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SK온 캐즘 장기화 기류에 비상경영, 신공장 보류에 인력감축도

▲ 배터리업체들이 캐즘 극복을 위해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국내 배터리 업계가 짧은 기간 내 전기차 배터리 캐즘(일시적 수요감소)을 극복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해 공장 신설 투자를 보류하거나 인원 감축 등 긴축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당초 올 하반기 배터리 시황이 반등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세계적으로 정부 보조금 축소 등 친환경 정책이 후퇴하면서 전기차 시장 침체가 예상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1일 배터리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배터리 수요 침체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잇달아 투자 축소 또는 중단을 발표하는 데 이어 인력 구조조정, 연봉 동결 등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특히 SK온, LG에너지솔루션 등 앞서 북미지역을 비롯해 공격적 해외 설비투자를 계획했던 배터리 제조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 6월28일~29일 이틀 동안 진행된 SK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 최태원 회장은 “그린·화학·바이오 사업 부문은 시장 변화와 기술 경쟁력 등을 면밀히 따져서 선택과 집중, 내실 경영을 통해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최 회장이 주도적으로 나서 탄소중립 등 그린 친환경 사업 일환으로 배터리 사업 확대를 강력히 추진해왔지만, 그의 ‘질적 성장’과 '내실 경영' 발언은 배터리 투자 축소를 염두한 것이란 해석이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 SK온은 그룹 경영전략회의 이틀 뒤인 1일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회사는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최고생산책임자(CPO),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C레벨 전원의 거취를 이사회에 위임하는 한편 최고관리책임자(CAO)와 최고사업책임자(CCO) 등 일부 C레벨직을 폐지키로 했다. 또 성과가 미흡한 임원은 연중 언제라도 보직을 박탈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올해 임원 연봉은 모두 동결하고, 올해 흑자 전환하지 못할 경우엔 내년에도 연봉을 동결키로 했다. 임원 대상 각종 복리후생과 업무추진비도 대폭 축소하고, 해외 출장 시 항공기는 이코노미석 탑승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LG엔솔·SK온 캐즘 장기화 기류에 비상경영, 신공장 보류에 인력감축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6월28일부터 29일까지 경기 이천시 SKMS연구소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SK온은 회사 설립 이후 지난 10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21년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10분기 동안 총 2조6411억 원의 누적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 2분기도 3천억 원 대 영업적자가 예상된다. 

부채 비율도 심각하다. SK온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회사 부채비율은 188.2%이며, 분기 이자비용만 약 1780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엔 이자비용으로만 무려 4698억 원을 지출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회사는 추가로 자금을 빌려 매년 5~7조 원 가량을 설비 확장에 투자했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총 20조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했다. 올해 1분기 기준 SK온의 총 차입금은 18조5744억 원이다.

SK온은 올 연말까지 임원의 최대 30%를 축소 또는 전보 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임원은 이미 지난달 해임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5월엔 헝가리 이반차 배터리 공장 근로자 수백 명을 해고했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또 지난해 말엔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배터리 공장의 생산을 축소하고 일부 직원들에 임시 무급휴직 조치를 시행했다.

회사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합작해 올해 해외 배터리 설비투자에 7조5천 억원, 내년에도 비슷한 규모의 설비 투자를 계획했다. 하지만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판매가 급감하면서 배터리 공장 투자 계획 보류나 지연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LG엔솔·SK온 캐즘 장기화 기류에 비상경영, 신공장 보류에 인력감축도

▲ 국내 배터리 업계가 조만간 시황 반등이 나타날 것이란 관측과 달리 업황 부진이 길어지자 공장 신설 투자를 보류하거나 인원감축에 나서는 등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사진은 올해 4월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애리조나주 퀸크릭시에 건설할 공장 부지에서 회사 관계자와 애리조나주 정부 인사들이 기념 촬영하는 모습. <연합뉴스>

LG에너지솔루션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다. 
 
회사는 최근 약 3조 원을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건설할 계획이었던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회사 관계자는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기존 생산 시설들의 최적화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지난 6월24일엔 2조7천억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공식적으로 생산시설과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일부를 외화 사채를 갚는 용도로 쓰일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현재 회사 차입금 규모는 작지 않다.

한국신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의 총 차입금은 12조8576억 원이다.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55.7%이상 증가한 수치다. 게다가 전기차 캐즘으로 수익은 줄어가는 데 시설투자 비용은 유지되고 있다. 

회사는 올해 1분기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세액공제(AMPC) 혜택을 제외하면 영업손실 316억 원으로, 사실상 적자 전환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9.9%, 영업이익은 75.2% 감소했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2021년 4조 원, 2022년 6조3천억 원, 2023년 11조 원 등 3년간 21조 원이 넘는 시설투자를 진행했고, 올해 역시 11조 원 규모의 투자를 이어갈 계획이다. 

회사가 비록 올해 1분기 말 기준 84.5%의 낮은 부채비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차입금 의존도는 2022년 이후 지속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신용평가 보고서는 이미 투자가 예정된 프로젝트가 다수 존재해 추가 차입금 증가를 예상했다.

북미에서만 캐나다 온타리오주 스텔란티스 합작공장, 오하이오주 혼다 합작공장, 미국 미시간주 GM과 합작공장, 조지아주 현대차와 합작공장, 애리조나주 독자 공장 등의 건설에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 상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전기차 배터리 캐즘이 일반적이지 않고, 캐즘 극복을 위한 시간이 예상보다 더 길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고, 충전 시간이 30분에서 1시간 가량으로 매우 긴데다, 배터리 수명도 7~10년에 그치는 등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앞서 해결해야 할 것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원래 예측대로라면 반값 전기차는 작년 말에 나왔어야 했고, 올해부터는 오히려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 가격이 더 저렴해졌어야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며 “전기차 캐즘 극복에 3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