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롯데그룹 안에서 유통군과 화학군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유통 계열사를 대표하는 롯데쇼핑이 나름 견조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지만 화학 계열사를 대표하는 롯데케미칼은 부진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 화학에 밀렸던 유통 위상 높아져, 신동빈 하반기 위기관리의 핵심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에게 하반기 리스크 관리의 핵심은 유통 계열사들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유통 계열사들의 체질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덕분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하반기는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시기라는 분석이 많다. 롯데쇼핑을 주축으로 한 유통 계열사들의 활약이 계속된다면 신 회장의 근심을 덜어낼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13일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들의 자료를 종합하면 롯데그룹에서 화학군에 입지가 밀렸던 유통군의 위상의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유통군은 롯데그룹 대표 계열사인 롯데쇼핑을 포함해 롯데하이마트, 롯데홈쇼핑, 코리아세븐 등 유통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를 말한다. 화학군은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등 롯데에서 화학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들이다.

롯데쇼핑만 보면 나쁘지 않았던 상반기 흐름을 하반기에도 지속할 수 있으로 예상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심리 둔화가 변수지만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가 지속적인 체질 개선 노력 덕분에 이익창출력을 회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반기 호실적은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롯데쇼핑은 상반기에 연결기준으로 매출 7조1840억 원, 영업이익 1640억 원을 냈다. 2022년 상반기보다 매출은 6.4%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4.6% 늘었다.

하반기 전망도 밝은 편이다. 롯데쇼핑은 올해 연결기준으로 매출 14조9008억 원, 영업이익 4951억 원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지난해보다 매출은 3.7% 줄어들지만 영업이익은 28.2% 늘어나는 것이다.

한국신용평가도 최근 롯데그룹 하반기 전망보고서를 통해 “할인점과 슈퍼부문에서 나타나는 구조저정 성과와 비용 절감 노력은 수익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백화점부문도 패션과 코스메틱 소비 증가로 양호한 실적을 보이고 있으며 영화상영업 부문도 개선된 여건으로 실적 회복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며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롯데케미칼의 상황은 정반대다.

롯데케미칼은 상반기에만 연결기준으로 1천억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봤다. 자체 기초소재사업과 말레이시아 자회사의 부진이 계속 롯데케미칼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새다.

하반기 전망도 만만하지 않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와 유가 상승 탓에 롯데케미칼이 주요 제품을 팔아서 남기는 마진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신용평가는 “롯데그룹의 주력인 화학부문의 적자 기조가 지속되고 있으며 높은 원가부담, 수요부진, 공급과잉 심화 등이 실적 회복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올해도 그룹의 이익창출력은 저조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이며 실적 개선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한국기업평가 역시 “화학부문은 하반기부터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로 업황 반등이 기대되지만 경기 성장 둔화와 신증설 부담 등을 감안할 때 단기적인 수익성 개선 여력이 높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전망했다.

신용평가사들은 하반기에도 롯데케미칼의 부진이 예상되는 가운데 롯데그룹 리스크 관리의 핵심이 결국 유통에 있다고 보고 있다.

유통 계열사들이 얼마나 수익을 잘 방어해내느냐가 롯데그룹의 재무체력을 결정할 것이라는 뜻이다.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들에게 쏟아지는 기대는 새삼스러운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롯데쇼핑은 명실상부 롯데그룹의 주력 계열사였다. 창사 이래 2020년까지 다른 계열사에게 매출이 뒤진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는 사례다.

하지만 롯데쇼핑은 유통업계의 온라인 전환과 같은 굵직한 흐름에 좀처럼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탓에 영향력을 갈수록 잃었다. 급기야 2021년 롯데케미칼에 처음으로 매출이 뒤진 데 이어 지난해에도 밀렸다.

하지만 김상현 롯데그룹 유통군HQ(헤드쿼터)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을 비롯한 외부 인사를 여럿 영입하면서 체질 개선에 확실하게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 화학에 밀렸던 유통 위상 높아져, 신동빈 하반기 위기관리의 핵심으로

▲ 롯데쇼핑은 롯데그룹의 명실상부 주력 계열사였지만 2021년 롯데케미칼에 처음으로 매출이 뒤지며 자존심을 구겼다. 하지만 최근 롯데케미칼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실적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롯데쇼핑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전경. <롯데쇼핑>


물론 유통 계열사들에게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롯데그룹에 인수된 뒤 처음으로 적자를 낸 롯데하이마트는 ‘아픈 손가락’과 같다. 오프라인에서 가전을 구입하던 흐름이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롯데하이마트는 그동안 선두를 유지했던 가전양판점 점유율 1위 자리까지 위협받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롯데하이마트는 하반기에도 뚜렷한 실적 반등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며 “부진점포 폐점과 파트너사와 협의, 자체브랜드 상품 확대 등을 통해 비용 부담은 다소 완화할 여지가 있지만 고금리·고물가 기조와 경기둔화 국면, 부진한 가전 교체수요 전망 등을 감안할 때 가전 제품 수요가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재무지표 개선도 유통 계열사들이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롯데쇼핑과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 운영사)의 재무제표를 합산했을 때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 대비 순차입금 비율은 1분기 말 기준으로 14.5배다.

EBITDA 대비 순차입금 비율은 현금창출력과 비교해 순차입금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데 이 수치가 높을수록 버는 돈보다 빚이 더 많다는 얘기가 된다.

현재 실적이 부진하다고 평가받는 롯데케미칼과 롯데정밀화학, 롯데MCC 등의 합산 EBITDA/순차입금이 1분기 말 기준으로 7.1배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들이 가야할 길은 멀다고 볼 수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