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8월9일 백악관에서 반도체 지원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지원 법안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친노조 정책도 앞세워 삼성전자와 TSMC 등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조금 제공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한 데다 정부 자금으로 해외 기업을 지원했다는 점도 비판을 받고 있어 반도체법이 결국 실패한 정책으로 남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1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한 반도체 지원 정책의 실제 효과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반도체법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이나 연구센터를 신설하는 기업에 모두 390억 달러(약 55조8천억 원) 보조금과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삼성전자와 TSMC, 인텔과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다수 기업에 이런 정책에 화답해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 투자를 발표하며 긍정적 평가에 힘이 실렸다.
미국에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는 일은 한국과 대만 등 해외 국가에 의존을 낮추고 중국과 경쟁에서 승기를 잡는 데 효과적 방법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정부 지원 프로그램의 지속 여부가 불투명해졌다고 바라봤다.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법 세부 내용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 산업 정책에서 정부가 해외 기업에 자금을 지원한 사례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와 글로벌웨이퍼가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만 140억 달러(약 20조 원)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이는 트럼프 당선인과 공화당이 반도체법 폐지를 주장하는 근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투자 보조금뿐 아니라 세제혜택도 미국 정부에 상당한 자금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씽크탱크 피터슨인스티튜트는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공장에서 받는 최대 25% 세금 감면 혜택이 390억 달러의 직접 보조금을 뛰어넘는 규모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을 비판하는 여론에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TSMC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건설 현장 사진. |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공장 건설과 관련해 엄격한 환경 규제와 친노조 정책, 미국 내 자재 수급 등 많은 조건을 내세웠다는 점도 지적받고 있다.
이는 반도체 제조사들의 금전적 부담을 더 키울 뿐만 아니라 보조금 지급이 늦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반도체산업 관련 글로벌 베스트셀러 ‘칩워’ 저자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에 “값비싼 노조 가입자를 건설에 투입하도록 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TSMC 등 해외 기업들은 미국에 반도체 시설 투자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이나 대만에 투자할 때보다 훨씬 많은 인건비 등 비용 부담을 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의 영향력으로 인건비 부담이 더 커지거나 노사 갈등이 활발해지는 일은 순조로운 공장 건설 및 가동에 리스크가 될 수밖에 없다.
밀러 교수는 TSMC가 실제로 노사갈등 문제에 대응해 미국 애리조나 공장 가동 시기를 늦춘 점을 근거로 들었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산하 산업기술센터도 “인건비 부담이 큰 미국이 한국이나 대만과 경쟁할 수 있는 길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효과적으로 미국 내 반도체공장의 생산성을 높일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바이든 정부의 정책은 장기간 뚜렷한 결실을 맺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이 핵심 공약으로 추진했던 반도체 지원 법안이 결국 실패한 정책으로 남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상무부가 이전부터 지나치게 엄격하고 복잡한 기준을 앞세워 시간이 지연되었을 수도 있다는 관측을 전했다.
상무부는 내년 1월 바이든 정부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관련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이처럼 대규모 정부 지원을 서둘러 집행하는 일은 중장기적으로 예상치 못한 문제점을 남기게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