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원전으로 울다가 웃는다, 박정원 SMR 파운드리로 그룹 위상 되찾는다

▲ 두산그룹의 원전 사업이 효자로 거듭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두산그룹의 경영난과 그룹 침체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원전 사업이 최근 그룹 위상 회복의 효자 노릇을 할 노른자로 거듭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화석연료 감축과 인공지능(AI) 산업 활성화에 따라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대규모 전력 수요를 감당할 전력원으로 세계 각국이 원전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이전보다 원전 기자재 사업 수주확대 여력이 커진 상황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주 성과를 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28일 원전 기자재 업계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두산그룹 주력 계열사인 두산에너빌리티가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의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두산 원전으로 울다가 웃는다, 박정원 SMR 파운드리로 그룹 위상 되찾는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사진)이 전력 수요 증가에 힘입어 원전 수주 확대를 꾀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협력사인 미국 SMR 개발업체인 뉴스케일파워는 미국 IT인프라기업 스탠더드파워에 24기의 SMR을 공급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협의가 거의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두산에너빌리티도 뉴스케일파워를 통해 원전 주기기 등 기자재 납품을 진행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9년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뉴스케일파워에 지분투자를 한 뒤, 현재까지 국내 투자사들과 함께 1억4천만 달러의 지분 투자를 하며 뉴스케일파워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뉴스케일파워가 스탠더드파워와 추진하는 프로젝트 규모가 약 370억 달러(5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두산에너빌리티는 약 2조 원의 기자재를 납품할 것으로 전해졌다. 

스탠더드파워의 SMR 도입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면서 AI 서비스 등 IT인프라를 확장하는 데 전력원으로 원전이 최적이라는 것을 입증한 사례라고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암스테르담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일반 구글 검색은 1회당 0.3Wh의 전력이 소모되지만, AI 기반 검색엔진은 그 10배인 3Wh가 소모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맥심 세레친 스탠더드파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뉴스케일파워와 SMR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하며 “AI 컴퓨터와 데이터센터 관련 전력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새로운 기저부하(전력수요가 최소일 때도 일정하게 소비되는 발전용량)를 위한 선택지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케일파워의 SMR 기술을 결합하면 탄소배출량을 줄여 탈탄소 목표를 달성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연중무휴 IT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산 원전으로 울다가 웃는다, 박정원 SMR 파운드리로 그룹 위상 되찾는다

▲ 뉴스케일파워의 소형모듈원자로(SMR) 플랜트 조감도. <뉴스케일파워 홈페이지 갈무리>

두산에너빌리티는 또 다른 미국 SMR 개발업체 엑스에너지와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회사는 2021년 엑스에너지가 추진하는 고온가스로 방식 SMR 제작 설계에 참여하며 협력을 시작했다. 2022년에는 엑스에너지와 지분투자, 핵심 기자재 공급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세계 SMR 시장에서 파운드리(위탁생산)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비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대만 TSMC가 위탁생산을 통해 시장 입지를 키웠듯이, SMR 개발업체들과 협력하며 제작 분야에서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복안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SMR뿐 아니라 기존 원전 분야에서도 수주 잠재력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에는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1호기용 피더관 제작 공급계약을 맺기도 했다. 피더관은 원전 주요 설비 가운데 하나로 원자로 온도를 조절해 주는 냉각재 배관이다.

현재 회사는 한국수력원자력 등 팀코리아와 함께 체코, 폴란드, 영국, 아랍에미리트(UAE),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스웨덴, 네덜란드 등에서 원전 수주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총 30조 원 규모의 체코 원전 수주전에서 한국과 프랑스가 최종 후보로 올랐는데,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한국이 앞서 수주가 유력한 상황이다. 체코 정부는 오는 7월 최종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 또 폴란드 원전도 수주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수주 잔고는 약 15조 원이다. 
 
두산 원전으로 울다가 웃는다, 박정원 SMR 파운드리로 그룹 위상 되찾는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13일(현지시각) 체코 프라하에서 두코바니 원전사업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열린 ‘두산 파트너십 데이’ 행사에 참석해 한국-체코 정부, 기업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영기 주 체코 한국대사, 토마스 에흘레르 체코 산업부 부실장, 스캇 박 두산밥캣 부회장, 페트르 트레쉬냑 체코 산업부 차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정연인 두산에너빌리티 부회장, 밀란 시모노브스키 CPIA 의장, 안세진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국장, 박인식 한수원 수출사업본부장. <두산그룹>

원전 사업은 두산그룹에는 아픈 기억이 있는 사업이다. 탈원전 영향으로 경영이 크게 타격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탈원전 추세가 강했던 2010년대는 두산그룹 경영난 심화했던 시기였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과거 두산중공업 시절인 2014~2019년 6년 동안 단 한 해도 순이익을 내지 못하고 적자를 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0년 차입금 상환이 어려워졌고, 결국 두산그룹은 채권단 관리체제에 들어가게 됐다. 

두산그룹은 2022년 채권단 관리체제를 졸업하고, 경영정상화에 성공하긴 했다. 하지만 과거 그룹 위상을 완전히 되찾았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두산그룹은 2000년대 이후 사세를 급격히 키우며 한때 재계 자산 순위 10위 내에 들기도 했지만, 2023년 기준으로 17위까지 밀려났다. 

박정원 회장은 '원전 르네상스' 시기를 맞아 그룹 위상을 되찾기 위해 원전 수주전에 직접 뛰어들며 현장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수원의 체코 원전사업 수주를 지원하는 행사를 직접 주관하고, 현지 업체들을 만나 사업 수주를 전제로 한 기자재 공급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박 회장은 지난 13일(현지시각) 체코 프라하 조핀 궁정에서 열린 ‘두산 파트너십 데이’에서 “두산은 해외수출 1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 성공적으로 주기기를 공급한 경험을 바탕으로 15년 만에 다시 도전하는 해외원전 수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