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이 숙원사업인 글로벌 고속철도시장 진출의 첫단추가 될 말레이시아와 싱가폴 고속철도사업 수주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가 19일 국토교통부와 코레일, 현대로템 등 국내 컨소시엄의 ‘말레이시아와 싱가폴 고속철도사업’ 입찰에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현대로템, 글로벌 고속철도시장 진출 험난  
▲ 김승탁 현대로템 사장.
말레이시아와 싱가폴 고속철도사업은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폴을 연결하는 총연장 324km의 고속철도사업으로 15조 원 정도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폴은 2026년까지 이 사업을 마치기로 하는 데 최근 합의했다.

국토교통부와 코레일, 현대건설 그리고 현대로템 등 국내 공공기관과 기업 50여 곳은 지난 2015년 10월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 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공동 대응체제를 구축했다.

내년 말로 예정된 말레이시아와 싱가폴 고속철도사업 입찰을 앞두고 중국과 일본은 정부차원에서 수주를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경쟁국에 비해 뒤쳐져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지적했다.

이 사업에서 고속철도 납품을 담당하는 현대로템의 해외 고속철도 수주실적이 전무한 데다 한국정부가 중국과 일본에 비해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파이낸셜타임스는 그 이유로 꼽았다.

국내 컨소시엄이 이 사업을 수주하는 데 실패할 경우 현대로템이 숙원사업으로 꼽는 글로벌 고속철도시장 진출도 그 시기가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로템은 올해 6월 국내에서 최초로 경전선에서 운행될 동력분산식 고속철도를 수주하는 데 성공하면서 글로벌 고속철도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속철은 크게 동력분산식과 동력집중식으로 나뉘는데 국내 고속철의 대부분이 동력집중식 방식을 채택하는 것과 달리 해외 고속철시장에서는 동력분산식 방식이 큰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현대로템이 수주계약을 체결한 동력분산식 고속철도가 아직 상업운행을 시작하기 전 인데다 중국과 일본 등 경쟁국가의 철도회사의 경우 기술력 측면에서 앞서고 있다.

국내 컨소시엄은 기술이전이라는 조건을 내걸어 말레이시아와 싱가폴 고속철도 사업을 수주하려고 하지만 중국과 일본이 국내 컨소시엄에 비해 우월한 금융조건을 내세울 수 있는 점도 국내 컨소시엄의 입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봤다.

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박진호 국토교통부 철도국 철도정책과 서기관은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철도 기술력뿐만 아니라 금융지원 측면에서 열세인 입장”이라면서도 “현대로템이 해외수주 경험이 없지만 신흥국 입장에서 구미가 당길 조건인 기술이전 등을 내세워 만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현대로템이 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사업비 측면에서 10% 내외가 될 것”이라며 “현대로템이 이 사업을 통해 해외 고속철도시장에 진출할 수 있어 협상 추이에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해외에서 잇따라 고속철도 수주에 성공하면서 고속철도사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베이징시가 말레이시아 정부와 120억 달러의 고속철도 수주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있어 중국이 말레이시아와 싱가폴 고속철도사업 입찰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봤다.

  현대로템, 글로벌 고속철도시장 진출 험난  
▲ 현대로템의 동력분산식 고속전철 조감도.
일본은 아베신조 총리가 2020년까지 인프라 관련 수출을 현재의 3배 수준인 30조 엔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공언한 만큼 신칸센 기술수출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점쳐진다.

중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캐나다 봄바르디에와 프랑스 알스톰, 그리고 독일의 지멘스 등 북미와 유럽의 철도 관련 기업들도 말레이시아와 싱가폴 고속철도사업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템의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보다 한국정부의 협상력이 다른 참여 국가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공명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중국이 비용을, 일본이 기술력을 앞세우고 있다면 한국은 그 사이에 끼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한국은 KTX올림픽선을 개발하면서 운영 노하우와 무선열차제어시스템, 그리고 차량 내부의 무선통신시스템 등에서 높은 기술력을 확보해 일본과 중국과 비교해 기술력이 크게 뒤처지지는 않는다고 사공 연구원은 봤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사공 연구원의 말을 인용하며 대규모 공공기반시설 투자는 협상국과 외교적 유대관계와 재정적 지원약속 등에 좌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