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쩡위친 CATL 회장(뒷줄 오른쪽)과 존 엘칸 스텔란티스 그룹 회장이 10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스텔란티스 본사에서 배터리 합작공장 건립 협약을 맺은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스텔란티스>
빅3와 한국 배터리사 합작공장은 투자 및 가동 일정이 축소되거나 미뤄지는 반면 CATL과의 신규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협력이 뒷전으로 밀린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12일(현지시각)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CATL은 스텔란티스와 연간 최대 50기가와트시(GWh)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 능력을 갖춘 합작공장을 스페인에 신설한다.
포드는 CATL 기술을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받아 2026년 생산을 목표로 하는 미시간주 배터리 공장을 건립하고 있다.
GM 또한 상하이자동차(SAIC)와의 중국 현지 합작사를 통해 급속 충전을 지원하는 LFP 배터리를 CATL과 함께 내놓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GM은 일본 전자업체 TDK가 미국 남부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고 이 공장에서 CATL의 기술을 적용해 생산하는 LFP 배터리를 구매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미국 빅3는 전기차에 CATL 배터리 채택을 늘려가고 있다. 특히 스텔란티스 아래 브랜드인 지프와 푸조는 한국에서 판매하는 일부 차량에까지도 CATL 배터리를 쓴다.
이에 더해 CATL과 협력해 배터리를 제조까지 하려는 움직임이 미국 자동차 빅3 세 기업 모두에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자동차 빅3와 배터리 제조 협력은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그리고 SK온이 선점했던 부분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2019년 합작사 얼티엄셀즈를 설립한 뒤 미국에서 공장 3곳을 운영하거나 짓고 있다. 스텔란티스와 캐나다 합작 공장도 올해 10월부터 배터리 모듈 양산에 돌입했다.
삼성SDI와 SK온 또한 각각 GM과 스텔란티스 및 포드와 수 년 전부터 미국에 합작공장을 다수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자동차 빅3는 한국 배터리 기업을 상대로 공장 투자를 축소하거나 가동을 지연하는 움직임을 최근 보이고 있다.
GM이 LG에너지솔루션에 미시간주 합작공장 지분을 모두 매각하기로 사실상 결정한 것을 비롯해 포드와 SK온이 테네시주 제2공장 가동을 연기한 일이 대표적이다.
미국 자동차 빅3가 협력의 강도에서 CATL과 한국 배터리3사 사이에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셈이다.
▲ 미국 미시간주 마샬에 위치한 포드의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7월1일자 항공사진. CATL이 라이선스 방식으로 기술을 제공한다. <포드>
포드와 GM 및 스텔란티스는 전기차 선두기업 테슬라를 추격하기 위해 다소 공격적인 전동화 목표를 내놓았다.
미국 바이든 정부나 유럽연합(EU)이 높은 수준의 배기가스 규제안을 내건 점도 내연기관차 신차를 줄이고 전기차 비중을 빠르게 늘리려 했던 목표 설정에 배경으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차 캐즘(대중화 이전 일시적 수요 둔화)이 덮쳐 빅3는 전기차 계획 축소가 불가피했다.
BYD와 같은 중국 기업이 저가 전기차를 앞세워 자국 시장을 장악한 데 이어 유럽으로 진출을 늘린다는 점도 미국 자동차 빅3의 배터리 원가 절감 필요성을 높인다.
이에 포드와 GM 및 스텔란티스 모두 가격 경쟁력이 높은 CATL과 협업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CATL은 특히 LFP 배터리 가격 경쟁력에 강점을 보인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에는 한국 배터리 3사가 집중해 온 3원계(NMC)와 LFP 가격 격차가 더 빠르게 벌어졌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NCM 배터리팩 가격은 킬로와트시당 133달러로 세계 평균 배터리팩 가격을 웃돈다. 반면 CATL은 LFP 배터리 원가를 최근 2년 동안 지속해서 낮추며 NCM과 비교해 30%가량 저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빅3가 전기차 원가 절감 기조를 강화할수록 CATL과 협업을 확대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한국 배터리 기업도 원가 절감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 또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르노와 LFP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는 성과도 냈지만 막강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CATL을 추격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더구나 내년 1월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중국 기업의 미국 내 투자에는 우호적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점도 거론된다. 이에 CATL이 미국에 직접 배터리 공장을 세울 가능성도 나온다.
나아가 빅3와 CATL이 미국 내 생산 거점을 추가하는 수순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결국 한국 배터리에 ‘믿을 구석’이었던 미국 빅3의 변심은 수주 물량을 CATL로 돌리고 K배터리와 다른 고객사 관계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GM은 CATL 기술을 적용한 배터리를 구매할지 묻는 블룸버그 질문에 “전기차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며 “배터리는 이를 위한 핵심 요소”라고 답했다.
블룸버그는 박철완 서정대학교 스마트자동차학과 전임교수 발언을 인용해 “중국 배터리 기업이 미국에 진출하면 한국 기업에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