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0조 원’ 이상의 실탄을 장전해 로봇, 전장(자동차용 전자장치), 시스템반도체 등에서 인수합병(M&A) 매물 확보에 적극 나설 태세다.

이 회장이 최우선 인수 후보로 검토하고 있는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이미 지분을 보유한 로봇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독일 콘티넨탈의 전장사업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삼성전자 실탄 ‘100조’ 장전, 이재용 로봇·전장 무르익는 인수합병 시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이 ‘100조 원’ 이상의 현금을 활용해 하만을 이을 대형 인수합병(M&A)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19일 삼성전자의 2024년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올해 6월30일 연결기준으로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단기금융상품 50조9213억 원을 포함해 모두 100조7955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2023년 말 91조7718억 원에서 9조 원 이상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 말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 지분 매각을 통해 5조 원가량의 현금을 확보한 데다, 올해 들어 반도체 업황이 좋아지면서 보유 현금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하반기에는 현금 유입이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매출 166조 원, 영업이익 31조 원을 기록하며 시장 컨센서스인 영업이익 28조 원을 웃돌 것”이라며 “고부가 제품(HBM3, HBM3e)의 판매 비중이 확대되고, 범용 D램의 가격 상승률이 예상치를 상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규모 인수합병(M&A)을 나서기에 부담 없는 재무여력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이재용 회장도 최장 취임 3년차를 맞은 만큼, 미래 먹거리 확보를 통해 가시적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지난 7일 파리 올림픽을 계기로 떠난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많은 분과 (미팅을) 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실적으로 보여야죠”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주목하고 있는 대표적 분야는 로봇이다.

회사는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지능형 반려로봇 ‘볼리’를 선보였으며. 이르면 9월 초 웨어러블 로봇 ‘봇핏’을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지난해 867억 원에 지분 14.99%를 확보했던 로봇 벤처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나머지 지분도 인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는 현재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59.99%를 확보할 수 있는 매수청구권(콜옵션)을 확보하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협동로봇(사람과 상호작용하면서 일할 수 있는 로봇)에 강점을 갖춘 업체로,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라인에 양팔형 협동로봇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콘티넨탈의 전장사업 부문도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콘티넨탈은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디스플레이를 포함해 전장사업 부문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는데, 삼성전자의 전장 자회사 하만 경영진이 강력한 인수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티넨탈의 전장사업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과 시너지도 기대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만약 삼성전자가 콘티넨탈 전장사업부를 인수한다면 인포테인먼트 중심의 전장 사업이 고성능 컴퓨팅 칩 분야로 확장하고, 엑시노스 오토를 비롯한 맞춤형 오토 칩 생산 확대가 가능해 향후 삼성 파운드리 사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 실탄 ‘100조’ 장전, 이재용 로봇·전장 무르익는 인수합병 시계

▲ 삼성전자의 유력한 인수합병 매물로 레인보우로보틱스, 독일 콘티넨탈의 전장사업 부문 등이 거론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 시계는 2017년 전장 기업 하만을 인수한 뒤 7년 동안 멈춰있다.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로 운신의 폭에 한계가 있었고, 높아진 글로벌 기업들의 몸값과 경쟁당국의 심사 통과 여부를 감안하면 중대한 결정을 쉽게 내리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해 5월 삼성전자 자회사 삼성메디슨이 프랑스 AI 기반 의료 스타트업 '소니오'를 인수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7월에는 삼성전자가 ‘지식 그래프’ 기술을 보유한 영국 스타트업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지식 그래프란 관련 있는 정보들을 서로 연결된 그래프 형태로 표현해 주는 기술을 말한다. 데이터를 통합하고 연결해 사용자에 관한 이해를 높이고, 빠른 정보 검색과 추론을 지원해 개인화된 AI를 구현하는 핵심 기술로 꼽힌다.

다만 글로벌 경기가 불안정한 만큼 대규모 인수합병(M&A)은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업 인수에 비싼 가격을 지불했다가 경기침체를 맞게 되면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인수합병 대상으로 거론됐던 미국계 다국적기업 존슨콘트롤즈 냉난방공조(HVAC) 사업부 인수를 삼성전자가 포기한 것도 80억 달러(약 10조 원)에 이르는 몸값이 과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워런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도 올해 2분기 말 기준 주식 포트폴리오를 대폭 축소하고, 현금을 사상 최대 수준인 2770억 달러(약 370조 원)까지 확보하는 등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대표이사 부회장도 대형 인수합병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앞서 밝혔다.

한 부회장은 올해 4월 “생활가전 영상디스플레이, 네트워크, 의료기기 사업부 등에서도 인수합병을 하려고 많이 보고 있다”며 “다만 큰 인수합병은 상대방과 거래 조건 조율 등으로 단시간에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