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반도체 공급량보다 수요가 증가하면서 삼성전자와 메모리반도체 뿐만 아니라 파운드리에서도 협력관계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엔비디아가 고성능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 오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새로운 수주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최근 3~4나노 수율(양품 비율)을 상당히 끌어올린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반도체를 수주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5월10일 미국에서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만났기도 했는데 메모리반도체 외에 파운드리에서도 협력 논의를 진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0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의 등장으로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2024년까지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반도체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구하기가 그 어느때보다 어려워졌다"며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당시 화장지 사재기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GPU를 마약보다도 구하기 힘들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 엔비디아의 고객들은 최신 GPU를 받기 위해 최소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올해 2분기(5~7월) 매출이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급증에 힘입어 110억 달러(약 14조5천31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가이던스(전망치)를 내놓았다. 이는 기존 컨센서스(증권사 전망 평균치)보다 50% 높은 수치다.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반도체인 H100과 H800은 기존 제품(A100, A800) 대비 2배~2.5배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만큼 수익성은 큰 폭으로 높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H100과 H800이 모두 TSMC에서 제조되는 것을 고려하면 TSMC는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확대에 최대 수혜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TSMC는 올해 2분기(4~6월) 매출 가이던스를 1분기(매출 약 22조1천억 원)보다 다소 낮은 152억~160억 달러(약 20조~21조 원)로 제시했다.
TSMC의 올해 1분기 매출에서 인공지능 반도체 등 고성능컴퓨팅(HPC) 비중이 43%로 스마트폰(33%)을 넘어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반도체 주문 증가를 TSMC가 단기간에 모두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TSMC의 엔비디아 반도체 생산라인은 이미 가동률이 최고 수준까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엔비디아는 H800과 A800 뿐만 아니라 H100, A100에 대해서도 TSMC에 긴급 주문을 넣었다”며 “엔비디아의 주문으로 인해 TSMC의 6~7나노 공정 가동률이 높아졌는데 4~5나노 가동률도 거의 최고 수준까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반도체 생산량을 더 늘리기 위해서는 TSMC 외에 삼성전자 파운드리와도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왼쪽)이 5월10일 미국 실리콘밸리 서니베일의 일식집 사와스시에서 만났다. <사와스시 페이스북> |
삼성전자와 엔비디아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협력관계를 강화해왔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2020년 엔비디아의 PC용 GPU인 지포스 RTX30 시리즈의 위탁생산을 맡은 적이 있다. 당시 삼성전자의 8나노 공정으로 만들어진 지포스 RTX30 시리즈는 수율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저렴하게 생산돼 ‘가성비(가격대비성능)’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그 뒤로도 첨단공정에서 수율을 잡는데 애를 먹었지만 올해 들어 3~4나노 수율을 대폭 끌어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4나노 수율은 약 75%로 지난해 대비 큰 폭으로 개선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삼성전자는 첨단 공정을 중심으로 파운드리에서 TSMC와 전반적 기술격차를 크게 해소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의 4나노 수율이 70%를 넘어선 것이 사실이라면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를 두 군데 이상으로 유지하는 ‘멀티 파운드리’ 전략을 가져가는 편이 가격 경쟁력 확보 및 공급 확장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TSMC는 지난해 큰 폭으로 가격을 인상했는데 올해도 목표 마진율(53%)을 유지하기 위해 10~30%의 가격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TSMC가 매년 가격을 인상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에게 필적할 만한 경쟁사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로서도 삼성전자를 TSMC의 경쟁자로 키워줄 필요성이 크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5월10일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일식당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직접 만났다. 이 자리에서는 DDR5,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메모리반도체 공급 외에 파운드리 관련 협력 이야기도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재용 회장은 글로벌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엔비디아와 반드시 손을 잡아야 하고 젠슨 황 CEO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삼성전자와 파트너십을 유지할 필요성이 크다.
다만 미국 월가에서는 여전히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증가로 삼성전자보다는 TSMC가 수혜를 입을 것이란 분석이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아직 주요 고객사에게 대형 물량을 받아내기에는 업력도 짧고 기술력도 TSMC와 비교해 검증이 덜 됐다는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서스퀴하나의 메디 호세이니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반도체 파운드리, 특히 최첨단 파운드리 사업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TSMC보다 뒤처져 있다”며 “인공지능 성장 추세에는 파운드리에 특화된 TSMC가 삼성전자보다 우위에 있다”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