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사반장 1958은 판타지로 과거를 소환하는 장단점을 안고 있는 셈이다. 가공의 이야기 속에서나마 정의가 구현되는 쾌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정답지가 허망함을 안겨 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판타지라면 있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수사반장 1958 메인 포스터. < MBC > |
[비즈니스포스트] 최근 결이 다른 TV 시리즈 두 개를 연이어 보게 되었다. 둘 다 범죄를 다룬 드라마 시리즈로 거의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하나는 벌써 15년이 지난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 시즌1(AMC, 2018)이고, 다른 건 올해 방영된 ‘수사반장 1958’(MBC)이다. 수사반장 1958을 몰아보기로 시청한 뒤 시청 목록에 올려두고 있던 브레이킹 배드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지역, 시대 등 무엇 하나 비슷한 것이 없는 두 드라마를 보면서 새삼 매체가 ‘범죄’를 다루는 방식을 생각해 보았다.
오리지널 ‘수사반장’은 1970~1980년대 장기간 방영된 인기 드라마였다. 1971년에 시작해 1984년 종영된 뒤 시청자들의 요청으로 1985년 부활해 1989년까지 방영되었다.
아마 50대 이상이라면 수사반장과 관련된 기억이 대부분 있을 것이고 그 세대가 아니라도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의 한 장면인 자장면을 먹으며 수사반장을 시청하는 형사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수사반장 1958은 오리지널 수사반장의 프리퀄이다. 최불암 배우가 연기한 박 반장의 젊은 시절을 이제훈 배우가 맡아 형사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거 출연진이었던 김상순, 조경환, 남성훈 배우도 같은 이름으로 등장한다.
수사반장이 경제 개발과 산업화가 가속되는 1970~1980년대의 한국 사회상과 거기서 발생하는 범죄 사건을 다룬다면 수사반장 1958은 1958년부터 60년대 중반까지 가난한 현실과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사회 풍경을 배경으로 한 범죄들이 그려진다.
정치 깡패의 횡포, 부모의 권력을 등에 진 귀공자들의 탈선, 아동 유괴 및 불법 해외 입양 등 당대 사회문제를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시대가 다르면 범죄도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사회 시스템이 정착되지 못한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한국 사회를 나름대로 잘 반영하고 있는 드라마다. 과거의 서울 시내 모습을 재현한 세트와 소품 등을 통해 레트로 감성을 느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반장 1958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시청자가 있다면 드라마가 너무 착하기 때문 아닐까 추측해 본다.
범죄의 잔인함이나 액션 장면의 수위가 전혀 낮지 않지만, 시종일관 ‘권선징악’이 철저하게 구현된다. 1950~1960년대가 지금보다 덜 복잡하고 사람들도 순진했다고 하더라도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되는 고소설 같은 시대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수사반장 1958은 판타지로 과거를 소환하는 장단점을 안고 있는 셈이다. 가공의 이야기 속에서나마 정의가 구현되는 쾌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정답지가 허망함을 안겨 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판타지라면 있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브레이킹 배드 시즌1은 수사반장 1958과 정반대 지점에 있다. 주인공이 범죄를 저질러도 요행히 계속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고 범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브레이킹 배드’는 요즘 말로 하면 ‘흑화’ 정도일 것 같다. 점점 나쁘게 변해간다는 뜻에서 그렇다.
고등학교 화학 교사 월터 화이트가 마약 제조, 유통에 뛰어든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드라마가 시작된다. 주인공 이름에 들어간 ‘화이트’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칼텍에서 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월터는 촉망받는 연구원이었던 과거가 있는 인물로 시즌1에는 사연이 나오지 않지만 어쩐 일인지 연구원 생활을 접고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과거 동료와 스타트업 회사를 창업한 이력도 있고 그때의 동료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 드라마가 일반적인 마약 범죄물과 다른 까닭은 월터의 배경이 남다르기도 하지만 월터의 윤리적 갈등과 선택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미국 중산층의 취약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고 있는 월터는 교사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서 저녁에는 세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얼핏 보면 무난해 보이는 월터의 일상이 붕괴하는 것은 그가 폐암 진단을 받으면서부터다. 월터는 약 1억 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하고 수술을 포기한다. 월터의 병을 알게 된 아내는 집을 팔아서라도 수술하자고 하지만 월터는 장애가 있는 아들과 임신 중인 아내가 살 집도 없는 처지가 될까 봐 거부한다.
이런 딜레마를 바탕으로 월터는 일탈의 출발선을 넘게 된다. 마약 유통에 손을 대고 있는 제자와 최고급 마약을 제조할 능력이 있는 월터가 우여곡절 끝에 손을 잡게 된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월터는 마약사범이고 사회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처한 딜레마가 마냥 황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수사반장 1958이 판타지로 현실의 한계를 넘어선다면 브레이킹 배드는 과장된 해법으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