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민정수석 최재경에게 야당이 공세 펴는 까닭  
▲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 전 수석의 후임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최재경 민정수석을 겨냥해 야당이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 수석을 통해 검찰을 통제하고 국면전환을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최 수석이 검찰에서 신망이 두터운 점을 감안해 앞으로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 “최 수석은 이명박 정부에서 우병우 행세를 했던 인물”이라며 “(최 수석 임명은) 검찰 수사권을 직접 휘두르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추 대표는 “이대로라면 최순실 일가와 그 부역자들이 모든 증거를 은닉할 것”이라며 최 수석의 인선 철회를 요구했다. 추 대표는 “검찰이 최씨와 그 부역자에게 장단 맞추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려면 최순실을 비롯한 모든 혐의자를 즉각 구속수사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문제는 박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이 지금 시급히 할 일은 국민에게 석고대죄하고 성역없는 조사를 받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대통령을 겨냥했다.

최 수석은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경질 요구가 빗발칠 때마다 유력한 후임자로 꼽혔다.

최 수석은 경남 산청 출신으로 대구 청구중과 대구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 17기를 수료하고 1988년 서울지검(지금의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법조 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그는 92년 법무부 검사, 97년 대통령비서실 파견근무,2003년 법무부 검찰2과장, 2005년 대검찰청 중수1과장, 2007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검사, 2008년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2009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2011년 대검찰청 중수부장, 2013년 인천지검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고검장 문턱에서 물을 먹기는 했지만 우 전 수석보다 훨씬 화려한 이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2014년 7월 세월호 참사 이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체포작전에 실패하자 책임을 지고 검사장에서 물러났다.

최 수석은 검찰에서 선후배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정평이 났는데 검사장에서 물러날 때 ‘아까운 인물’이라며 안타까워 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최 수석은 검찰을 떠난 뒤 이례적으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부름을 받기 전까지 법무연수원 석좌교수로 강의에 전념했다.

검찰조직에서 신망과 대조적으로 ‘정치검사’로 불리기도 하는데 BBK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최 수석은 2007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재직 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서울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과 BBK사건을 맡아 무혐의로 마무리했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근무할 때는 이 전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 비자금 의혹사건 역시 무혐의로 처리해 ‘면죄부 검사’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었다.

최 수석이 박 대통령의 ‘의중’대로 현 사태를 수습하고 국면 전환에 나설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이는 저돌적인 스타일과 무관치 않은데 최 수석은 2012년 대검 중수부장 재직 때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의 중수부 폐지방침에 반발해 총대를 메고 이른바 ‘검란(檢亂)’을 일으켜 총장의 옷을 벗게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최 수석은 최병렬 한나라당 전 대표의 조카이자 친박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의 고교후배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인 최순실과 우병우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최 수석에게 주어진 역할이라 해도 과연 그가 순순히 따를 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