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임대아파트전국회의 부영연대는 13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1심 판결 선고가 나오자 입장문을 내고 강력히 반발했다.
이들은 “법원이 이 회장의 가장 중요한 혐의인 ‘임대주택법 위반’을 놓고 무죄를 선고해 부영 임차인의 억울함을 짓밟았다”며 “이 회장이 그동안 벌여온 각종 불법, 탈법, 편법 행위들을 덮어주는 판결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회삿돈 횡령 등의 혐의를 놓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순형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에 벌금 1억 원의 실형을 받았다.
하지만 법정구속은 모면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 중 상당 부분이 무죄로 판단된 점 등을 감안해 피고인에게 방어권 행사의 기회를 충분히 보장할 필요성이 있어 보석 결정을 취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법정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으나 1심 판결의 정당성과 관련한 논란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재판 직후 “재판부는 서민에게 큰 피해를 준 중대한 혐의 일부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책임에 맞지 않는 가벼운 형을 선고하고 나아가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구속수감하지 않았다”며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다.
이 회장은 임대아파트의 분양 전환가를 조작해 임대주택법을 위반하고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4300억 원 규모의 회삿돈을 배임·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재판 전 이 회장에게 징역 12년에 벌금 73억 원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주요 혐의를 검찰과 다르게 바라봤다.
재판부는 4300억 원 가운데 횡령 365억7천만 원, 배임 156억 원 등 521억 원 규모의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규모가 가장 컸던 임대아파트 분양 전환가 조작 등 임대주택법 위반 혐의를 놓고는 이를 입증할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임대아파트전국회의 부영연대는 1심 선고 직후 이 회장의 임대주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할 자료가 있다며 항소심 재판 증거로 사용해 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현재 전국 각지에서 부영을 상대로 진행 중인 수백 건의 ‘건설원가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 재판부에 사실조회를 거친 임차인들의 실제 건설원가 자료가 제출돼 있다”며 “검찰은 입증자료를 확보해 2심에서 법과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항소심에서 임대주택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 회장이 법정 구속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 없는 셈이다.
이 회장이 항소심에서 또 다시 구속되는 상황을 벗어나더라도 부영그룹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가야할 길은 멀어 보인다.
이 회장은 2004년 협력업체와 공사대금을 부풀리는 방식 등의 분식회계를 통해 비자금 270억 원을 조성한 혐의로 2004년 구속기소된 전력이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광복절 특사로 사면을 받은 뒤 국내외에서 대학 기숙사 무상 신축 등 교육문화사업 분야에서 활발한 기부활동을 벌이며 부영그룹에 긍정적 이미지를 쌓아 왔는데 또 다시 부정적 이미지를 강하게 더하게 됐다.
▲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작업은 부영그룹 실적만을 놓고 보면 또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부영그룹은 하자와 부실시공, 임대료 인상 등의 시정을 요구하는 국회와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압박에 8월 임대보증금과 임대료를 1년 동안 동결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상생방안을 내놓았다.
부영그룹은 2017년 연결기준으로 영업손실 2300억 원을 내 2005년 이후 12년 만에 적자를 봤는데 임대보증금과 임대료 동결은 수익성에 상당한 부담을 줄 밖에 없다.
지배구조 변경 등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 이 회장이 추진해야 할 주요 과제로 꼽힌다.
이 회장은 현재 1인 지배형태로 부영그룹을 이끌고 있는데 1인 지배형태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견제세력이 없어 투명성이 취약하다는 약점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5월 발표한 ‘2018년 대기업집단 지정현황’에 따르면 부영그룹은 24개 계열사를 통해 22조4천억 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부영그룹은 CJ그룹에 이어 자산순위 16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그룹 규모가 큰데 상장 계열사는 한 곳도 없다. 자산 규모 20위 안의 대기업집단 가운데 상장 계열사가 없는 곳은 부영그룹이 유일하다.
이 회장이 부영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1941년생 고령으로 7월 열린 보석청구 심문에서 “여든 살이 넘으면 멀쩡한 사람도 갑자기 죽을 수 있다”며 재판부의 선처를 요청했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의 1심 선고 결과와 관련해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앞으로 법리적 검토를 통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