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임직원에게 최고 대우를 하지 않으면서 최고 회사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업계 1등 기업이 되고자 한다면 임직원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장(롯데백화점 대표)이 9월부터 복지를 파격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한 것도 이런 현실을 고려한 결단으로 읽힌다.
 
롯데백화점 '파격 복지'에 임직원 큰 호응, 정준호 변화 물꼬는 텄다

▲ 롯데백화점이 9월1일부터 새로운 복지제도를 도입한다. 최고 대우를 통해 1등 백화점으로 거듭나자는 대표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 백화점업계의 시각이다. 사진은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장(롯데백화점 대표).


24일 롯데쇼핑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이 9월1일 도입하기로 한 새로운 복지제도를 놓고 임직원들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물론 IT업계가 지원하는 파격적 수준의 복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유통업계에서 만큼은 최고 수준의 복지로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롯데백화점 직원들로부터 나온다.

외부에서 보기에도 신선한 복지제도가 여럿 도입되는 만큼 9월을 기점으로 앞으로 변화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퍼지고 있다.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 소속 직원들이 그동안 기업평가 사이트에 올려놓은 회사에 대한 평가는 “복지제도가 매우 약하다” “말만 대기업이지 복지와 연봉은 중소기업급이다” 등 대우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롯데백화점이 9월에 도입하는 복지제도의 면면을 살펴보면 일반 회사에서 상상하기 힘든 제도들이 많다.

비혼자 경조 지원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회사의 복지제도는 기혼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혼을 하면 경조비와 유급휴가를 회사에서 받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복지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롯데백화점은 앞으로 비혼자에게도 기혼자와 유사한 혜택을 제공한다. 결혼하지 않은 만 40세 이상 직원들에게도 경조금과 함께 유급휴가 5일을 주고 결혼식에 보내는 화환 대신 반려식물을 준다.

이는 유통업계뿐 아니라 일반 대기업을 통틀어 봐도 보기 힘든 복지 사례다.

반려동물 경조도 마찬가지다.

롯데백화점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반려견과 반려묘가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장례휴가 1일을 제공하기로 했다.

본인이 키우는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어도 장례휴가가 제공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롯데백화점의 이런 결정은 정준호 대표의 결단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는 그동안 여러 자리를 빌려 임직원들과 소통하면서 MZ세대의 요구를 파악해왔는데 우선 복지제도부터 개선하기로 했다.

하지만 단순히 복지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차원만은 아니라는 것이 유통업계의 시각이다.

정 대표는 지난해 12월 사내게시판에 영상을 올려 “10년 전 업계 1위의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과 함께 우리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냉정하게 돌아보며 우리가 잘하는 것부터 용기있게 다시 시작하자”며 그 핵심 전략 가운데 하나로 ‘강남 1등 점포 만들기’ 전략을 내세웠다.

롯데백화점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국내 매출 1위 백화점 자리를 넘겨준지는 꽤 됐다. 정 대표는 이를 되찾아와야만 롯데백화점의 위상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런 격차를 좁히려면 그에 걸맞은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정 대표는 ‘지역 1번점’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신세계백화점에서 임원 여러 명을 영입하면서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동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롯데백화점을 지탱하는 실무진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쓸 수 있는 선택지는 사실 많지 않다. 임금을 높여주거나 복지를 제공하거나 둘 중 하나다.
롯데백화점 '파격 복지'에 임직원 큰 호응, 정준호 변화 물꼬는 텄다

▲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장(롯데백화점 대표)이 복지제도 개선을 꺼내든 것은 임금을 단기간에 인상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진은 롯데몰 월드타워점 내부. <롯데그룹>

롯데백화점은 그동안 유통업계에서 ‘짠 연봉’으로 유명했다.

롯데쇼핑의 반기보고서를 살펴보면 올해 롯데백화점 소속 직원 1인당 평균 보수는 남성 4249만 원, 여성 2693만 원이다. 신세계백화점 직원 1인당 평균 보수인 남성 5700만 원, 여성 2800만 원보다 낮다.

경쟁사보다 낮은 임금 수준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이런 현실적 여건을 감안했을 때 정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이 바로 복지제도 개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임금을 못 올려주더라도 최고의 복지를 제공해준다는 신호를 보내 임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도 “직원들에게 더 좋은 대우 제공해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이번 복지제도 개편의 취지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이 3월부터 도입한 새 근무제도 역시 직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정준호 대표는 ‘모든 곳이 나의 사무실(Everywhere is my office)’이라는 슬로건 아래 매주 수요일 오후마다 임직원들이 사무실을 벗어나 일하기 편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단순히 노트북을 들고 공간만 옮겨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롯데백화점 직원들은 상부에 특별한 보고 없이 서울에서 유명한 ‘핫플레이스’를 방문할 수 있다. 전시회도 상관없고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음식점이나 카페도 상관없다. 롯데백화점의 발전을 위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 괜찮다.

심지어 시장조사를 위해 현장에 다녀오면 의례적으로 작성해야 했던 보고서도 따로 만들 필요조차 없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내부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면 기본적으로 나가서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며 “직원들의 참여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물론 정 대표는 임금 수준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9월1일부터 새 복지제도를 도입함과 동시에 직원들의 기본급도 5%씩 인상하기로 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