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무리한 투자가 공급 과잉을 주도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기차 수요 부진과 중국 업체들의 물량공세로 한국 제조사들에 위기가 커지고 있다. CATL 중국 배터리공장 이미지.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한국 기업들이 수요 부진과 중국 경쟁사의 물량공세로 이중고에 직면하면서 당분간 활로를 찾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든다.
30일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및 배터리 제조사들의 대규모 생산공장 투자가 실패한 전략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전기차가 단기간에 내연기관 차량을 대체하고 신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를 대신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업계 전반에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쓰이는 배터리 제조업이 사실상 ‘돈을 찍어내는 사업’으로 주목받으며 관련 기업들의 공격적인 시설 투자 확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텔레그래프는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의 매출 급감과 SK온의 비상경영 체제 선언으로 이러한 전망이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는 근거를 파악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삼성SDI 역시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크게 줄어들면서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한국 배터리 3사에 모두 배터리 수요 부진의 영향이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텔레그래프는 “배터리 제조업에서 한동안 ‘골드러시’가 이어졌지만 이제는 생존 경쟁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며 전기차 수요 둔화가 결정적인 변화를 이끌었다고 바라봤다.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의 지나친 증설과 배터리 주요 소재의 가격 하락이 공급 과잉을 주도하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특히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 경쟁사들의 물량공세에 따른 타격에 취약해지고 있다.
조사기관 패스트마켓에 따르면 현재 중국은 전 세계 배터리 소재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컨설팅업체 로모션은 텔레그래프를 통해 “중국 업체들은 매우 낮은 가격에 배터리셀을 생산해 글로벌 시장을 공급 과잉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기업의 배터리셀 생산 단가가 전 세계 평균치의 절반 수준까지 낮아졌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들은 배터리로 수익성을 전혀 낼 수 없는 상황에도 꾸준히 생산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 중국 고션하이테크 배터리 공장 내부 사진.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생산 가능한 배터리 물량은 전기차 업계 전체의 수요를 약 5배 수준으로 웃돌고 있다.
그럼에도 내년 배터리 생산량은 올해보다 40% 늘어나며 중국 기업들이 공급 과잉을 계속 주도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됐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단기간에 크게 반등할 계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최소한 2030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중국의 물량 공세를 이겨내기 점점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이는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는 원가가 낮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을 추진하고 차세대 기술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LG에너지솔루션은 당분간 전략적으로 꼭 필요한 투자에만 집중하고 기존 공장의 가동률을 높이는 데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또한 중국 기업과 어느 정도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솔루션을 중점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삼성SDI는 배터리 수요 회복이 늦어지고 있지만 전고체 배터리를 비롯한 필수적 투자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며 업황을 면밀하게 고려해 최적의 투자 전략을 집행하겠다고 강조했다.
텔레그래프는 유럽 자동차 기업들이 중국 업체의 배터리를 채용하는 데 다소 보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중국산 전기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시장 진출 확대를 방어하고 있는 점도 한국 배터리 제조사에 긍정적 요소로 지목된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현재는 공급 과잉 상태에 놓였지만 중장기 관점에서 성장 잠재력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도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로 꼽혔다.
텔레그래프는 “지금 전 세계는 ‘배터리 홍수’ 상태에 놓였다”며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나면 배터리 시장은 다시 공급 부족 국면에 접어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