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두산 지배구조 개편 '국민연금' 손에, 대규모 주식매수청구 땐 '합병 난항'

▲ 국민연금공단이 SK이노베이션과 SKE&S 합병 및 두산 구조개편에 반대하면서 SK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SK그룹과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향방이 결국 ‘국민연금공단’의 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SK이노베이션과 SKE&S 합병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며 제동을 걸었고, 두산3사(두산에너빌리티·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의 구조 개편에도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대규모 주식매수청구권까지 행사한다면, SK와 두산그룹이 추진하는 계열사 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물거품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SK이노베이션과 SKE&S의 합병안을 두고 ‘주주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며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소액주주들 결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이 반대하더라도 8월27일 열리는 SK이노베이션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국민연금은 SK이노베이션 지분 6.21%를 보유한 2대 주주이지만, 최대주주인 SK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36.22%로 훨씬 높기 때문이다.

다만 53.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소액주주들이 국민연금의 반대 결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SK그룹 입장에서는 소액주주들을 설득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미 많은 SK이노베이션 소액주주들이 1대 1.1917417로 확정된 SK이노베이션과 SKE&S의 합병 비율이 SK이노베이션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임시 주총에서 합병이 의결돼도, 다음달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K·두산 지배구조 개편 '국민연금' 손에, 대규모 주식매수청구 땐 '합병 난항'

▲ 국민연금공단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에 반대하면서, SK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주식매수청구권이란 주주총회에서의 특별결의사항에 반대하는 주주가 회사에 자기가 보유한 주식을 정당한 가격으로 매수해 줄 것을 청구하는 권리를 말한다.

SK이노베이션은 주식매수청구 행사 가격을 1주당 11만1943원, 최대한도는 8천 억 원으로 설정했다.

만약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약 6651억 원을 지급해야 하는데, 여기에 소액주주들까지 가세한다면 8천억 원의 매수청구권 한도를 넘어설 수 있다.

매수청구권 규모가 한도를 넘으면 합병 계약이 해제되거나, 합병 조건이 변경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은 9월19일까지다.

2014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합병을 추진할 때도 한도 이상으로 많은 소액주주들이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서 합병이 무산된 적이 있다. 당시 두 회사 지분 5% 가량을 보유했던 국민연금도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SK그룹이 8월27일 주총 전에 합병안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지난 22일 “SK이노베이션, SKE&S는 각자 주총 전에 임시 이사회를 개최해 일반주주 입장에서 합병 필요성과 합병비율을 재심의해야 한다”며 “합병과 같은 자본거래에서는 이사회가 사업적 관점 뿐 아니라 주주를 위한 최선의 이익인지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했다.

두산그룹도 국민연금의 결정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에서 두산밥캣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만드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추진하고 있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1주의 두산밥캣 주식을 보유한 주주는 0.63주의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받게 된다.
 
SK·두산 지배구조 개편 '국민연금' 손에, 대규모 주식매수청구 땐 '합병 난항'

▲  국민연금이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을 대상으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사실상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무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하지만 2년 연속 영업이익 1조 원 이상을 냈고, 순자산이 6조 원에 달하는 두산밥캣을 순자산 4천억 원, 2년 연속 100억 대 영업손실을 낸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붙이겠다는 방안에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주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두산에너빌리티 2대 주주(6.85%)이며, 두산밥캣 지분도 7.22% 보유하고 있다.

만약 국민연금이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반대하고 두산에너빌리티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두산에너빌리티는 정해둔 상한선인 매수청구권 6천억 원을 훌쩍 넘는 7천억 원어치를 매수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합병은 무산된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주식매수청구권이 정해둔 한도 이상으로 들어와도 이사회 검토를 거쳐 재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연금까지 반대한다면, 계획대로 강행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8일 두산그룹 사업재편과 관련해 “(두산로보틱스로부터) 정정신고서를 제출받았다”며 “구조개편의 효과, 의사결정 과정 등에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정 요구를 하겠다”고 두산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국회의 두산그룹을 향한 시선도 곱지 않다.

최근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명 ‘두산밥캣 방지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상장회사 합병에서 주가뿐만 아니라 자산 가치, 수익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증권가도 이번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무산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보고 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두산그룹이 이번 계획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매수청구권이 과도하게 행사되지 않아야 한다”며 “두산밥캣은 안정적 실적과 배당에 이끌린 투자자가 많지만, 두산로보틱스는 성장성을 보고 유입된 투자자가 많은 만큼 주주들이 모두 이번 주식교환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