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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패스트패션 자라 창업자 오르테가와 ‘붉은 여왕 효과’

이재우 sinemakid222@gmail.com 2024-10-28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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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패스트패션 자라 창업자 오르테가와 ‘붉은 여왕 효과’
▲ 패스트 패션의 대명사인 자라를 창업한 아만시오 오르테가(Amancio Ortega). “고객이 비즈니스 모델을 주도한다”(The customer drives the business model)는 말이 그의 비즈니스 모토였다. <오르테가 페이스북>
[비즈니스포스트] 최근의 ‘삼성전자 사과문’ 사태를 바라보면서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를 떠올렸다.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시장의 기대를 크게 밑돌자, 이례적으로 경영진이 사과문까지 발표했는데, 필자는 더 빨리 뛰지 못하는 삼성전자가 ‘붉은 여왕 효과’의 희생양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스럽다. 

‘붉은 여왕 효과’는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 Glass)’에서 나온 개념으로, 생존을 위해 더 빨리 적응해야 하는 진화 생물학에서 비롯됐다. 

“이곳에서는 말이다.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면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단다. 만약 네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적어도 두 배는 더 빠르게 달려야만 해.”

소설 속에서 앨리스가 숲속을 한참 달린 후에도 숲속을 벗어나지 못하자, ‘붉은 여왕(레드 퀸)’은 이렇게 말했다. 숲속(위기)을 벗어나려면(위기 탈출) 평소보다 곱절 이상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붉은 여왕 효과’는 비즈니스 세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은유적 기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소설 속의 앨리스처럼 삼성전자는 현재 위치를 유지하는 데만 ‘적어도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다. 파운드리 부문에서 대만 TSMC와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고,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선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주었다.

이번 칼럼의 주제는 붉은 여왕으로 본 ‘레드 퀸 경쟁(Red Queen Competition)’이다. 기업 사이의 경쟁을 연구하는 선도적인 조직 이론가인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윌리엄 바넷(William Barnett) 교수.

그는 ‘조직 사이의 붉은 여왕: 경쟁력은 어떻게 진화하는가(The Red Queen among Organizations: How Competitiveness Evolves)’라는 획기적인 저서를 통해 ‘붉은 여왕 효과’를 기업 생존의 원리, 전략의 핵심 부분으로 봤다. 

바넷에 따르면, 기업이 붉은 여왕 즉, 레드 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면 끊임없이 진화하고 경쟁자와 차별화할 수 있어야 하며, 속도와 민첩성이 앞에서 끌고, 지속적인 혁신과 개선이 뒤에서 밀어줘야 한다. 그럼, 삼성전자는 약화된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까? 답은 ‘글쎄’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패스트패션 자라 창업자 오르테가와 ‘붉은 여왕 효과’
▲ 자라의 핵심 역량으로 평가받는 ‘공급망 방식’은 오랫동안 경쟁자들과 경영대학원의 사례 연구 대상이었다. <자라 페이스북>
필자가 보건대, ‘레드 퀸 경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패션 소매업인 것 같다. ‘패스트 패션’의 선구자격인 스페인 브랜드 자라(ZARA)와 자라의 모회사인 인디텍스(Inditex) 창업자 아만시오 오르테가(Amancio Ortega·88)가 그 주인공이다. 

자라(인디텍스)는 패스트 패션과 동의어로 쓰이며, 오르테가는 패션 소매 분야에 혁명을 일으킨,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다. 오르테가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오랫동안 경쟁사뿐만 아니라 업계 분석가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경영 사상가 폰스 트롬페나스(Fons Trompenaars). 그 역시 ‘경영의 모델 100+’(폰스 트롬페나스 외 1 공저, ㈜미래엔)라는 책에서 자라에 주목했다. 자라의 핵심 역량으로 ‘공급망 방식(SCM: Supply Chain Management)’을 꼽았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 또한 자라에 관심을 보이며, 자라의 사업 모델을 ‘적응형 전략’이라고 명명했다. 자라는 이런 ‘공급망 방식’과 ‘적응형 전략’이라는 두 바퀴를 끌고 밀면서 ‘레드 퀸 경쟁’에서 월등하게 앞서 나갔다. 

오르테가라는 인물이 궁금할 테니, ‘공급망 방식’과 ‘적응형 전략’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자. 

스페인의 가난한 철도원의 아들인 오르테가는 정규학교를 그만두고 열세 살 나이에 옷 가게 조수로 일하며 오랫동안 옷 만드는 법, 고객 대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서 그는 고객이 정확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했다. “고객이 비즈니스 모델을 주도한다(The customer drives the business model)”는 말이 오르테가의 모토인 이유다. 

마흔이 되던 1975년. 오르테가는 자라 브랜드를 출시하면서 시장의 누구보다 빠르게 새로운 옷을 선반에 올려놓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소매업계를 뒤집어 놓았다. ‘패스트 패션’의 출현이었다. 이런 ‘속도’는 자라를 특징짓는 핵심어였다. 반면에, 자라만큼 빠르게 뛸 수 없었던 경쟁자들로서는 아픈 부분이었다.  

흥미롭게도, ‘자라’라는 브랜드는 세상에 없을 뻔했다. 오르테가가 첫 매장을 열 때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그리스인 조르바’(1964년)에서 따온 ‘조르바(Zorba)’를 브랜드 이름으로 지으려고 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명배우 앤서니 퀸이 바닷가에서 춤을 추는 모습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오르테가의 가게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의 술집이 먼저 ‘조르바’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 

난감해진 오르테가. 이미 간판 글자의 틀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이름은 곤란했다. 그는 글자를 재배치해서 자라(Zara)라는 단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패스트패션 자라 창업자 오르테가와 ‘붉은 여왕 효과’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그동안 다른 리테일러들보다 빠르게(fast) 달렸던 자라(Zara)는 이젠 엄청나게 빠르게(ultra-fast) 내달리고 있는 중국 온라인 의류 브랜드 ‘쉬인(Shein)’의 공세에 직면했다. <자라 페이스북>
2011년 자라(인디텍스)의 지휘권을 내려놓고 은퇴한 오르테가는 은둔자로 알려졌다. 1999년까지 사진이 공개되지도 않았고, 언론과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았다. 수줍음 많고 주목받는 것을 싫어했다. 오르테가를 20년간 알고 지내온 전기 작가는 그런 오르테가에 대해 “겸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자, 이제 자라의 성공 요소로 평가받는 ‘공급망 방식’과 ‘적응형 전략’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패스트 패션이 도입되기 이전이다. 대부분의 소매 기업은 소비자가 입고 싶어 하는 옷에 대한 예측에 의존했다. 하지만 그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다. 그 결과, 기업들은 해마다 재고의 절반을 할인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손해로 연결됐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다음과같이 전했다. 

“자라(인디텍스)는 이런 식의 비용 부담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어 생산과 소매 부분에 ‘적응형 전략’ 수립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자라는 소비자들이 선호할 수도 있는 제품을 예측하는 대신, 소비자들이 실제로 구매하는 제품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옵션을 선택했다.”(보스턴 컨설팅 그룹 저, ‘전략에 전략을 더하라’, 한국경제신문)

자라의 ‘적응형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①먼저 생산 시설을 소비자와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이전하여 공급망의 거리를 좁혔다. 다른 소매업들이 저임금 국가(중국과 동남아)에 생산을 아웃소싱했던 것과 달리, 자라는 멕시코, 터키, 모로코 등에 뒀다. 

짧아진 공급망 덕분에 제품 디자인에서 생산까지 단 3주 만에 해치울 수 있었다. 이는 산업 평균보다 5개월이나 단축된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이렇게 리드 타임(lead time)을 짧게 하면, 다양한 상품을 고객에게 신선하게(fresh)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②자라는 스타일별로 한 번에 소량의 제품만 생산했다. 이 방법은 실시간으로 시장 내에서 진행되는 실험을 통해 잘 팔려나가는 성공한 스타일을 선택한 뒤, 생산량을 확대하는 방식이었다. 소량 생산은 재고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뉴욕 타임스는 리드 타임을 단축하고 공급망 효율성을 높이는 자라의 방식을 두고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초음속(mind-spinningly supersonic)’이라 부르기도 했다. 자라가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속도를 중요시하면서 업계도 ‘시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컨설턴트 조지 스토크(George Stalk)는 1988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시간 축 경쟁(Time Based Competition)’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했다. 신제품 개발과 생산 과정에 소요되는 순환시간을 줄임으로써 경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 스토크는 더 나아가 1990년 ‘시간 경쟁(Competing Against Time)’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시간을 관리하는 방식이 가장 강력한 새로운 경쟁 우위의 원천임을 다시 한번 제시했다. 

자라가 공급망 관리 분야의 권위자와 협업한 것도 성공의 한 요소로 평가받고 있다. 주인공은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의 펠리페 카로(Felipe Caro) 교수다. 그는 자라와 6년 넘게 협업했는데, 그의 연구(Zara: Staying Fast and Fresh)는 미국과 해외 경영대학원에서 널리 가르치는 사례가 되었다. 앤더슨 경영대학원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페로 교수가 개발한 수학적 모델(재고 할당 모델)은 스페인 의류 거대 기업인 자라의 시즌 매출을 3~4% 증가시켰다.”

그런데 이런 리테일러 시장에 강력한 경쟁자가 출현했다. 자라보다 더 빠른 ‘울트라 패스트 패션(Ultra-Fast Fashion)’을 내세운 중국의 초저가 온라인 의류 브랜드 ‘쉬인(Shein)’이다. 중국 e커머스 ‘알테쉬(알리 익스프레스,테무, 쉬인)’의 그 쉬인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2024년 2월 28일)는 “최근 몇 년 동안 인스턴트 패션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는데, 쉬인(Shein)은 6년도 채 되지 않아서 미국에 진출한 이후 매출이 20배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패스트패션 자라 창업자 오르테가와 ‘붉은 여왕 효과’
▲ 미국 시장조사기관 코어 사이트 리서치(Coresight Research)에 따르면, 현재 쉬인은 전 세계 패스트패션 시장점유율(2022년 기준)에서 자라(인디텍스)를 근소한 차로 앞서고 있다. <로이터 기사 그래픽(2023년 12월 12일)>
현재 쉬인은 전 세계 패스트패션 시장점유율(2022년 기준)에서 자라를 근소한 차로 앞서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코어 사이트 리서치(Coresight Research)에 따르면, 2022년 11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자라는 4만개의 신제품을 미국 시장에 출시했다. 반면 쉬인은 같은 기간 150만 개의 제품을 내놓았다 이는 자라보다 37배 더 많은 수치다. 

한때 자라가 다른 리테일러보다 더 빠르게(fast) 달렸다면, 이젠 중국의 쉬인이 자라뿐만 아니라 모든 메이커를 제치고 엄청나게 빠르게(ultra-fast)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붉은 여왕의 효과’에서 붉은 여왕이 “두 배 더 빨리 달려야 한다”고 했던 말이 무색할 정도다. 

쉬인의 무서운 기세에 자라는 포지셔닝 진화 등 전략 전환을 꾀하고 있다. 유명 오트 쿠튀르들과 파트너십을 맺거나, 과감한 가격 인상을 통해 고급 시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핵심 브랜드의 가격 인상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자 ‘비밀 무기’인 레프티즈(Lefties)를 확장하는 전략도 폈다. 

Z세대를 겨냥한 저가형 브랜드 ‘레프티즈’는 원래 자라의 재고를 판매하는 매장으로 출발했다. 자라는 그런 레프티즈를 내세워 경쟁사 쉬인에 대응하고 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자라처럼 고급화와 저가형 브랜드를 동시 공략하는 것을 ‘양손잡이 전략’이라 부르고 있다. 

이쯤 되면 오르테가의 자라가 왜 지금까지 경쟁자, 연구자, 경영대학원에서 사례 연구의 대상이 되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끝으로 ‘겸손의 리더’ 오르테가의 한 마디다. 

“혁신과 고객에 대한 헌신이 우리 기업 문화를 정의합니다.”(Innovation and commitment towards our customers define our corporate culture.)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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