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수주 필승카드 ‘후분양’, 원가부담에 대출금리 올라 부메랑으로 

▲ 건설사들이 사업성 높은 정비사업 수주를 위해 후분양을 제시한 사업장에서 미계약이 속출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건설사들이 수주를 위해 후분양을 제시한 사업장에서 미계약이 속출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건설사들은 사업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사업장에서 후분양을 제시하며 수주 필승카드로 썼다. 높은 공시지가 상승률을 반영해 일반 분양가격을 높게 책정하면서 분양가상한제를 비껴 수익성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고금리에 되레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커졌다. 
 
2일 건설업계와 도시정비업계 안팎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더샵 파크솔레이유’, 서울 ‘마포더클래시’, 경기 호계동 ‘평촌센텀퍼스트’, 부산 ‘남천자이’ 등 후분양 단지들이 높은 분양가격에 계약 완판에 실패했다. 

더샵 파크솔레이유(포스코건설), 마포더클래시(HDC현대산업개발·SK에코플랜트), 남천자이(GS건설) 등은 청약 경쟁률이 각각 15.68대1, 19.4대 1, 53.8대 1로 높은 수준을 보였지만 막상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계약률이 49% 수준을 보인 마포더클래시는 최근 무순위청약에서야 27세대 모집에 550명이 몰려 한숨 돌리게 됐다. 더샵 파크솔레이유는 올해 초 무순위청약을 진행한 뒤 결국 선착순분양까지 나서 대부분 물량을 소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천자이는 3일부터 선착순분양을 실시한다. 일반분양 물량 116세대에서 73세대 미계약(계약률 37.1%)이 나와 1일까지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지만 계약률이 진전을 보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일반분양은 일반공급(1·2순위), 무순위청약, 선착순분양으로 나눈다. 뒤로 갈수록 조건이 완화된다. 무순위청약에서는 당첨 포기자, 부적격자, 다른 지역 거주자, 유주택자 등을 제한하지만 선착순분양에서는 이마저 없어진다. 

건설사들이 사업성을 확신하고 후분양을 진행했지만 선착순분양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며 체면을 구긴 셈이다. 

후분양은 공사진행률 60~80% 이상의 아파트를 분양하는 제도로 수요자가 골조를 확인하고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 

도시정비조합이 선분양 대신 후분양을 선택하면 일반 분양가격을 높게 책정해 조합원들의 분담금을 낮출 수 있다. 공사가 진행되는 3~4년 동안 공시지가 상승률이 분양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분양가는 택지비와 건축비, 가산비를 합쳐 결정된다. 택지비 감정평가 때 공시지가가 반영되는데 서울 지역의 공시지가 상승률이 2021~2022년 연속 11.5%가량 상승하기도 했다. 분양가상한제 규제 영향을 적게 받는 방법인 셈이다. 

건설사들은 입지와 사업성을 검토해 반드시 수주해야 하는 사업장에 조합이 선호하는 후분양 조건을 제시해 사업을 따냈다. 

하지만 분양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착공시점에 일반분양을 진행해 계약금, 중도금, 잔금 등의 자금을 확보한 뒤 공사를 진행하는 선분양 방식과 달리 후분양 방식에서는 시공사가 공사원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건설사들이 미계약으로 공사비를 회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사원가를 감당하기 위한 대출이자 부담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더욱이 수요자들은 후분양 단지인 만큼 주변 아파트 시세와 비교해 분양가격이 높아 청약을 주저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포더클래시의 3.3㎡당 분양가격은 4013만 원으로 강북 최초로 3.3㎡당 4천만 원을 넘겼고 남천자이는 부산의 은마아파트로 불리며 3.3㎡당 평균분양가 3천만 원을 넘긴 단지로 주목받았다. 

후분양 특성상 수분양자들은 계약금과 중도금이 각각 10% 수준이고 나머지 80% 정도를 잔금으로 지불해야 하는데 고금리 여파에 단기간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도 크다. 

대형건설사 가운데서는 DL이앤씨가 후분양 단지 미계약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촌센텀퍼스트(DL이앤씨·코오롱글로벌)는 11일까지 1150세대 모집에 350명이 신청해 경쟁률이 0.3대 1에 그쳤다. 4일까지 당첨자 및 예비당첨자 서류접수가 진행된 뒤 6일부터 10일까지 계약이 진행된다. 

이곳은 2020년 10월 선분양으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조합에서 후분양으로 돌렸다. 3.3㎡당 분양가는 선분양 당시 1810만 원에서 3.3㎡당 3211만 원으로 1400만 원 정도가 올랐다. 

후분양 단지들의 계약 실적이 부진하면서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한 아크로 베스티뉴(호계온천주변지구 재개발사업)의 분양성공도 자신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호계온천지구 재개발 조합은 2021년 말 주택시장 호황기 때 DL이앤씨와 협상을 통해 하이엔드 브랜드 아크로(ARCO) 적용 약속을 받아냈다. DL이앤씨가 서울 이외 수도권 지역에서 첫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한 사례다. 

이 곳은 평촌센텀퍼스트와 자동차로 10분이 걸리지 않는 위치에 있다. 3.3㎡당 분양가는 평촌센텀퍼스트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합은 올해 12월 후분양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다만 하이엔드 브랜드로 진행하는 분양에서 미계약이 발생한다면 주택 브랜드 자체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DL이앤씨는 조합이 시장 상황을 고려해 분양가를 합리적으로 책정할 것으로 기대하며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후분양을 계획하고 있는 다른 대형건설사들도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래미안 원펜타스(삼성물산), 브라이튼 여의도(GS건설),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대우건설) 등이 후분양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주택 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고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며 분양가격이 비싸다고 느낀 수요자들이 후분양 단지 청약을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서울 지역 2023년 공시가격이 6%가량 하락한 만큼 분양가격을 올리기도 쉽지 않아 후분양을 선택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