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전기차 지원에 조건 내걸어, 한국 배터리3사 소재 수급에 난관

▲ 미국 바이든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확대하는 법안을 추진하며 현지에서 배터리 소재 조달을 확대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LG에너지솔루션 미국 미시건주 배터리공장.

[비즈니스포스트] 미국에서 전기차 및 배터리 생산공장을 신설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바이든 정부도 해당 공장에 대규모 투자 지원금과 세제혜택 등을 지원하는 친환경 법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 조건에 해당하는 배터리 원재료 현지 조달을 추진하는 기업들 사이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돼 정부 정책에 따른 수혜가 제한적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일 친환경 전문매체 클린테크니카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에서 입법을 시도하는 친환경 법안을 두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해당 법안은 전기차 1대당 7500달러(약 980만 원)에 이르는 보조금 제공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미국 내 전기차와 배터리 공급망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클린테크니카는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지원 대상 기준에 부합하는 업체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며 실제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차량은 소수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전기차 배터리를 미국에서 생산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핵심 원재료의 40%, 부품의 50% 이상을 미국 내에서 조달해 사용해야만 지원 대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미국 배터리 생산을 장려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업체들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됐다.

이들 기업이 미국에 최근 잇따라 대형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 투자 계획을 내놓았고 GM과 포드, 스텔란티스 등 주요 기업과 합작공장 운영 및 배터리 공급에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한국 배터리 3사와 일본 파나소닉 정도에 그치는 만큼 바이든 정부가 사실상 이들을 염두에 두고 법안을 추진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클린테크니카는 “미국 정부가 LG에너지솔루션과 GM의 배터리 합작공장에 자금 지원을 발표하는 등 현지 배터리 공급망 구축을 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는 법안과 같이 배터리업체들이 미국 내에서 배터리 원재료를 조달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한국 배터리 3사가 보게 될 수혜폭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현실적으로 미국에서 바이든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의 원재료 조달 비중을 갖춰내는 일은 아직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클린테크니카는 미국 내 전기차 및 배터리업체, 협력사들의 시설 투자 계획과 공장 운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원재료 자체 조달 능력을 갖춘 곳은 거의 없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해당 공장에서 사용되는 리튬과 코발트, 니켈과 흑연 등 배터리 소재가 대부분 미국이 아닌 중국과 호주 등 다른 국가에서 수입돼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전기차 지원에 조건 내걸어, 한국 배터리3사 소재 수급에 난관

▲ 포드와 SK온 합작법인 블루오벌SK의 전기차 배터리공장 조감도.

미국에는 현재 배터리 소재로 쓰이는 광물을 채굴하는 업체 수와 인력, 생산량이 모두 수요와 비교해 크게 부족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현지 광물 채굴업체들이 미국 정부 정책에 대응해 생산 확대를 추진하더라도 이를 단기간에 크게 늘리기는 쉽지 않다.

결국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된다고 해도 배터리 생산업체들이 실제로 보조금 대상에 포함돼 수혜를 볼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 놓인 셈이다.

미국 정부는 한국과 호주, 칠레, 캐나다, 멕시코 등 미국 동맹국에서 배터리 소재를 조달하는 기업도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당 법안이 궁극적으로 배터리 소재 광물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을 배터리 공급망에서 고립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되는 만큼 한국 배터리 3사도 지원 법안에 수혜를 노리려면 중국에서 소재 수입을 크게 줄일 수밖에 없다.

배터리업체들 사이에서 결과적으로 중국 이외 국가에서 생산되는 배터리 소재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소재 품귀현상이 더 심각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투자하며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결국 단기간에 중국의 소재 수급에 의존을 크게 낮추는 변화를 추진해야만 하는 것이다.

GM과 포드 등 한국 배터리업체와 합작공장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은 최근 잇따라 북미와 호주 등 지역의 배터리 소재 공급사와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사례를 늘리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한국 배터리 3사가 배터리 소재 수급처를 중국 이외로 다변화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충분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분석된다.

클린테크니카는 “배터리 제조사들이 미국 정부에서 추진하는 친환경 법안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매우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