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세계 반도체 산업이 점차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파운드리(위탁생산)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 주도형 파운드리 기업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국가 주도로 TSMC 등 파운드리와 팹리스 반도체 산업을 키운 대만을 비롯해 최근 정부 주도로 파운드리 기업(라피더스)을 설립한 일본, 인텔 파운드리의 국가적 지원에 나서고 있는 미국, 막대한 예산 지원을 받아 메모리반도체는 물론 파운드리 산업을 키우고 있는 중국과 같이 정부 주도형 파운드리 기업을 설립해 대응해야 한다는 반도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성 파운드리 혼자론 역부족", 국가 주도형 KSMC 설립 주장 거세진다

▲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고분자공학부 교수가 지난 1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공학한림원 주최 ‘반도체특별위원회 연구결과’ 발표회에서 국가 주도형 파운드리 기업인 'KSMC' 설립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


1일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국가 주도형 파운드리 기업 설립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학계 전문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고분자공학부 교수는 최근 열린 한림공학원 주최 ‘반도체특별위원회 연구결과’ 발표회에서 "현재 한국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해 ‘KSMC’와 같은 공기업 형태의 파운드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비즈니스포스트와 전화 통화에서 “사실상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홀로 10나노 이하 첨단 미세 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KSMC를 설립해 10나노 이상 레거시-미들텍(구형 및 중급형) 반도체 공정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KSMC가 파운드리 생태계 형성을 주도해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집중하지 못하는 레거시 반도체 제조 공정을 담당할 수 있도록 돕고, 대만과 같은 다양한 팹스리(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을 키울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게 권 교수의 주장이다.

권 교수는 KSMC가 대만 TSMC 등 다른 나라 파운드리 기업과 첨단 미세 공정에서 경쟁하기 위한 기업이 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삼성전자나 TSMC와 경쟁을 목표로 KSMC를 설립해선 안된다”라며 “중단기적으로는 한국 팹리스와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의 안정적 구성,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의 한 축으로 거듭나기 위한 선투자 개념으로 KSMC를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 파운드리 혼자론 역부족", 국가 주도형 KSMC 설립 주장 거세진다

▲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중국경제금융연구소>


권 교수와 달리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국가 주도형 KSMC 설립을 통해 삼성전자의 첨단 파운드리 공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소장은 2022년부터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분사해 KSMC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전 소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전화 인터뷰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첨단 공정만 떼어내 KSMC로 독립시키는 것이 삼성전자 부담을 완화하고, 시장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라며 “첨단 파운드리 공정에는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한데, 여기에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KSMC에 대한 국가적 투자가 사기업보다 쉽고,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를 덜어 고객사 확보에도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KSMC 운영은 삼성이 담당하지만, 지분 구조를 삼성, 국민연금, 투자자 등으로 3분의 1씩 구성하는 방안을 주장했다. 국민연금 등 국가 자산과 국민 투자자가 포함된다면 국가 투자가 더 원활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첨단 미세 공정 기술을 지닌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분사해 KSMC로 전환한다면 해외 고객사 확보에도 더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모바일 프로세서(AP), CPU 등을 생산하는 상황에서 애플, AMD, 퀄컴 등이 자신들의 반도체를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맡기기 어렵다고 그는 덧붙였다.

인텔 전직 이사 4명 역시 지난 10월 미국 포춘지 기고문에서 “애플과 엔비디아 등은 삼성전자를 잠재적 경쟁자로 여겨 파운드리에 위탁 제조를 맡기는 것을 피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수율(완성품 비율) 등 기술력 문제는 고객사 확보에 가장 큰 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수율은 10개를 생산했을 때 9개가 완성품인지 6개가 완성품인지 문제인데, 완성품 품질이 동일한 이상 나머지는 기업 이익률 문제”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수율이 낮아도 완성품 품질이 같다면, 고객사가 수율에 상관없이 위탁생산을 맡기길 주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삼성 파운드리를 국가가 나서 구조조정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며 “삼성 파운드리는 3나노 이하 미세공정에서 TSMC와 기술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세계 유일한 업체이기 때문에 삼성전자 내부에서 경쟁력을 확보, 다시 세계 시장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