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가 12단 HBM3E(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를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해, SK하이닉스가 주도하던 HBM 시장 주도권을 잡을지 주목된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반도체로 떠오른 HBM에서 SK하이닉스에 다소 밀린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적층 기술력을 앞세워 역전할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8일 반도체 업계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이르면 올해 9월부터 엔비디아에 12단 HBM3E를 독점 공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삼성전자는 곧 엔비디아의 12단 HBM 제품 독점 공급업체가 될 수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2월27일 세계 최초로 12단 적층 36GB HBM3E(5세대 HBM)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12단 적층 HBM3E의 샘플을 이미 고객사에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올해 상반기 양산에 들어간다.
HBM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도 지난 20일 “삼성의 차세대 HBM3E 제품을 현재 테스트하고 있고 기대가 크다”며, 삼성전자 HBM3E 12단 제품에 ‘승인(Approved)’이란 친필 서명까지 남겨 사실상 엔비디아가 삼성전자 제품을 납품받기로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했다.
사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엔비디아를 HBM 공급처로 뚫는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특히 4세대 제품인 HBM3은 오랫동안 엔비디아 신뢰도 시험(퀄리파잉 테스트)을 통과하지 못해, 대부분의 물량을 SK하이닉스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현재 엔비디아가 받는 HBM3의 90% 이상은 SK하이닉스 제품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2단 HBM3E 개발과 양산에서는 삼성전자가 앞서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월19일 HBM3E를 세계 최초로 양산해 3월 말부터 고객사에 제품 공급을 시작한다고 밝혔으나, 아직 12단 HBM3E 개발과 관련한 진척 상황은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가 올해 12단 HBM3E를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할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황상준 삼성전자 D램 개발실장 부사장은 지난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서 열린 글로벌 반도체 학회 '멤콘(MemCon) 2024'에서 “올해 HBM 출하량을 작년 대비 최대 2.9배 늘릴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친 것도 엔비디아 독점 공급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 삼성전자가 12단 HBM3E(사진)를 2024년 9월부터 엔비디아에 독점공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제품으로, 단수가 높아질수록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양이 증가하고 속도는 빨라진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양산을 시작한 HBM3E는 8단이다.
다만 HBM은 구조 상 낸드플래시와 마찬가지로 단수가 높아질수록 웨이퍼가 휘거나, 반도체 다이가 깨져 불량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게 핵심 기술력이다. 삼성전자는 필름의 두께를 줄이는 ‘어드밴스드 비전도성접착필름(TC NCF)’ 기술을 활용해 반도체 적층 수를 늘리면서도 높이를 유지해 ‘휘어짐 현상’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당분간 HBM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양분하는 그림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후발주자인 미국 마이크론은 물량과 수율(완성품 비율) 측면 모두에서 뒤처지는 만큼, HBM3E 8GB는 SK하이닉스가, HBM3E 12GB는 삼성전자가 대부분의 물량을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상황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차세대 HBM3E 12단(36GB) 제품에 대한 샘플 공급을 경쟁사 대비 수개월 선행해 진행하고 있다”며 “HBM 열위에 대한 과한 우려가 형성시킨 밸류에이션(가치) 괴리를 회복할 국면”이라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