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황런쉰) 엔비디아 회장이 반도체업계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최근 엔비디아는 반도체 설계 분야 1위 업체인 ARM의 인수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 회장은 적극적 사업 확장과 인수합병으로 엔비디아를 업계 리더 반열에 올려놓았는데 ARM이라는 대어를 낚는데도 성공할지 주목받는다.
4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소프트뱅크와 ARM 인수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최근 ARM을 매물로 내놨다.
거래 성사 가능성을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 엔비디아가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4월 말 기준 164억 달러로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했던 가격(320억 달러)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자금조달 등 인수구조를 짜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각국 정부의 반독점 기업결합 심사도 걸림돌이다. 인텔, 삼성전자 등 ARM 사업과 직접 관련이 있는 반도체기업들과 비교하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주력으로 하는 엔비디아는 상대적으로 독과점 위협이 낮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18년 퀄컴이 차량용 반도체회사 NXP를 인수하려다 중국당국의 반대로 무산된 점을 고려하면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순조롭게 진행되리라고 낙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시장이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최근 엔비디아의 최근 기세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시장에서 70% 안팎의 독보적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데 실적 증가에 힘입어 7월 초 인텔의 시가총액을 제치고 세계 3위 반도체기업이 됐다.
8월 현재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2709억 달러인데 인텔 2054억 달러와 격차를 더 벌렸다. 업계 1위 TSMC(3717억 달러)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2위 삼성전자(2855억 달러)는 바로 코앞에 두고 있다.
ARM 인수가 성사된다면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중앙처리장치(CPU)를 아우르는 반도체 업계의 전방위 강자로 한 단계 진화하게 된다. 업계 판도를 뒤바꿔 놓을 가능성이 크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작업 이면에는 엔비디아 창업자인 젠슨 황 회장이 버티고 있다. 황 회장은 엔비디아를 설립할 때 애초 중앙처리장치를 개발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장 진입이 쉽지 않다고 판단해 그래픽처리장치로 눈을 돌렸다고 한다.
황 회장은 엔비디아 사업이 궤도에 오른 뒤에도 중앙처리장치사업에 관심을 놓지 않으며 인텔과 긴장관계를 형성했다. 2009년 중앙처리장치 시장 진출 의사를 내비치며 인텔과 라이선스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배경을 고려할 때 황 회장이 ARM을 인수하면 숙원을 푸는 게 된다. 애플이 ARM 기반의 중앙처리장치를 맥PC에 탑재하기로 하는 등 ARM의 중앙처리장치 기술 수준이 높아 인텔과도 겨뤄볼 수 있다.
황 회장의 최근 행보는 폭이 넓고 빠르다. 그는 그래픽 반도체에서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 등으로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5월 온라인으로 열린 연례행사 ‘GTC2020’ 기조연설에서는 클라우드, 자율주행, 로보틱스 등의 신규분야 혁신 플랫폼을 소개했다.
핵심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인수합병도 마다하지 않는다. 엔비디아는 4월 인공지능 반도체기업 멜라녹스 인수를 마무리했고 스위프트스택·큐물러스네트웍스 등 신규 인수합병도 추진 중이다.
멜라녹스 인수규모는 69억 달러로 발표 당시에만 해도 미국 반도체업계 사상 최대 규모 거래였다. 황 회장은 인수를 마무리한 뒤 “꿈꿔왔던 홈런 딜”이라고 만족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황 회장은 1963년 대만 타이난에서 태어난 대만계 미국인이다. 미국 오리건주립대에서 전기공학 학사,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LSI로지틱스와 AMD를 거친 뒤 1993년 엔비디아를 설립했다.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경영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찍부터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선 것이 사업적 혜안을 증명한다.
황 회장은 2017년에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 래리 페이지 알파벳 CEO,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내로라하는 업계 아이콘들과 함께 포춘이 선정한 올해의 기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화려한 언변과 함께 뚜렷한 존재감도 갖추고 있다. 공식석상에서 늘 착용하는 검은색 가죽재킷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올해 온라인 GTC에서도 그의 집 주방을 배경으로 가죽재킷을 입고 기조연설을 진행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