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준 애경산업 대표이사가 비중화권 국가 공략에 속도를 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김 대표는 지난해 말 애경산업 수장에 취임한 뒤 실적 회복을 이끌어왔지만 3분기에 주력 시장인 중국의 경기 침체에 타격을 받아 실적이 급격히 꺾였다.
그동안 쌓은 해외경험을 바탕으로 김 대표는 애경산업의 비중화권 국가 영향력 확대 과제를 풀어야 할 과제를 안았다.
10일 유통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애경산업이 다른 화장품기업과 비교해 비중화권 지역 공략에 다소 느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등 대형 화장품기업들은 기존 주력시장이었던 중국을 대신해 북미시장을 중심으로 시장다각화를 위한 준비 작업을 발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북미시장에서의 안정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북미 현지 화장품 기업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LG생활건강은 2019년 북미 화장품 업체 ‘더 에이본 컴퍼니’를 인수한 이후 2020년 피지오겔 아시아·북미 사업권 인수, 2021년 헤어케어 브랜드를 보유한 보인카 지분 인수, 2022년 미국 화장품 브랜드 더크렘샵 지분 인수까지 북미 지역을 겨냥한 4건의 인수합병에 약 6051억 원을 투자한 바 있다.
현재 미국 현지법인의 구조조정 등 효율화작업으로 인해 다소 부진한 수익성을 보이고 있으나 현지 시장안착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뒀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중국시장의 비중을 줄이고 북미와 EMEA(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리밸런싱’ 전략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대표적으로 코스알엑스 인수를 꼽을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1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들여 스킨케어 브랜드 코스알엑스를 인수했다. 서구권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보유한 코스알엑스를 활용해 중국 시장을 넘어 북미와 EMEA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으로 해석된다.
2013년 설립된 코스알엑스는 민감 피부를 위한 저자극 스킨케어 브랜드다. 현재 북미, 동남아시아, 유럽 등 140여개 국가에 진출했으며 해외 매출이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코스알엑스를 품은 아모레퍼시픽은 3분기 세 자릿수의 영업이익 성장률을 기록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속된 부진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비중화권 매출도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 애경산업의 대표 화장품 브랜드인 '에이지투웨니스'가 2021년 5월 중국 상하이 소재 주메이라 히말라야 호텔에서 신제품 '시그니처 에센스 커버 팩트 마스터' 론칭쇼를 개최하고 있다. <애경산업>
하지만 애경산업에는 이런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김상준 대표가 애경산업 지휘봉을 잡은 뒤 일본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인 것을 제외하면 비중화권 국가 진출에 뚜렷한 행보가 관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경산업은 일본에서는 브랜드 ‘루나’를 중심으로 큐텐, 로프트, 프라자, 돈키호테 등 현지 유통 채널을 확대해 인지도를 쌓고 있다. 하지만 북미에서는 움직임이 다소 소극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북미 진출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애경산업은 브랜드 ‘에이지투웨니스’를 앞세워 북미시장에서의 영역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21년 미국 아마존에 에이지투에니스를 입점했고 올해 4월에는 화장품 유통업체 실리콘투와 손잡고 미국 현지 오프라인 편집숍 ‘모이다’에도 에이지투웨니스를 선보였다.
하지만 에이지투웨니스 이외에 미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모습은 감지되지 않는다.
김 대표가 북미 진출에 소극적인 데 이유가 있었다는 시각도 있다. 김 대표의 취임 이후 애경산업이 중화권 국가에서 실적을 개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경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에서 실적 악화로 큰 위기를 겪었지만 지난해부터는 실적을 꾸준히 개선하고 있다.
애경산업은 올해 상반기 화장품사업부에서 매출 1361억 원, 영업이익 223억 원을 냈다.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매출은 13.7%, 영업이익은 21.8% 늘었다.
화장품과 생활용품사업부 전체 매출 가운데 중국 비중은 2022년 24.9%, 2023년 25.0%, 2024년 상반기 24.1%로 큰 변화가 없다.
전체 실적이 높아진 상황에서 중국 매출 비중을 유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 사업의 성과가 좋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애경산업 관계자는 "사업부별 지역별 매출은 따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며 "다만 생활용품사업부는 국내 매출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라 화장품사업부의 수출 비중이 훨씬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애경산업은 비중화권 국가에서도 마케팅을 지속하고 있긴 하지만 북미에서만큼은 경쟁기업과 비교해 영향력 확대 의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 유통업계 안팎에 퍼져 있다.
김 대표가 북미에서 성과를 내지 않는다면 3분기에 꺾인 중국 사업이 애경산업 전체 실적에 부담을 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애경산업 화장품사업부는 올해 3분기 매출 570억 원, 영업이익 39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5.2%, 영업이익은 53.2% 줄었다. 7개 분기 만에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다.
김상준 대표는 지난해 말 임원인사를 통해 애경산업의 수장에 선임됐다. 지난해 초 애경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임명된 지 1년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와 켈로그스쿨 MBA를 졸업한 김 대표는 코웨이와 유니레버카버코리아 등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활약한 해외 경험이 풍부한 재무 전문가다.
화장품사업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 유니레버코리아 재직 당시 아시아를 넘어 호주 등으로 사업 확장을 추진하기도 했다. 유니레버카버코리아는 국내 화장품브랜드 AHC를 통해 국내 홈쇼핑 성공을 바탕으로 해외진출을 이룬 기업이다.
김 대표의 이런 해외사업 경력이 애경산업의 비중화권으로 시장 다각화에 힘을 보탤 수 있어야 애경산업의 화장품 실적 회복에도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애경산업은 글로벌 소비자의 성향과 시장 환경을 고려한 제품을 개발하고 팝업 스토어를 비롯한 마케팅을 강화해 비중화권 국가에서 경쟁력을 지속해서 다져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