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불리는 유럽연합(EU)의 핵심원자재법(CRMA, Critical Raw Material Act) 도입이 눈앞에 다가왔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이어 배터리 공급망 다변화를 향한 요구가 커지면서 국내 배터리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로서는 원료 조달에서 중국 의존도 낮추기에 속도를 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유럽판 IRA’ 눈앞에 다가와, K-배터리 3사 공급망 다변화 과제 커져

▲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3사가 '유럽판 IRA'인 유럽연합의 핵심원자재법(CRMA)에 대응해 배터리 공급망 다변화에 더욱 공을 들여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16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탄소중립 시대를 위한 그린딜 산업계획(그린딜 산업계획)’ 세부 논의를 시작했는데 이 가운데 핵심원자재법은 국내 배터리3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의 그린딜 산업계획은 친환경 산업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조건부 혜택을 담고 있는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타고 최근 BMW는 멕시코에 전기차 공장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이탈리아 최대 전력기업 에넬은 미국에 태양광 모듈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폭스바겐, 독일 최대 철강기업 아르셀로미탈 등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 투자 확대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연합은 이런 유럽 주요 기업들의 이탈을 막고 역내 친환경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탄소중립과 관련한 분야에 보조금 등의 혜택을 늘리는 내용을 담은 그린딜 산업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린딜 산업계획 아래 추진되고 있는 여러 법안 가운데 특히 핵심원자재법은 국내 배터리3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핵심원자재법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마찬가지로 배터리 핵심 소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지난해 4분기까지 의견수렴을 마치고 올해 3월 안으로 공식 발표된다.

아직 세부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유럽연합 집행위원이 “역내에서 리튬과 같은 핵심 원자재 조달의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언급한 점을 보면 핵심원자재법에는 리튬을 포함한 배터리 원자재의 역내 조달 조건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유럽연합 역내에서는 배터리 원자재의 직접 채굴 및 생산이 제한적이다. 이에 배터리업계에서는 핵심원자재법의 방향이 역외 원자재 수입국 다변화 및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한 역내 조달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핵심원자재법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배터리3사의 당면 과제는 근본적으로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면서 배터리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일이 꼽힌다.

국내 배터리3사는 지난해부터 IRA 발효를 계기로 중국을 제외한 지역, 특히 북미에서 장기 공급계약, 지분투자 등을 통해 배터리 원자재를 확보하는 데 힘써왔다.

여기에 유럽연합의 핵심원자재법에도 맞춘 공급망 전략도 짜야 하는 셈이다.

아직 핵심원자재법 공식 발표와 인플레이션 감축법 세부 조항 확정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선제적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해 둔다면 어떤 법안에도 대응할 수 있게 된다.

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이자 양극재를 중심으로 배터리소재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LG화학의 신학철 부회장도 근본적인 공급망 다변화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신 부회장은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어느 국가든 정책은 변하기 때문에 LG화학은 한 국가의 정책에 따라 회사의 공급망 전략을 세우지 않을 것”이라며 “LG화학의 공급망 전략은 세계 주요 지역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IRA를 시행한) 미국은 그 가운데 한 곳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핵심원자재법 역시 아직 확실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다만 국내 배터리3사 모두 이전부터 외형확장과 함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해왔고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나 핵심원자재법은 세부 전략을 조금씩 수정하게 만드는 요인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 유럽연합 핵심원자재법에서 폐배터리 재활용이 차지하는 중요도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국내 배터리3사는 폐배터리 재활용사업 육성에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내 배터리3사는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1년 12월 LG화학과 함께 600억 원을 투자해 북미 최대 폐배터리 재활용기업 ‘라이사이클’의 지분 2.6%를 확보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포스코그룹과 폐배터리 재활용을 포함한 배터리 전체 가치사슬(밸류체인)에서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은 ‘뉴 그린 포트폴리오(새로운 친환경 사업구조) 전환’이라는 비전 아래 폐배터리 재활용을 핵심 신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삼성SDI는 현재 국내 재활용협력사와 함께 천안, 울산 등 국내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공정 부산물(스크랩)에서 배터리 원자재를 회수해 재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 체계를 2025년까지 모든 글로벌 생산거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배터리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는 2025년 38조 원에서 2030년 68조 원, 2040년 221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2022년에 가장 주목받았던 정책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라면 2023년부터는 유럽 국가들의 움직임, 특히 3월 중 발표될 핵심원자재법을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