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금융감독원의 제동으로 두산그룹 지배구조 재편 시도가 새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볼 때 금감원의 정정요구 이후 합병비율을 바꾼 사례가 종종 있었고 여론을 얻지 못한 경우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밸류업 앞두고 두산그룹 사업재편 폭탄, ‘분노의 소액주주’ 합병비율 바꿔낼까

▲ 두산그룹 내 알짜배기 회사 두산밥캣의 향배를 두고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두산그룹이 현재 방안을 그대로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지만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힘을 주는 상황에서 소액주주의 거센 반발이 정치권으로도 이어지고 있는 만큼 더 큰 반발에 직면할 수도 있다.

2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이 전날 두산그룹 재편안에 제동을 건 것은 합병비율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감원은 전날 “증권신고서(합병) 심사결과 투자자의 합리적 투자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에 해당돼 두산그룹에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국내 상장사가 합병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금감원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금감원은 증권신고서 정정 제출과 관련해 구체적 사유를 공개하지 않지만 그동안 두산 계열사 소액주주 불만이 크게 제기됐고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금감원이 합병비율을 들여다봤을 가능성이 크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은 22일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두산에너빌리티 주주가 100주당 27만1천 원의 손해를 보게된다며 두산에너빌리티 이사진의 배임 소지를 지적했고 김 후보자도 같은 자리에서 두산그룹 재편에 대해 우려섞인 목소리를 냈다.

두산그룹 재편안의 핵심은 알짜 계열사인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옮겨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분할’, ‘합병’, ‘교환’의 세 절차를 밟게 된다.

우선 두산에너빌리티가 존속회사와 신설회사로 분할되는데 이 때 ‘분할비율’은 신설회사가 기존 두산에너빌리티가 지닌 두산밥캣 지분 46%를 고스란히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0.76대 0.24로 정해졌다.

이후 두산로보틱스가 신설회사와 합병된다. 이 과정에서 두산로보틱스는 신설회사 주주들로부터 지분을 넘겨받는 대가로 두산로보틱스 신주를 발행해 지급한다. 이 ‘합병비율’은 1대 0.13이다. 

마지막으로 두산밥캣의 잔여 지분 54%를 보유한 일반주주들과 포괄적 주식교환을 거친다. 또다시 두산로보틱스의 신주를 발행해 교환하는데 이 ‘교환비율’은 1대 0.63으로 책정됐다.  

가령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A씨가 100주를 소유하고 있다고 하면 첫 번째 ‘분할’단계에서 두산에너빌리티 존속법인 주식 76주와 신설법인 주식 24주를 갖게 된다.

이후 ‘합병’ 단계에서 신설법인 주식 24주를 두산로보틱스에 넘기고 두산로보틱스로부터 두산로보틱스 3주(24주*0.13)가량을 받는다. 

이번에는 두산밥캣 주주 B씨가 100주를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B씨는 ‘교환’ 단계에서 두산밥캣 주식을 모두 넘기고 두산로보틱스 주식 63주를 받게 된다.

결론적으로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기존 주주 양측으로부터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지주사 두산은 비용 하나 들이지 않고 두산밥캣에 대한 지배력을 14%에서 42% 수준으로 높이게 된다. 알짜배기 회사 두산밥캣으로부터 더 많은 배당금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소액주주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밸류업 같은 소리를 한다’며 강한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한국증시 저평가의 주된 원인으로 구시대적 지배구조가 지적되는데 두산그룹이 또 다시 신뢰성을 흔드는 ‘폭탄’을 터뜨린 꼴이 됐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도 밸류업을 중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대주주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승인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날 나온 금감원의 정정 요구로 두산그룹이 합병비율을 바꿔 사업재편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나오는 이유다.

자본시장전문가들을 취재한 결과 위 과정 가운데 ‘분할비율’과 ‘교환비율’은 바뀔 수 없다. 분할비율은 세제적 문제가 뒤따르며 교환비율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합병비율’은 기업이 재량적으로 바꿀 수 있다. 위에서 1대 0.13의 비율은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됐으나 이를 자산, 실적 등 기준으로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1조4천억 원을 넘은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200억 원가량의 영업적자를 냈다. 순자산도 두산밥캣은 6조 원이 넘지만 두산로보틱스는 4400억 원에 그친다.

그럼에도 주가에서는 두산밥캣이 만년 저평가를 받는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연초 ‘로봇테마’에 올라타면서 실적대비 과열된 수준으로 올랐다. 결국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해 두산에게 유리한 반면 주주들에게 불리한 구조가 된 것이다.

따라서 두산그룹이 합병비율의 기준을 주가가 아닌 실적으로 바꾸면 위 수치가 0.13에서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금융업계 한 전문가는 “주주들의 불만이 이 이상 더 커지면 두산그룹은 합병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며 “다만 이는 두산그룹이 그만한 용기를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과거 금감원의 정정요청을 받고 합병비율을 소액주주에게 유리하게 바꾼 경우도 종종 있다.
 
밸류업 앞두고 두산그룹 사업재편 폭탄, ‘분노의 소액주주’ 합병비율 바꿔낼까

▲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엠엔소프트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합병비율을 소액주주들측에 유리하게 바꾼 바 있다.


현대오토에버는 2021년 계열사 현대엠엔소프트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금감원으로부터 2차례 정정 요구를 받고 합병비율을 고쳤다.

당시 현대엠엔소프트 소액주주들은 지금의 두산 사례와 마찬가지로 합병비율이 대주주에게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현대오토에버와 현대엠엔소프트 합병비율은 애초 1대 0.958에서 1대 1.002로 소액주주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었다.

다만 합병비율 변경을 통해 웃을 수 있는 건 기존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뿐이다. 두산밥캣 주주들의 경우 평균주가 산출 기간을 바꾸는 등 지금의 기준을 바꾸지 않는 한 ‘교환비율’은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두산밥캣의 외국인 기관투자자인 테톤캐피탈의 션 브라운 이사는 22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의 ‘두산그룹 케이스로 본 상장회사 분할 합병 제도의 문제점’ 세미나에서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은 날강도 짓”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두산그룹이 여론을 의식해 지배구조 재편안을 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합병을 뼈대로 하는 지배구조 재편안을 발표했다가 소액주주는 물론 글로벌 자문사 등의 반대로 여론을 얻는 데 실패했고 결국 지배구조 재편안을 철회했다.

두산그룹주는 사업재편 불확실성으로 이미 투자심리가 크게 악화한 상황이다.

이날 두산그룹주는 전날 금감원의 제동에 따른 지배구조 재편 불확실성이 커지며 두산(-11.79%), 두산로보틱스(-8.02%), 두산밥캣(-6.16%), 두산에너빌리티(-4.49%) 등 주요 상장 계열사 주가가 크게 내렸다.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두산밥캣의 두산로보틱스와 합병을 단기 악재로 평가하며 “두산밥캣이 두산로보틱스와 시너지를 낸다는 것은 장기 관점이며 단기적으로는 지분 교환 및 합병에서 두산밥캣의 가치 희석 우려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바라봤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