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무제한' 독일 아우토반, 이제는 최신형 풍력 터빈 건설 발목 잡아

▲ 독일의 친환경 에너지 확보 계획이 노후된 인프라에 발목이 잡혔다. 20세기 기준에 맞춰 건설된 아우토반(고속도로)이 이제는 15층 높이로 커진 풍력 터빈 자재를 운반하기에는 비좁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독일 아우토반 길가에 세워진 풍력 터빈 날개 운송 차량. < Hippox >

[비즈니스포스트] 독일의 풍력 에너지 확보 계획이 뜻밖의 암초를 만나 차질을 빚고 있다.

20세기 '독일 부흥'의 상징'이자 '속도 무제한'으로 유명했던 아우토반이 21세기형 풍력 터빈 자재들을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아우토반은 독일어로 자동차를 뜻하는 '아우토(auto)'와 도로를 뜻하는 '반(bahn)'이 합쳐진 말로 말 그대로 고속도로를 의미한다.

17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독일에서 아우토반 등 노후 도로 때문에 풍력 터빈 건설을 위한 자재들이 제때 운송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풍력 터빈 생산업체 ‘에너콘’ 관계자는 블룸버그를 통해 “에너콘은 도로 문제로 올해 상반기에만 70건의 운송 지연을 겪었다”며 “운송 지연에 따라 위약금 1만 유로(약 1415만 원)을 납부해야 했다”고 말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철강업체 'SIAG튜브앤타워' 소유 터빈 자재 공장은 심각한 운송 지연 문제로 보관시설이 가득 차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했다.

관계자들은 터빈 자재를 실은 화물 트럭의 도로 통과 허가를 요청하는 과정이 복잡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허가 과정을 단일화한 네덜란드나 스웨덴과 달리 독일은 화물 트럭이 통과하는 지역 정부마다 허가를 따로 받아야 하고 중앙 정부 허가도 필요하다.

글로벌 풍력 터빈 제작 기업 ‘노르덱스’ 관계자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현재 풍력 터빈 자재 운반 허가가 나오려면 최대 3개월까지 걸릴 수 있다”며 “허가 과정의 투명성과 관료들의 소통 의지 부족으로 막대한 지연 벌금을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주 풍력 발전 자재 통과 관련해서 지연된 허가 건수는 1만5천 건이 넘었다. 

운송 문제를 인지한 독일 정부는 내년 인프라 개선에 약 128억 유로(약 18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독일 정부는 2030년 친환경 에너지 계획 목표를 달성하려면 신규 풍력 터빈을 하루 6개를 설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연간 6만 건이 넘는 자재 운송이 필요하다. 

그런데 독일에서 사용하는 최신 풍력 터빈은 높이만 해도 35미터로, 아파트 15층 높이를 넘는 수준이다.

반면 독일의 교통망은 아우토반을 포함해 20세기 중후반에 건설된 노후도로가 많아 풍력 터빈 날개나 몸통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 부족하다.

당시 건설된 도로는 20세기의 교통량과 차량 크기 맞게 설계돼 최신 풍력 터빈 자재를 실은 대형 트럭이 통과하면 길 전체가 통째로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터빈 몸통은 통과할 수 있는 도로조차 찾기 어려워 운송에 추가로 몇 시간에서 길면 며칠을 더 쓰게 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전국을 연결하는 아우토반은 1933년 나치 독일의 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가 세계 제2차 대전 때 중단된 후 1970년대 이후 완성돼 독일 경제 부흥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경부 고속도로 계획도 여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