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선진국’ 독일의 딜레마, 원전 폐쇄했더니 석탄발전 의존 커져

▲ 독일 야콥스도르프에 위치한 풍력 발전소.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재생에너지 선진국으로 불리는 독일에서 올해 겨울 석탄 발전을 향한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높은 천연가스 가격, 떨어지는 유럽연합(EU) 탄소 배출권 가격 등에 석탄 발전이 천연가스 발전보다 저렴해지고 있어서다.

특히 독일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한 탓에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석탄 발전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놓인 것으로 분석된다.

10일(현지시각) 로이터는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 보고서를 인용해 독일 내 석탄 발전 비중이 올해 겨울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면서 천연가스가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탓에 저렴한 석탄 발전에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LSEG 집계에 따르면 천연가스 가격은 올해 2월 기준 최근 2년 사이 저점을 찍었으나 그 뒤 지난 6월 기준으로 40%가량 올랐다.

석탄 발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는 유럽연합(EU) 환경 규제로 인해 천연가스보다 비용 부담이 높았다.

석탄은 천연가스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두 배 높은데 유럽 국가들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때마다 유럽연합 배출권거래제도(EU-ETS)를 통해 배출권을 구매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배출권 가격이 1톤당 100유로에 달했던 2023년에는 석탄 발전보다 천연가스 발전이 쌌던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LSEG는 배출권 가격이 80유로 아래라면 석탄 발전이 천연가스 발전보다 저렴해진다고 분석했다. 올해 7월 초 기준 유럽연합 배출권 가격은 1톤당 68유로였다.

피터 노르비 LSEG 에너지 애널리스트는 “올해 11월부터 독일에서 저효율부터 중간 정도의 효율을 가지는 가스발전소들이 고효율 석탄발전소에 대체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은 2022년부터 전력의 절반 이상을 재생에너지에서 얻고 있어 이 분야의 선진국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유럽 선진국 가운데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독일 응용과학연구소 프라운호퍼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독일 전력 발전량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7%나 됐다. 32%를 넘어선 풍력 바로 다음이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경제 대국들이 현재 석탄 발전을 전면 퇴출한 것과는 대조된다.
 
‘재생에너지 선진국’ 독일의 딜레마, 원전 폐쇄했더니 석탄발전 의존 커져

▲ 프랑스 툴루즈 인근 원자력 발전소. <연합뉴스>

2030년까지 다른 국가들처럼 석탄 발전을 전면 퇴출하기로 약속한 독일 정부에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독일 연방 경제기술부(BMWK)는 지난 2월 2040년까지 150억 유로(약 22조 4천억 원)를 들여 천연가스 발전소와 수소 전환시설 15~20개를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천연가스 발전 과정에서 나온 메탄을 포집해 수소로 재활용해 기존 발전소들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친환경 연료인 수소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화석연료인 석탄 대신 같은 화석연료지만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 천연가스 발전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이에 저먼워치(German Watch) 등 독일 국내 환경단체 8곳은 정부 계획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내놨다.

저먼워치는 성명서를 통해 “에너지 부문에서 국가 탄소 감축 전략에 탄소포집 기술을 포함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에너지 전환을 저해하는 짓”이라며 “정부는 화석연료 인프라를 향한 불필요한 투자를 멈추고 잘못된 길을 버릴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는 지난 4월 독일 에너지 현황을 분석하면서 2026년 기준 독일 석탄 발전량이 9.2기가와트에 달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매체는 “독일은 2030년까지 석탄 발전을 완전히 퇴출하고 싶어하지만 독일 내 기업들은 대체 에너지 수단이 없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은 계획을 향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며 “더구나 독일은 이미 지난해 마지막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독일 정부는 2023년 4월 네카베스트하임 발전소 전력 공급을 중단하면서 자국 내 남은 마지작 원전을 폐쇄했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순수 재생에너지만으로 국가 전력망을 운영할 수 없는데도 독일은 원전이라는 대안을 없앤 탓에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독일이 2022년 탈원전을 결의했을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독일은 치솟는 에너지 가격과 온실가스 배출량에도 불구하고 일부 공포 여론에 휩쓸려 원전 전면 퇴출이라는 실수를 저질렀다”며 “원전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스러울 수는 있어도 기후변화나 석탄 발전의 환경오염도 그만큼이나 무서운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웃 국가 프랑스가 기존 원전 수명을 연장하면서 효과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한 것과 비교하는 시각도 나온다. 프랑스는 독일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깨끗한 에너지를 자국민에게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원전 기술을 보유한 다른 나라들은 독일을 반면교사 삼아 최대한 원전을 오래 유지하면서 독일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제대로 이성을 유지한 사람들은 독일이 원전을 퇴출하기 전에도 이런 결정이 석탄 의존도를 높일 것이라고 경고했고 이는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