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병목현상은 도로가 갑자기 좁아지면서 교통체증이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데이터를 자동차, 데이터의 이동을 교통 흐름으로 생각하면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데이터 병목현상이라고 부른다.
최근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테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데이터가 이동하는 길인 대역폭을 늘려서 데이터의 이동을 쉽게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도로를 넓게 만들어서 병목현상을 해결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데이터 병목현상은 연산량이 굉장히 많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커다란 문제고, 그렇게 때문에 HBM은 인공지능 기술 발전을 위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이라는 기술을 2013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업이다. 최근 4세대 HBM 역시 SK하이닉스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해냈고, 양산도 세계 최초로 시작했다. 올해 말에는 세계 최대 팹리스인 엔비디아와 HBM 관련 협력관계를 끈끈히 하면서 삼성전자에게 비교 우위를 점했고, 이 덕분에 올해 말에 SK하이닉스의 주가 역시 무섭게 치솟았다.
2024년의 SK하이닉스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역시 HBM이 될 것으로 보인다.
HBM 시장이 결과적으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지만, 그 속도가 어느 정도일까와 관련해서는 이견이 많은 상태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여러 의견들이 “생각보다 빠를 수 있다”는 쪽으로 모이고 있다.
지난해 여름 시장조사기관 모도어(모르도르)인텔리전스는 HBM 시장규모는 2028년에 60억 달러까지 커진다고 봤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 트렌드포스는 HBM 시장규모가 2025년에 56억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모도어 인텔리전스의 예측치보다 3년을 앞당긴 셈이다.
미국 증권사인 씨티증권은 2025년에 전체 D램 시장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이 41%까지 커질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D램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사이 점유율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SK하이닉스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HBM 시장이 빠르게 커진다면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1위 기업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은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고, 십년을 가는 권력도 없다는 뜻의 한자성어다. 재계에서는 1위 기업에게 경각심을, 2위 기업에게 1위 싸움의 원동력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D램 시장에서 1위에 올랐던 1992년으로부터는 무려 30년, 치킨게임이 끝난 2012년부터는 이제 10년 정도가 지났다.
이 긴 시간 동안 지켜온 삼성전자의 D램 시장 1위 자리는 과연 HBM을 앞세운 SK하이닉스의 손에 무너지는 날이 올까? D램 시장의 ‘삼국지’가 과연 어떻게 흘러갈지 계속해서 지켜볼 일이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