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대통령 탄핵국면 속 '정치회복'의 기대를 모았던 여야정협의체 개최가 불발됐다.

반도체지원특별법안과 추가경정예산(추경), 연금개혁 등 주요 국정 현안 논의가 또 다시 미뤄진 것인데 정치 표류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의힘 '일방적 연기'로 무산된 여야정협의체, 민생현안 표류 언제까지

▲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맨 왼쪽부터),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이 4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민생대책 점검 당정협의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9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오는 10일이나 11일에 열기로 했던 여야정협의체는 국민의힘의 일방적 연기 요청에 개최 시기가 불투명해졌다.

국민의힘은 이날 "민주당이 여야정협의체에서 협의해야 할 반도체지원특별법안과 국민연금 개혁에 관해 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일방적 입장을 발표했다"며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여야정협의체 개최 시기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여야정협의체는 우원식 국회의장,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4인으로 구성되는데 국민의힘이 참여하지 않으면 회담이 불가능하다.

민주당은 실무협상을 통해 어렵게 일정을 잡은 여야정협의체 개최를 국민의힘이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국민의힘의 여야정협의체 연기 요구 직후 낸 입장문에서 “실무회담에서 추경, 반도체특별법안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협의회를 개최해 합의를 도출해 나가기로 했던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갑자기 본회담의 연기를 요구해 온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말했다.

일단 국민의힘이 갑자기 여야정협의체를 연기한 배경을 두고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여야정협의체 개최를 며칠 앞두고도 반도체특별법안과 추경, 국민연금 등에 핵심 현안에 관한 입장이 좁혀지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반도체특별법안에 ‘주 52시간 근로 적용 제외’를 반드시 포함해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여야 이견이 없는 국가의 반도체 인프라 구축 지원 등을 먼저 처리하고 ‘주 52시간’ 문제는 좀 더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는 태도를 나타냈다.

여기에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계속 요구해온 추경 편성과 관련해서도 반도체특별법안에 동의했을 때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민의힘 '일방적 연기'로 무산된 여야정협의체, 민생현안 표류 언제까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책소통플랫폼 '모두의질문Q' 출범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최근 반도체특별법안의 ‘주 52시간 근로 적용 예외’에 전향적 태도를 나타냄에 따라 여야정협의체에서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국민의힘 쪽에서는 조기대선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여야정협의체를 통한 성과가 이 대표의 대승적 결단, 또는 양보로 이뤄졌다는 모양새가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여야정협의체의 합의는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 그것도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이재명 대표의 성과로 비쳐질 가능성이 높다”며 “국민의힘 내부에서 이 대표에게 왜 그런 ‘판’을 만들어주냐는 주장이 있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민의힘도 여야정협의체 개최를 마냥 미룰 수는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겠다고 나선 마당에 국민의힘의 거부로 회담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민생 현안을 진전시키지 못한다는 중도층이나 무당층의 비판이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여야정협의체 연기로 머쓱해졌다. 여야정협의체를 계기로 국회와 소통을 강화해 정부의 경제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려 했는데 여당의 반발로 운신의 폭이 줄어든 셈이기 때문이다.

최 권한대행은 7일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밸류업 지원 법안'(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2월 임시국회에서 신속히 논의될 수 있도록 국회와 긴밀히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가 2월 말 또는 3월 초에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내리면 ‘여야정협의체’라는 기구의 효용성은 더욱 떨어진다. 민주당의 협조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국민의힘 지도부 입장에서는 한 번쯤 여야정협의체를 통해 민생 현안과 쟁점 법안들의 통과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기업이 앞장서고 있는데 정치가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며 반도체특별법안과 함께 에너지 3법안(국가전력망법, 해상풍력특별법,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법)을 '미래 먹거리 4법안'으로 규정하고 신속한 통과를 강조해왔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여야정협의체를 연기한 것은 당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물밑에서 민주당과 여야정협의체 개최 시점을 다시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