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내년 신년사에서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의 역할을 강조할 것으로 관측된다. 사진은 정 부회장이 2022년 신세계그룹 신년사에서 '오프라인도 잘하는 온라인회사'가 되자고 강조하는 모습. <신세계그룹>
재벌 총수들이 2024년 어디에 초점을 두고 그룹을 이끌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발언들이 신년사를 통해 나온다.
모든 신년사가 중요하지만 쇄신 강도를 높이고 위기의식을 강조하고 있는 신세계그룹에서 어떤 신년사가 나올지는 그 가운데서도 매우 큰 관심사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과거 ‘오프라인도 잘 하는 온라인 회사’라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는데 최근 그룹의 분위기를 볼 때 다시 오프라인에 집중해보자는 화두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0일 신년사를 낸 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재벌그룹의 신년사 발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해가 바뀌기 전인 다음 주에 신년사를 발표하는 그룹도 여럿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통업계 총수들도 현재 신년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은 그동안 꾸준히 신년사를 자신의 이름으로 내왔다.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소비여력 감소와 해외여행 증가에 따른 보복소비 감소 등 영업환경 악화로 유통업계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신년사의 어조는 차분하면서도 무거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용진 부회장이 신년사에 어떤 내용을 담을 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시각이 많다. 신세계그룹이 올해 하반기 들어 그룹 전반에 쇄신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9월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계열사 대표 40%를 물갈이한데 이어 11월에는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전략실을 개편했다. 경영전략실장을 8년 만에 교체한 것도 신세계그룹의 쇄신 의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정 부회장이 경영전략실 구성원들을 나무란 것도 이런 기조의 연장선이다.
정 부회장은 11월23일 경영전략실 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새로운 경영전략실은 각 계열사를 통제하고 관리하며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 그룹 안에서 ‘가장 많이 연구하고 가장 많이 일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며 경영전략실의 과거 업무 방식을 질책했다고 한다.
오너 일가와 관련한 보도자료에 ‘질책’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은 매우 이례적인데 그만큼 위기감을 부채질하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정 부회장이 발표할 신년사에서도 이런 기조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신세계그룹의 양대 축인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가 모두 주춤한 상황이라 그룹의 상황이 어렵다는 의식을 환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됐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의 미묘한 태도 변화가 있을지도 다가올 신년사의 중요 관전 포인트다.
정 부회장은 그동안 신년사를 통해 그룹이 집중해야 할 화두를 몇 가지씩 던져왔다. 2021년에는 ‘고객, 원팀, 다양성’, 2022년에는 ‘디지털 피보팅’, 2023년에는 ‘기본’이었다.
비록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한 해를 시작하며 그룹이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 큰 틀에서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적지 않았다.
특히 정 부회장이 강조했던 것은 온라인 전환이었다. 고객들의 소비 습관이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려면 오프라인 기반의 신세계그룹이 온라인에 더 힘을 줘야 한다는 의미였다.
▲ 신세계그룹은 최근 오프라인에 중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여러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비즈니스포스트>
아예 온라인 회사로 신세계그룹을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이 2022년 신년사에서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서도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올 한 해 임직원 모두가 뜨거운 심장으로 다시 뛰어야 한다”며 “디지털 원년을 위한 준비와 계획은 모두 마쳤고 이제 ‘오프라인조차 잘 하는 온라인 회사’가 되기 위한 실천만 남았다”고 강조한 것은 신세계그룹의 DNA를 마치 온라인이 기본인 것처럼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이 최근 오프라인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행보를 보이자 내년 신년사에서는 디지털이 아닌 오프라인을 강조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신세계그룹 안팎에서 나온다.
신세계그룹은 11월 경영전략실 개편을 통해 ‘개발 전문가’로 꼽히는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대표이사 사장을 경영전략실장으로 앉혔다는 점은 내년부터 신세계그룹이 오프라인에 힘을 싣겠다는 것을 미리 보여준 사례다.
이에 앞서 9월 인사에서 이마트 대표이사에 오른 한채양 대표 역시 이마트 30주년 기념식에서 “회사의 모든 물적·인적 자원을 이마트 본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한 사장은 이어 “이마트의 영업 기반이자 주요 성장 동력인 점포를 외형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한동안 중단했던 신규 점포 출점을 재개하겠다”고 발한 바 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정용진 부회장 역시 신세계그룹의 기조가 바뀐 점을 감안해 신세계그룹의 헤리티지를 강조하며 오프라인에서의 역할 강화를 주문할 것으로 관측된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