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지배구조 개편 본격화하나, 삼성물산 중심의 변화 가능성 촉각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삼성물산의 역할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에 일어날 변화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방향을 엿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덜게 되면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부담이 크게 줄었다는 시선이 6일 재계에서 늘어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는 전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이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놓고 무죄를 선고했다.

1심 판결인 만큼 검찰의 항소에 따라 재판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재판부가 19개 공소사실을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동안 이 회장이 지고 있던 사법 부담이 대체로 사라졌다는 평가에 무게가 실린다.

이 회장에 대한 기소를 이끌었던 이복현 금감원장조차 5일 판결과 관련해 “국제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삼성그룹의 위상에 비춰서 이번 절차가 소위 사법 리스크를 일단락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2020년에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로 이 회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이끌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하던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고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1심 법원의 판단에서 이 회장에 가장 힘을 실어주는 대목은 그룹 차원의 승계 작업을 놓고 그 자체로는 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재판부는 과거 ‘국정논단 사건’에서 대법원이 2019년 8월29일 선고를 통해 그룹 차원의 승계작업 사실을 인정한 판단을 놓고 “선행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재용의 지배권 강화가 위법·부당하다거나, 합병 과정에서 불법적 방법을 사용했거나, 삼성물산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다”고 바라봤다. 
이재용 삼성 지배구조 개편 본격화하나, 삼성물산 중심의 변화 가능성 촉각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1심 선고공판에서 무회 판결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승계 작업의 위법·부당성과 관련해서는 “기업 집단 차원에서 계열사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효율적이고 편의적인 사업 조정 방안들을 검토한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업무”라며 “지배구조 개선 검토가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삼성물산을 희생시키는 약탈적 승계 작업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1심 재판부의 판단에 따르면 이 회장이 앞으로 삼성물산 중심으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일을 진행하는 데에 법적 부담은 크게 줄어든 셈이다.

이 회장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보면 이 회장은 직접 18.1%, 일가 지분까지 포함하면 33.63%의 삼성물산 지분을 들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을,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전자가 삼성디스플레이 지분을 보유하는 등 방식으로 주요 계열사에 이 회장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 삼성그룹의 주요 지배구조다. 그룹 핵심 회사인 삼성전자만 보면 이 회장이 직접 들고 있는 지분은 1.63%에 불과하다.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놓고는 지배력의 취약성, 금산분리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만큼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도 삼성그룹에 지배구조 개편을 주문해 왔다.

삼성그룹 역시 2022년에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연구 용역을 발주해 보고서를 받는 등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놓고는 고심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삼성그룹 경영감시 역할을 하는 준법감시위원회도 3기가 출범하기까지 지배구조 개선에 해법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삼성그룹 내 기업들의 규모를 고려하면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개선에서 가장 단순하고 무난한 방법일 수 있는 삼성물산의 지주사 전환은 비용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대표적 해법이다. 관련 법에 따르면 지주사는 상장사 30%, 비상장사 50% 이상 지분을 확보해야 해 삼성물산의 지주사 전환은 삼성전자 등 지분 매입에만 100조 원 이상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우회적 시나리오로 삼성물산을 비롯해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지배구조에서 핵심적 위치에 있는 계열사들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해 합병하는 등 방식이 거론된다.

다만 상장사를 분할, 합병하는 과정은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한 만큼 지분 확보를 비롯해 새로운 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든 이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으면서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삼성물산의 역할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지배구조 개편이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필요한 일인 만큼 단기적으로는 과거 미래전략실 같은 그룹 콘트롤타워를 다시 꾸려 대응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5일 3기 활동을 시작하며 “콘트롤타워라든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이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