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배터리 소재 기업단체 IRA 지원 확대 요청, 보조금 의존 큰 K배터리 '촉각'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8월16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한 뒤 사용한 펜을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에게 건네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전기차 배터리 소재를 공급하는 미국 기업단체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액공제 비율이 배터리셀 제조에만 치우쳐 있다며 지원을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에 생산 거점을 둔 한국 배터리 제조사는 IRA 세액공제 금액이 영업이익에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 배터리업계 내에서 소재 업체를 향한 미국 정부의 지원 비중이 높아지면 K배터리 업체들은 실적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17일(현지시각) 에너지 전문매체 E&E뉴스에 따르면 ‘기술 혁신을 위한 배터리 지지 연합(BATT)’은 IRA 세액공제 비율을 조정해 달라는 서한을 16일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 앞으로 전달했다.

BATT는 IRA 상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 조항 45X에 근거해 배터리 소재 기업이 받을 수 있는 세액공제를 기존 제조 원가의 10%에서 25%로 높여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45X항이 배터리셀이나 팩 제조 업체에 과도한 비율로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점을 꼬집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친환경 제조업 육성 목적으로 배터리 제조 기업에 셀 기준 킬로와트시(kWh)당 35달러, 모듈에 10달러 세액공제를 각각 제공하고 있는데 이 금액이 소재업계를 향한 지원보다 과도하게 많다는 것이다. 

BATT는 “45X는 배터리용 전극 활물질이나 핵심 광물을 생산하는 기업에 비해 셀이나 팩을 만드는 업체에 후하다”라고 비판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및 삼성SDI 모두 45X 조항에 따라 받는 보조금 규모가 상당하다. 미국에 다수 생산 설비를 돌리고 있는 기업은 이 금액이 분기별로 최대 수천억 원까지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 4483억 원 가운데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로 확보한 보조금이 4660억 원이라고 잠정 집계했다. 게다가 보조금 효과를 제외하면 사실상 영업적자를 본 것인데 이런 흐름은 지난 2분기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미국 생산 설비에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보다 보수적으로 투자해 왔던 삼성SDI조차 올해 1분기 실적에 반영한 세액공제 규모가 467억 원에 이를 정도다.
 
미국 배터리 소재 기업단체 IRA 지원 확대 요청, 보조금 의존 큰 K배터리 '촉각' 

▲ SK온과 포드 합작사 블루오벌SK가 미국 테네시주 스탠튼 지역에 신설하고 있는 배터리공장의 올해 10월경 공정 현황. 2025년 연말 가동을 목표하고 있다. < 블루오벌SK > 

BATT가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해 IRA 관련 규정이 개정된다면 한정된 예산에서 소재 기업으로 들어가는 지원금이 늘어나 K배터리 실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미국 현지 매체의 평가를 종합하면 BATT에는 IRA 관련 부처인 에너지부 전직 고위 관리도 소속돼 있어 정부를 향한 영향력이 상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인공지능(AI)를 활용해 배터리 소재를 개발하는 미트라켐과 나노그라프코퍼레이션 및 시코나배터리테크놀러지스 등 유망한 기업들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BATT는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 해도 미국 소재 기업이 받는 세액공제는 배터리셀 생산에 할당된 세액공제에 훨씬 못 미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와 함께 이 단체는 AMPC 45W 항목이 중국 배터리 공급망을 완전히 끊어 내기에 불충분하다며 배터리업체들이 중국에서 광물을 받아 쓰지 못하도록 관련 조항을 강화하는 방안도 건의했다. 

IRA는 중국과 북한 등 해외우려단체(FEOC)로 지정한 국가에서 배터리 광물을 받아 쓰는 기업을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데 다만 이 규정이 최대 2027년까지 유예된 상태다. 이런 빈틈을 채워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K배터리 3사는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에서 흑연과 같은 광물을 당장 끊어내기 어렵다며 미 정부에 이 조항의 유예 기한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와 관련한 부담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및 삼성SDI는 IRA 세액공제와 주정부 보조금 유인으로 현지 생산 거점에 대거 투자했다. 

아직 건설중인 공장이 많아 고정비용이 많이 드는데 배터리 소재 기업과 셀 제조 기업 사이 세액공제 비율이 조정되거나 중국산 광물 사용에 따른 수혜 축소가 이뤄지면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 전기차 시장이 다수 보급형 차량 등장 전까지 수요 증가세가 다소 둔화한 상황에 놓여 있어 K배터리 업체들로서는 정부 보조금이 절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

GM이나 포드와 같은 K배터리 협력사가 중저가 차량을 내놓기 위해 저가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비율을 늘리려는 점도 3원계 배터리에 강점을 가진 한국 기업에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미국 배터리 소재 기업의 정치권을 향한 압박이 K배터리에 보조금 비율 축소나 광물 조달처 변경 압력으로 작용하면 사업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공산이 커진다.

다만 이미 미국 다수 설비에서 배터리 대량생산을 시작한 한국 배터리 기업이 보조금과 별개로 규모의 경제, 즉 생산을 늘려 비용을 절감하는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LG에너지솔루션이나 삼성SDI와 합작사를 세운 GM이 여전히 전기차 투자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짚으며 “GM과 LG에너지솔루션이 지은 테네시주 스프링힐 배터리 공장 덕에 생산량 증가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