들과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기술 격차를 벌려 추격에 거리를 두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

정보산업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앞으로 매출의 3% 이상을 기술 발전 및 연구개발 예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또한 에너지 밀도 등 여러 기술 사양에 일정 수준 이상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정부의 새 정책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게 기여할 것”이라며 “이는 중국의 배터리 과잉 생산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점도 보여준다”고 전했다.

다만 중국 정부의 이번 정책은 주로 경쟁력이 낮은 중소 배터리업체를 겨냥하는 성격이 강해 CATL과 BYD 등 상위 업체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