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현지시각으로 9일 헝가리에서 오르반 빅토르 총리와 국가 간 협력 강화 협정을 체결했다. <연합뉴스>
헝가리는 삼성SDI, SK온 등 한국 주요 배터리 제조사의 유럽 공략에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만큼 중국 경쟁사의 투자 확대에 따른 악영향이 미칠 공산이 크다.
블룸버그는 10일 논평을 내고 “중국과 헝가리가 보급형 전기차 분야에서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며 유럽과 미국 자동차기업이 경쟁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유럽 순방 일정에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를 만나 두 국가 사이 협력을 강화하고 다양한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 위한 협정을 체결했다.
두 국가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전기차 및 배터리 분야 협력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질 공산이 크다.
중국은 최근 전기차 관련 산업을 육성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헝가리는 유럽 자동차와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헝가리가 이미 삼성SDI와 SK온, 중국 CATL에서 200억 유로(약 29조5천억 원) 규모 투자를 유치한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며 가격 경쟁력에 주목했다.
헝가리에서 생산되는 전기차 배터리팩 평균 가격은 1KWh(킬로와트시) 당 105.7달러로 중국(104.5달러)와 거의 차이가 없고 미국과 독일(약 120달러)에 비해서는 낮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헝가리가 전력과 교통 인프라, 수자원 등 측면에서 많은 이점을 갖추고 있다며 인건비와 세율도 다른 국가보다 크게 낮아 해외 기업의 투자에 유리한 지역이라고 평가했다.
전기차 및 배터리 분야에서 이미 우수한 가격 경쟁력을 보이는 중국 기업들이 헝가리에 공장을 설립해 제품 생산을 시작한다면 유럽 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갖추게 될 공산이 크다.
CATL은 이미 헝가리에 73억 유로(약 10조8천억 원)를 들이는 유럽 최대 배터리 공장을 신설하고 있다. 벤츠와 BMW, 스텔란티스와 폴크스바겐 등 현지 고객사에 공급이 예정됐다.
중국 전기차 제조사 BYD도 이미 지난해 말 헝가리에 자동차 공장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시진핑 주석과 빅토르 총리의 협약에 따라 앞으로 중국 업체들이 헝가리에 전기차 및 배터리 생산 투자를 벌이는 사례는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자연히 헝가리에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며 유럽 시장 공략에 중요한 기반으로 삼던 삼성SDI와 SK온의 고객사 물량 확보에 부담을 키울 수밖에 없다.
폴란드 공장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해 유럽 자동차 제조사에 공급하는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중국 업체들의 유럽 진출 확대에 따른 타격을 피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CATL과 BYD가 제조하는 LFP(리튬인산철) 기반 배터리는 한국 배터리 3사의 삼원계 배터리와 비교해 단가가 낮아 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전기차 기업에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블룸버그는 BYD가 1만 달러(약 1368만 원)보다 낮은 가격의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 중국 CATL의 헝가리 전기차 배터리 공장 예상 조감도.
자연히 유럽에서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를 비롯해 현지 자동차 제조사들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격 경쟁에 직면하게 될 공산이 크다.
AP통신은 “BYD가 헝가리에 첫 유럽 공장 가동을 시작한다면 유럽 내 자동차 산업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바라봤다.
한국 배터리 3사가 이를 계기로 유럽에 의존을 낮추고 미국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럽과 달리 미국 정부는 중국산 배터리 및 전기차의 유입을 막기 위한 정책을 매우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는 이른 시일에 중국산 전기차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발표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은 모두 북미에 다수의 배터리 공장을 신설하며 완성차 제조사들과 협업을 통해 안정적인 수요 기반도 확보하고 있다.
결국 중장기적으로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의존을 더욱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북미와 유럽 국가들이 친환경 목표 달성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중국이나 헝가리를 뒤따라 더욱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라는 권고도 내놓았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