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부가 자국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의 공장을 미국으로 계속 내주는 한국 정부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6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파나소닉과 토요타 그리고 닛산 등이 전기차용 배터리 자국 내 시설 투자에 모두 1조 엔(약 9조3038억 원)을 투입하는데 일본 경제산업성도 3500억 엔(약 3조2563억 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일본 당국은 자국 내 배터리 생산 용량을 현재 80기가와트시(GWh)에서 2030년 150기가와트시로 2배 가까이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로 잡았다.
전기차와 배터리 주요 기업들 투자가 미국에 집중되고 있는 만큼 일본으로 ‘리쇼어링’을 유도해 자국 내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리쇼어링은 기업들이 해외로 옮긴 제조공장을 자국으로 되돌리도록 유도하는 정부 정책을 일컫는 말이다.
토요타는 2028년 가동을 목표하는 후쿠오카 배터리 신공장 건설에 일본 정부의 지원금을 투입한다.
파나소닉도 테슬라 의존도를 낮추고 스바루와 마츠다 등 자국 완성차 기업에 공급 확대를 추진하기 위해 5500억 엔(약 5조1082억 원) 규모의 자국 내 투자를 추진한다.
이런 주요 기업별 투자 계획에는 차세대 배터리와 중저가형 제품이 다양하게 포함됐다.
▲ 일본 요코하마에 위치한 닛산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배터리 업체들이 정부 지원에 힘입어 자국 내 생산은 물론 폼팩터 다양성 측면에서도 꾸준한 다변화와 발전을 이룰 환경을 갖추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배터리뿐 아니라 관련 부품과 장비 기업까지 지원을 추진한다. 배터리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공급망 구축까지 시야에 넣는 움직임이다.
미국과 중국이 첨단 제조업인 반도체에 이어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에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일본 또한 뒤따라 대응에 나서는 모양새다.
세계 전기차 시장은 대중화 직전 수요가 둔화되는 ‘캐즘’에 빠졌다는 평가가 많다. 이에 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볼보는 2030년까지 전기차로 완전 전환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포드와 GM과 같은 완성차 업체도 전동화 투자 규모나 전환 속도를 조절하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정부가 직접 지원 나서 기업이 투자를 지속할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중장기 관점에서 자국의 전기차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읽힌다.
원자재 시장조사업체 패스트마켓의 보고서를 보면 일례로 삼성SDI와 GM이 인디애나주에 35억 달러(약 4조6664억 원) 규모의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기로 합의한 배경에도 미국 정부의 노력이 뒷받침됐다.
앤드류 소서 패스트마켓 연구원은 “미 정부는 삼성SDI와 같은 배터리 업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전기차 제조 역량을 확보하려 한다”라고 분석했다.
미국에 이어 일본 정부와 배터리 기업의 자국내 대규모 투자 움직임 속에서 해외 투자에 올인하는 한국 배터리 업계를 향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K-배터리 3사 생산 거점 투자가 사실상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해외에서만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한국 산업 경쟁력과 경제에 부정적 여파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 SK온과 포드 합작사 블루오벌SK 켄터키주 글렌데일 공장 두 곳의 8월경 건설 현황. 1공장은 2025년부터 제품 양산에 돌입한다. < 블루오벌SK >
배터리 3사의 해외 생산 비중은 SK온 95.0%, LG에너지솔루션 91.3%, 삼성SDI 89.7%에 이른다. 이런 과도한 해외 생산 비중은 배터리 기업 실적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같은 배터리 생산 지원책이 자국 상황에 따라 변하면 해외 생산 비중이 높은 한국 배터리 기업의 실적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한국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에 “한국에서 일하는 게 여러모로 편한 만큼 보조금이 없었다면 미국에 진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까지 발벗고 나서 자국 배터리 지원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배터리 산업 경쟁력이 약화할 위기에 놓일 공산이 크다는 시각이 많다.
무역협회는 보고서를 통해 "안정적 공급망 구축 차원에서 국내 이차전지 제조 시설 확대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