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뒤 9월 첫 해외출장을 나서며 본격적인 글로벌 경영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은 125조 원 넘게 쌓여있는 삼성전자의 막대한 현금을 활용할 방안을 찾고 있는데 최근 인수합병(M&A) 후보로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이 거론되고 있다.
 
이재용 경영복귀 첫 인수 후보로 ARM 거론, 삼성 시스템반도체 도약 발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복귀 뒤 첫 인수합병 후보로 ARM을 선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이 8월30일 서울 송파구 삼성SDS 방문해 직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에서도 1등에 오르겠다고 선언했는데 ARM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첫 퍼즐이 될 수 있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 9월8일~9일경 유럽 출장을 떠나 영국 등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제기됐던 삼성전자의 ARM 인수설이 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ARM은 모바일 프로세서(AP)를 개발하는 업체로 기본 설계기반을 제공하고 로열티로 대부분의 수익을 거두는 영국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이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애플 A시리즈, 미디어텍 디멘시티,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등 주요 모바일 프로세서는 대부분 ARM의 구조방식(아키텍처)을 기반으로 설계된 반도체다. 이 때문에 ARM이 없으면 반도체 설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ARM은 이처럼 대체불가능한 기술력 덕분에 수많은 반도체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인수합병 대상으로 꼽힌다.

미국 엔비디아는 ARM 인수합병 계약까지 맺었으나 각국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올해 초 인수가 불발됐다. 그 뒤 퀄컴과 인텔, SK하이닉스는 공개적으로 ARM에 관심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도 올해 3월 “ARM 인수합병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을 논의하고 있다”며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달리 삼성전자는 ARM 인수 가능성과 관련해서 여태껏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에게도 ARM은 매력적인 매물이다. ARM을 인수하면 삼성전자가 부족한 반도체 설계분야에서 노하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다만 독점 문제 때문에 삼성전자가 단독으로 ARM을 인수하기는 어려운 만큼 인텔 등과 손을 잡고 컨소시엄을 만들어 일부 지분을 인수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올해 5월30일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차세대 메모리, 팹리스(반도체 설계), 파운드리, PC 및 모바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에 두고 의견을 나눴는데 ARM과 관련해서도 논의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재용 경영복귀 첫 인수 후보로 ARM 거론, 삼성 시스템반도체 도약 발판

▲ ARM의 반도체 설계기술 안내.


이를 놓고 미국 IT전문지 CRN은 “인텔과 TSMC, 삼성전자가 2012년 반도체 장비기업 ASML에 공동 투자했던 것과 같은 일이 ARM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시장 조사기관 엔드포인트테크널러지어소시에이츠는 CRN을 통해 “겔싱어 CEO가 이재용 부회장과 ARM 공동 투자에 관련해 논의했다고 해도 놀랄 만한 일이 아닐 것”이라며 “해당 내용이 언급됐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ARM을 둘러싼 여러 환경도 삼성전자가 지분인수를 추진하기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ARM의 지분 75%를 보유한 소프트뱅크는 투자실패로 올해 4~6월에만 3조1600억 엔(약 30조5400억 원)의 기록적인 순손실을 내 이를 메울 지금이 절실한 상황이다.

소프트뱅크는 현재 2023년 3월까지 ARM을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원하는 수준의 기업가치 평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소프트뱅크는 ARM이 상장했을 때 500억~600억 달러(67조9500억~81조5400억 원)까지 기업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올해 3월 다른 반도체기업과 비교했을 때 ARM의 적정 기업가치가 300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증시에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올해 30% 넘게 하락한 것까지 고려하면 ARM 기업가치는 더 낮게 평가받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ARM의 기업공개를 주요 반도체기업들이 원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반도체 공급망 문제와 세계 경제 둔화 속에서 너무 많은 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반도체 회사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평가를 내리기가 어려워졌다”며 “기업공개(IPO)는 ARM이 단일 기업에게 지배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이런 점을 퀄컴 등 주요 고객들이 납득시키는 데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