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삼성그룹 오너일가의 ‘흑역사’가 이어졌다.
이 부회장은 17일 삼성그룹 창업 79년 만에 처음 구속된 오너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는데 선대인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은 여러 차례 검찰조사를 받았지만 구속영장이 청구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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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하지만 이로부터 5년 뒤인 1966년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 이른바 ‘사카린 밀수’사건이다. 당시 삼성계열사인 한국비료가 사카린 55톤을 건축자재라고 속여 일본으로부터 밀수하다 들통난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 밀수특수반은 이병철 창업주가 밀수에 직접 책임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구속하지 않았다. 대신 이 창업주의 차남인 이창희 한국비료 상무가 구속돼 6개월 수감생활하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이 창업주는 경영에서 물러났고 1년여 만인 1968년 2월 경영에 다시 복귀해 이듬해 삼성전자를 설립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과 삼성이 밀수를 공모하고 중앙정보부가 나서 도와줬다는 말도 적지 않았다.
정태인 칼폴라니사회연구소장은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밀수했다고 할 수 없으니 모든 죄는 이병철 창업주가 뒤집어쓰는 듯했지만 이때도 구속은 면했다”며“엉뚱하게 이창희씨가 구속됐는데 이 과정에서 장남 이맹희씨가 눈밖에 나 삼성은 셋째 이건희 회장이 승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은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사건에 연루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 회장은 250억 원의 비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았지만 검찰은 이 회장을 불구속기소했다. “국내외 경제에 미치는 파장 등을 폭넓게 검토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듬해 9월 이 회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했다. 하지만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지 1년 만인 1997년 개천절에 사면복권됐고 1998년 4월 삼성전자 대표이사에 올라 경영에 다시 복귀했다.
2005년에는 이른바 ‘삼성X파일’ 사건이 터졌다. 삼성 임원진이 정치권과 검찰에 금품제공을 논의한 것이 녹음파일 형태로 폭로된 것인데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던 이 회장은 서면조사만 받고 무혐의로 처분받았다.
오히려 이 사건을 폭로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검찰조사를 받고 사법처리됐다.
이 회장은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으로 특검수사도 받았다.
삼성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데 따른 것인데 이 회장은 배임과 조세포탈,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가 인정됐지만 또 불구속기소됐다. 당시 조준웅 특검이 삼성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사회적 비판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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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
특검 수사 이후 이 회장은 대국민사과를 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09년 12월 이 회장은 단독으로 사면복권을 받았고 다시 경영에 복귀했다.
삼성 총수일가는 검찰과 여러 차례 ‘악연’을 맺었지만 대규모 변호인단을 동원한 치밀한 방어전략으로 숱한 고비를 넘겨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끝내 박영수 특검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선대 회장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정경유착의 관행을 진작 끊어버렸다면 이번처럼 구속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며 “삼성그룹 입장에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일을 ‘보약’ 삼는다면 삼성그룹이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