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3일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이동통신 3사는 선수를 쳐 가입자들의 주머니를 더 털어낼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가입자들은 '호갱'(호구 고객) 취급을 당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6.3 전국지방동시선거(이하 지방선거) 때 이동통신 요금 인하 공약이 나오고,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떠밀려서라도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을 내놓는 시늉이나마 할 것이란 기대가 많았는데, 헛기대로 끝났다.
이번에도 역시 정부와 이동통신 3사는 '윈윈'하고, 가입자들은 '호객'(호구 고객) 취급을 당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정부는 이동통신 3사의 인공지능(AI)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동통신사들은 6.3 지방선거를 계기로 이동통신 요금 인하 요구가 불거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는데, 정부 덕에 큰 힘 들이지 않고 막아냈다.
이동통신사들은 13만~15만 원대 고가 요금제를 추가로 내놓을 수 있는 토대도 마련했다.
가입자들은 이동통신 요금 인하를 통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기회를 잃었다. 아니 요구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이런 모습, 기시감이 크다.
이동통신사들은 새 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이동통신은 장치 산업이라 초기에 투자비가 많이 든다'며 요금을 높게 책정해왔다. 투자비, 즉 원가를 앞세워 요금을 비싸게 설계했다.
실제로 LTE 요금은 기존 주력 이동전화 서비스 2G(CDMA.PCS) 요금과 비교하면 월 2만~3만원 가량(이하 주력 요금제 기준) 비싸다. 5G는 기존 주력 이동통신 서비스 LTE보다 월 3만~4만 원 가량 높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투자비 감가상각에 따라 이동통신 원가가 낮아지는 흐름에 맞춰 요금을 낮춰야 옳다.
예를 들어,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어 주력 요금제의 월 정액요금을 월 5만~10만 원대로 높였다면, 감가상각으로 원가가 낮아지는 추세에 맞춰 4만~9만 원대, 3만~8만 원대 식으로 낮아지는 게 맞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동통신 투자비 감가상각 기간은 장비·품목별로 6~7년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이론적으로 이동통신 원가는 0원으로 떨어지는 셈이다.
물론 통신망 고도화와 유지보수 등이 추가로 들긴 한다. 하지만 이동통신 원가로 따지면 아주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이에 따르면, 2011년 3월 상용화된 LTE 이동통신의 감가상각은 여러 해 전에 이미 끝났고, 2019년 상용화된 5G 이동통신 감가상각 역시 장비별로 이미 종료됐거나 끝나가는 중이다.
그에 따라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은 해마다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통신망 해킹과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태로 주춤했으나 올해 들어 다시 이전 증가세를 회복하는 모습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이동통신 3사 영업이익 총액은 5조11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 4조4344억 원 대비 15% 가량 증가한 규모이다. 사업자별로는 SK텔레콤 영업이익은 1조9080억 원, KT는 2조807억 원, LG유플러스는 1조1213억 원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그동안 이동통신 3사 모두 원가를 따져 LTE 요금을 내린 적이 없다. 굳이 꼽자면,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거센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요구에 밀려 LTE 요금을 월 1천원씩(주력 요금제 기준) 인하한 게 전부이다.
5G 요금 역시 원가를 따져 높게 책정한 것과 달리, 상용화 7년이 다 되도록 원가를 따져 조정된 적이 없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를 통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요구는 전국 단위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제기돼왔다. 투자비 감가상각에 따라 원가가 줄어든 점이 근거로 삼아졌다.
이 과정에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이동통신 원가 공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동통신 3사가 요금 인하 요구를 일축하고, 정부 역시 사업자 편을 들고 나선 데 따른 것이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물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동통신 원가 공개를 거부해, 정보 공개 소송으로 번지기도 했다.
▲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가 5G 원가자료 1차 분석 결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 "이동통신 요금은 원가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새 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내놓을 때는 투자비를 이유로 요금을 높게 책정하더니, 감가상각에 따른 원가 감소 추세에 따라 요금을 조정하라는 요구가 설득력을 갖게 되자 딴소리를 하는 꼴이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 요구가 '불공정의 공정화' 운동으로 불리기도 하는 배경이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이벤트'와 '시늉'으로 물타기를 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통신 요금을 10% 내려봤자 금액으로 치면 월 자장면 한그릇 값도 안되지만, 모으면 전후방 산업을 키워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주장으로 요금인하를 피해갔다.
박근혜 정부 때는 이동통신 월 기본료를 1천 원 내리는 것으로 이동통신 요금 인하를 통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요구를 입막음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LTE 요금제를 '데이터 중심 요금제'로 바꾸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동통신 요금제를 종량제 중심에서 월 정액제 중심으로 전환했다.
저가 요금제 출시, 발신자전화번호표시 등 애초부터 무료로 제공돼야 할 부가서비스를 유료화한 뒤 이용료 인하 및 무료화, 2만 원대 5G 요금제 출시, 이동통신 요금제 개편, 알뜰폰(MVNO) 시장 활성화를 통한 요금 경쟁 촉진 등도 이동통신 요금 인하 요구에 물타기를 하는 단골 소재로 활용됐다.
새 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상용화를 앞뒀을 때는 '투자 재원 마련'도 내세웠다. 투자 재원 마련을 이유로 기존 이동통신 요금을 내리지 않으면서, 이동통신은 장치 산업이라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새 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의 요금을 비싸게 책정하는 '일타쌍피' 전략을 쓴 꼴이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이동통신 기술 발전에 맞춘 요금제 선진화'란 명분을 달기도 했다. '사실상 요금 인상' 지적이 많았지만, 저가 요금제와 청소년·어르신 요금제 추가 등을 앞세워 피해갔다.
지난 3일 치러진 지방선거는 5G 감가상각 기간 만료 시점과 맞붙어 있었다. 당연히 야당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동통신 요금 인하를 통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요구가 거세게 불거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야당이 '윤 어게인'에 발목이 잡혀 제구실을 못하면서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요구를 포함해 전국 단위 선거 때마다 단골처럼 내놔지던 민생 공약이 자취를 감췄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 요구가 불거지기 전 미리 틀어막는 전략도 한 몫 했다.
이번 지방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와 각 당 차원의 민생 공약 경쟁이 치열해질 즈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민생 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 회의'(4월8일)에서 '기본 통신권 보장을 위한 이동통신 3사 요금제 개편 방향'을 발표했다.
2만 원대 5G 요금제를 내놓고, 저가 요금제 가입자들도 기본 제공 데이터 소진 뒤에는 400Kbps(초당 킬로비트) 속도로 데이터를 계속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데이터 안심 옵션 제공)고 했다. 65세 이상 어르신 가입자 대상 무료 음성통화·문자메시지 제공을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과기정통부는 "이동통신 3사와 협의해 요금제 개편 작업이 상반기 중 마무리될 수 있게 하겠다"며 "데이터 안심 옵션 제공으로 717만 이동통신 가입자가 연간 3221억 원, 음성통화·문자메시지 제공 확대로 140만 어르신 가입자가 연간 590억 원의 통신비 절감 혜택을 각각 볼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데이터 안심 옵션 제공의 통신비 절감 혜택(717만 명에게 연간 3221억 원) 산출 근거에 대해 "데이터 초과 사용 비용 절감 및 요금제 하향 고려 가능성을 감안해 산출한 수치"라며 "이동통신 3사가 추산했다"고 설명했다.
5월28일 LG유플러스가 먼저 이에 맞춘 요금제를 내놨다.
LG유플러스는 이날 통신요금 구조를 단순화한 ‘심플리(Simply) 2.0’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LTE와 5G 요금제를 통합해 ‘데이터플랜’과 ‘플러스플랜’ 요금제로 개편하고, 그동안 이용자가 선택하거나 요청해야 제공되던 각종 추가 혜택이 자동 적용되게 했다. 모바일·인터넷·결합을 하나로 묶은 올인원 상품을 내놓고, 5G 국제로밍 커버리지를 확대하는 것도 포함됐다.
LG유플러스는 "53종에 달하던 LTE.5G 요금제를 18종으로 재편하고, 이용자는 데이터 제공량과 속도 기준만으로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모든 요금제에 데이터 안심옵션(QoS)을 적용해, 기본 제공 데이터 소진 뒤에도 추가 요금 부담 없이 월 정액요금에 따라 400Kbps∼5Mbps 속도로 데이터를 계속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9일에는 SK텔레콤이 같은 형태의 요금제를 7월2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LTE와 5G 요금제를 통합하고, 데이터 안심옵션을 적용한 모습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이동통신 사업자가 새 요금제를 경쟁사보다 먼저 내놓을 때는 홍보 효과 선점을 노려서다. 그런데 LG유플러스는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지방선거에 쏠려있는 시점에 새 요금제를 내놨다.
SK텔레콤은 7월에나 출시할 요금제를 미리 공개했다.
모두 이례적이다.
지방선거 전에 새 요금제를 공개하기 위해 서두른 흔적이 역력해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SK텔레콤은 아직 새 요금제를 운용할 전산시스템 구축 작업조차 끝내지 못했다. KT 역시 같은 이유로 새 요금제 출시 일정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과기정통부가 '기본 통신권 보장을 위한 이동통신 3사 요금제 개편 방향'을 밝혔을 때, 시민단체 쪽에선 '과기정통부와 이동통신 3사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거질 수 있는 '이동통신 요금 공정화를 통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요구'에 앞서 선수를 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과기정통부가 "정부의 기본 통신권 정책에 이동통신 3사 모두 공감을 표하며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힌 점을 들어, 이동통신사들과 미리 입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참여연대는 '400Kbps 무제한 요금제는 국민 기만, 1Mbps로 올려야' 제목의 논평을 통해 "데이터 제공량이 월 평균 데이터 사용량에 한참 못 미치는 2만 원대 5G 요금제와 포털 사이트조차 제대로 이용하기 어려운 (기본 제공 데이터 소진 뒤 데이터 속도) 400Kbps 수준 요금제를 내놓기보다 LTE 감가상각과 5G 설비투자 감소에 맞춰 이동통신 명목 요금 자체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6·3 지방선거를 계기로 삼은 요금제 개편(통합요금제 출시)을 통해 가입자들의 호주머니를 더 털어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감가상각 종료로 사실상 원가가 0원 상태인 LTE·5G 통신망으로 계속 '황금알'을 챙기면서, 상단에 고가 요금제를 더해 추가 이익 창출 기회로 삼는 전략을 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취재를 종합하면, 이동통신사들은 올 연말 10만~15만 원대 요금제 추가 출시를 준비 중이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5G SA 출시를 계기로 삼아 13만~15만 원대 요금제 신설을 준비 중이다. 파워 유튜버와 고사양 게임 마니아 등 빠른 데이터 속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를 바라는 이용자들을 겨냥한 요금제"라고 말했다.
이동통신사들은 나아가 당분간은 LTE 통신망을 기본 이동통신망으로 삼을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다른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LTE 사용 기한을 40년 이상으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