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자동차 '빅5' 전기차 투자 속도조절 가닥, 한국 배터리3사 실적에 '먹구름'

▲ 벨기에 브뤼셀 모터쇼에서 2020년 1월9일 폴크스바겐 아래 아우디의 전기차 e-트론 스포츠백 모델이 전시돼 있다. 폴크스바겐은 아우디의 브뤼셀 공장을 폐쇄하는 방안을 최근 검토중이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유럽 대표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투자에 속도를 늦추는 양상이 나타나자 한국 배터리3사 수주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그리고 SK온 모두 유럽 고객사들에서 상당한 매출액을 거두고 있는데 고객사들의 투자 속도가 늦춰지면 사업 전망에 먹구름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6일(현지시각)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유럽 5대 자동차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전기차 판매량이 빠르게 둔화하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올해 상반기 유럽에서 전기차 판매량이 지난해 상반기보다 15%나 감소해 18만여 대에 그쳤다. 같은 기간 순이익도 14%나 급감해 전기차 관련 투자 비용을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파악된다. 

폴크스바겐의 올리버 블루메 최고경영자(CEO)는 현지시각 지난 1일 열렸던 2분기 콘퍼런스콜을 통해 “(전기차 수요 둔화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져)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라고 반복해서 언급했다. 

폴크스바겐은 전기차 비용을 덜어내는 차원에서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계열사 아우디 공장을 폐쇄하는 안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비롯해 스텔란티스와 BMW 그리고 르노 및 메르세데스-벤츠 등 유럽 5대 자동차 업체 또한 수익성 부진에 전기차 관련 사업을 축소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스텔란티스의 경우 유럽에서 상반기 자동차 판매가 전년 대비 6% 줄었다. 

프랑스의 자동차 부품업체 OP모빌리티는 유럽에서 전기차 출하량이 당초 기대보다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렇게 주요 기업들이 전기차 생산량을 줄여나가는 모습이 역력한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회계법인 EY의 콘스탄틴 갈 분석가 발언을 인용해 “유럽 전기차 시장은 동력을 상실했으며 독일같은 국가에서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독일과 스웨덴의 7월 전기차 판매량은 각각 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7%와 15% 감소했는데 이러한 감소세가 당분간 이어진다는 것이다. 
 
유럽 자동차 '빅5' 전기차 투자 속도조절 가닥, 한국 배터리3사 실적에 '먹구름'

▲ 헝가리 괴드(Göd)에 위치한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 공장 내부에서 두 명의 작업자들이 생산 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 삼성SDI >

유럽연합(EU)은 친환경 제조업인 전기차로 전환 과정에서 구매 보조금과 같은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시장도 빠르게 포화돼 기업들이 수요 둔화에 맞춰 생산 계획 축소로 대응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 빅5 업체들 모두 내연기관차 중심인 터라 전기차 연구개발 비용 부담도 커 사업을 빠르게 확장할 여유도 크지 않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의 저가 전기차 공세가 지속되는 점도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차 사업을 키우기 더 어려워진 배경으로 꼽힌다. 

비록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 인상으로 맞서고 있지만 BYD를 앞세운 중국의 가격 경쟁력을 낮추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로 인해 유럽 전기차 산업의 캐즘(대중화 이전 수요 감소) 골이 더욱 가파르고 깊어질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이는 유럽 전기차 기업들에서 상당한 매출을 거두는 한국 배터리 3사에 큰 악재로 여겨진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모두 2023년 글로벌 시장 지역별 매출 비중에서 유럽이 가장 높다. SK온 또한 유럽 헝가리에 배터리 공장을 운영한다. 

이런 가운데 유럽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가 본격화하면 K배터리 기업들로서는 주요 고객사 수주 물량 확보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전기차 시장 조사업체 EV볼륨즈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모두 올해 4월 배터리 장착량 기준 고객사 순위에서 각각 폴크스바겐 그룹과 BMW그룹 등 유럽 업체들이 1위로 나타났다. 

SK온도 폴크스바겐 비중이 현대차와 포드에 이어 3위로 집계됐다. 

결국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그리고 SK온 모두 2분기 실적 악화와 비상경영 등과 마주한 가운데 유럽 고객사들이 전기차 투자 계획을 축소하거나 미루면 실적 부진 상황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떠오른다. 

에너지 전문 조사업체 우드맥킨지는 논평을 통해 “유럽 전기차 판매량이 예상치에 미치지 못해 배터리 설치 용량도 20% 감소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