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덴마크 니스테드 인근 해상에 설치된 해상풍력 발전단지. <연합뉴스>
여기에 최근 미국 대선에서 재생에너지에 부정적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상황까지 고려하면 전 세계 해상풍력 기업들이 앞으로 당분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5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 최대 해상풍력 기업 ‘오스테드’가 부진의 늪에 빠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덴마크 국적인 오스테드는 2020년만 해도 기업 가치가 약 4584억 덴마크 크로네(약 92조 원)에 달해 영국의 석유공룡 BP보다도 높게 평가받던 기업이었다.
하지만 사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2024년 12월4일 종가 기준 오스테드 가치는 약 1583억 덴마크 크로네(약 31조 원)에 머물렀다. 기업가치가 약 3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이처럼 오스테드가 부진을 겪는 가장 큰 원인으로 경기 악화에 그에 따른 고금리 환경과 보조금 삭감이 꼽힌다.
오스테드를 비롯한 해상풍력 기업들은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저금리 상황이 어이진 덕분에 발전단지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비교적 수월하게 확보해 무난한 성장을 거듭해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19년 코로나 위기가 터지면서 경기가 악화됐고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부담이 커지고 각국 정부들이 보조금을 삭감하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성장 추세에 제동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채굴을 통해 에너지원을 얻는 화석연료와 비교하면 해상풍력은 발전단지 건설에 초기 투자 비용이 훨씬 큰 편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해상풍력 기업들은 각국 정부가 제공하는 보조금과 정책 대출에 힘입어 수익성을 확보해왔는데 이제는 이같은 사업 모델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이다.
글로벌자산운용사 LGIM의 기후솔루션 대표 닉 스탠스버리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계산 방식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재생에너지 사업들은 대체로 화석연료 사업들보다 금리 변동에 5~10배 가량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5일(현지시각)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덴마크 정부가 올해 4월에 고시한 발트해 해상풍력 사업에 입찰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덴마크 정부가 이번 사업에는 입찰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됐다.
▲ 미국 코네티컷주 뉴런던에 위치한 '레볼루션 윈드'사 해상풍력 발전기 조립 현장. 레볼루션 윈드는 오스테드가 지역 에너지 사업자 '에버소스'와 합작해 설립한 법인이다. <연합뉴스>
라스무스 에르보에 오스테드 최고상업책임자는 로이터를 통해 "금리 인상과 공급망 압박 등 리스크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도록 산업계와 정책결정권자들이 협력해 이같은 악영향을 완화하고 해상풍력 업계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악화되는 상황에 해상풍력 산업에 발을 들였던 여러 에너지 기업들은 연이어 사업을 철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 화석연료 대기업 ‘쉘’은 4일(현지시각) 해상풍력 사업 확대 계획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쉘은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우리는 기존 재생에너지 발전 플랫폼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새로운 해상풍력 개발을 주도하지는 않지만 상업적 조건이 호의적인 개별 사업에는 여전히 관심을 갖고 있으며 투자 조건이 호의적이라고 판단되는 사례가 있다면 지분 참여를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 10월에는 BP가 해상풍력 사업에 투자하는 자금을 줄이고 사업부를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BP 내부 관계자는 로이터를 통해 이미 올해 6월부터 해상풍력 관련 투자를 중단했고 9월에는 미국에서 진행하는 해상풍력 단지 건설 사업권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외에도 에퀴노르와 바텐폴 등 여러 기업들도 최근 시장 환경 악화를 이유로 들며 해상풍력 사업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스탠스버리 대표는 "해상풍력은 많은 비용을 절감을 이뤄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이뤄진 개선들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적었던 편"이라며 "앞으로도 개선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투자자들이 의문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신들은 최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를 거뒀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상풍력 업계의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에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공화당 내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당 방침에는 아직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어두운 전망을 반영하듯 미국 대선 전날이었던 11월5일 1주당 약 419 덴마크 크로네(약 8만4천 원)였던 오스테드 주가는 하루 사이에 약 366 덴마크 크로네(약 7만3천 원)까지 떨어졌다.
독일 에너지 대기업 RWE는 내년도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지출 규모를 삭감하면서 "(트럼프 당선으로)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향한 위험성이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RWE는 재생에너지 지출 금액이 100억 유로(약 15조 원)에서 70억 유로(약 10조5천억 원)로 약 30% 감소했다. RWE 측은 지난달 공식발표를 통해 삭감한 금액의 절반을 운영 안정을 위해 자사주 매입에 사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자산운용사 '나인티원'의 지속가능성 담당 디렉터 나즈미라 물라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오스테드가 걷는 길이 다른 모든 화석연료 기업들이 따라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것이 순진한 기대였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