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공정한 보상’.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주요 화두 중 하나다.

이미 입시와 취업이란 치열한 경쟁을 경험한 MZ세대들은 앞선 세대들의 번아웃을 지켜봤다. 열심히 일해도 이전 세대 대비 낮은 성과보상과 짧은 근속연수에 기업을 향해 공정한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DL이앤씨·기아 '공정한 보상' 저자 사외이사로, MZ세대 요구 직시

▲ DL이앤씨 사외이사 신재용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선임되는 안건이 올라간다. 


더이상 기업들도 이를 무시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 이사회 구성과 운영에서 드러나고 있다.

3일 DL이앤씨와 기아에 따르면 이들은 3월 말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성과평가·보상,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인 신재용 서울대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올린다. 

신 교수는 2021년 12월2일 책 '공정한보상'을 펴냈다. MZ세대가 보상에 분개하는 이유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에서 마련해야 하는 보상제도를 제안했다. 

DL이앤씨와 기아는 두 기업 모두 공교롭게도 신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과 함께 임원 퇴직금 규정 개정안을 주주총회에 부의한다.

DL이앤씨는 임원의 공로를 인정해 지급하던 퇴직위로금을 삭제했고 퇴직금 산정의 기본인 월급여에 각종 수당 및 경비, 성과급, 복리후생은 포함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기아는 이사의 보수한도를 100억 원에서 80억 원으로 낮추기로 했다.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한도를 8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올렸는데 1년 만에 되돌리는 것이다. 

신 교수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임원 보수규모가 기업규모에 비해 높으면 기업지배구조의 질이 낮은 기업들은 임원보수를 불성실하게 공시할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 대목을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다.

두 기업이 신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려는 것은 MZ세대의 공정한 보상 요구에 관한 고민과 무관치 않다는 시선이 많다.

MZ세대는 1981년부터 1996년까지 출생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우리나라 인구의 34%(1700만 명), 대기업 임직원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기업에서 MZ세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MZ세대는 불투명한 성과급 기준체계에 불만을 토로하며 획일적 보상구조의 문제를 경영진에게 직접 제기하고 있다. 기업들은 수천억 원을 쓰고도 직원들에게 항의를 받는 일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2021년 SK하이닉스 임직원은 ‘성과급 산정 기준 투명공개’를 주장하며 경영진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성과급으로 연봉 20%를 공지하자 영업이익 기준을 내세우며 불합리하다고 반발했다. 

사내게시판이 달아오르자 사측은 게시판을 폐쇄했고 반발은 더욱 커졌다. 이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에서 받은 연봉 30억 원을 반납하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보상 기준이 명확하다고 평가받는 삼성전자도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입사 7년차 직원이 연봉 산정방식 오류를 지적하며 공개적으로 사내 게시판에 해명을 촉구했다. 그러자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겸 대표이사 부회장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에도 SK이노베이션 계열사 일부 직원들이 최태원 회장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성과급 불만을 호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정유·화학·배터리 등의 사업을 하는 SK이노베이션은 올해부터 개인별 성과급이 아닌 기업가치와 연계된 목표 달성에 따라 성과급을 받아 불만이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MZ세대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성과급 논란은 해마다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측이 해마다 위기를 강조하며 비용절감을 외치지만 정작 일부 경영진이 대규모 성과급을 가져가는 것을 직원들이 더이상 납득하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 이상 공정한 보상이 반짝 화젯거리가 아니라 이에 관한 고민을 근본적으로 해야 하는 시점이 된 셈이다. 

신 교수는 유튜브채널 사피엔스스튜디오의 '어쩌다어른D'에 출연해 “MZ세대는 높은 학력을 쌓고 가장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다”며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시험과 입시 등 일상이 평가였던 경쟁상황을 겪어 공정성에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인 공헌에 관한 고려 없이 불투명한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성과급을 지급하고 성과급을 회사에서 선물 마냥 나눠준다는 인식을 거부한다”며 “이들은 이미 주류세대가 돼 기업에서 이들을 이해해야 할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에 이연보상(특정 기간 성과를 기반으로 유예보상), 불확실한 미래의 약속은 MZ세대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공정하게 평가하고 보상하는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신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경영진이 많이 가져가는 구조가 아닌 투명한 배분 시스템을 갖춘 기업이 조직원들의 유기적 활동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내부승진과 연공서열 기반 기존 보상체계의 대대적 수술이 필요하고 조직적·전사적 성과급 위주의 획일적 보상을 탈피해야 개인성과 측정과 보상 사이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개인평가가 강화되면 정량평가보다 정성평가가 강조될 수밖에 없어 관리자들이 직원들과 끊임없는 소통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신재용 교수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회계학과 조교수를 거친 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삼일회계법인 저명교수를 맡았고 2015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회계학회 국제교류 부회장으로 일했다. 

이전에는 사외이사로 HD현대, 신도리코에서 활동했으나 각각 3월20일, 3월15일에 사임한다. 

신 교수는 DL이앤씨와 기아의 사외이사 후보로 직무수행계획에 “이사회 독립성 및 다양성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기여하겠다”며 “주주권익 재고 및 기업가치 향상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