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 단 20분', 꿈의 철도 '하이퍼루프' 어디까지 왔나

▲ 국내에 고속열차가 도입된 지 20년 만에 '한시간 생활권' 시대를 열 수 있는 '하이퍼루프' 상용화 시점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도 수백만 명의 귀성객이 고속철도를 이용했다.

2004년 4월, 시속 300km로 달릴 수 있는 한국 최초의 고속열차 KTX가 처음 부산역을 출발하면서, 고향이 어느 곳이든 반나절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KTX보다 4배 빠른 속도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단 2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한시간 생활권' 시대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18일 네덜란드의 하이퍼루프 선도 기술 업체 하르트에 따르면 이 회사는 최근 네덜란드 빈담에 위치한 유럽 하이퍼루프 센터(EHC)에서 하이퍼루프 차량의 첫 번째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이퍼루프는 음속을 뜻하는 '하이퍼소닉'과 연결이란 뜻의 '루프'를 합친 단어로, 대기압의 1000분의 1 수준인 아진공 상태의 튜브 안에 초전도 자석 등을 이용해 열차를 공중에 살짝 띄워 구동한다. 밀폐된 튜브형 진공 운송관과 캡슐 차량인 '포드', 자기부상·추진시스템이 주요 구성 요소다.

일반 열차와 달리 선로와의 마찰과 공기 저항을 받지 않아 이론적으론 최고 시속 1280km로 달릴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열차인 일본 리니어 신칸센의 최고속도(603km/h)보다 2배, 항공기의 평균 시속(900km/h)보다도 40%가량 빠르다.

하르트는 이번 EHC 테스트에서 자기부상과 추진시스템을 포함한 하이퍼루프 차량 기술을 시연했는데, 첫 테스트인 만큼 짧은 구간에서 제한된 속도로 진행됐다. 

하르트는 자기 공중 부양으로 포드를 들어 올려 직경 2.5m, 길이 420m의 EHC 시험노선(페이즈 A) 중 첫 90m를 해당 구간 최고 속도인 시속 30km로 원활하게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르트의 커머셜 디렉터이자 차기 최고경영자(CEO)인 로엘 반 드 파스는 "이번 성과는 유럽과 전 세계에서 하이퍼루프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라며 "하르트는 "2030년까지 여객 운영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하르트는 올 연말 EHC에서 시속 100km에 가까운 속도로 차선 변경을 포함한 두 번째 테스트를 실시할 계획이다. 2027년까지 2.7km 길이의 페이즈 B 구간이 추가로 건설되면, 순간 최고속도 700km/h까지 주행과 안전 성능 점검이 가능해져, 상용화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는 2030년 승객을 태우고 공항과 도시 사이 등 5km 가량의 노선에서 운영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부산 단 20분', 꿈의 철도 '하이퍼루프' 어디까지 왔나

▲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2013년 자사 블로그에 공개한 하이퍼루프 개념도. <테슬라 모터스 블로그>

11년 전인 2013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자사 블로그에 하이퍼루프 기술에 대한 50 페이지 가량의 아이디어를 공개한 뒤 여러 기업들이 하이퍼루프 개발에 뛰어들었다.

머스크는 당시 블로그를 통해 기존 열차보다 더 빠르고, 더 안전하고, 도입 비용이 저렴한 점 등을 하이퍼루프의 장점으로 언급했다. 특히 미국 서부 도시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하이퍼루프를 건설하는 데, 같은 구간 고속철도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인 60억~100억 달러밖에 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하이퍼루프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선 장밋빛 예측과 달리 가시밭길이 펼쳐졌다.

1000km/h 속도를 넘나드는 하이퍼루프 차량은 경사나 커브에서 승객에 중력 가속도로 인한 큰 충격을 줄 수 있어 대부분 직선 주로로 건설돼야 하는데, 고가와 터널 등을 건설하는 데 막대한 자본이 들어갈 것으로 분석됐다. 하이퍼루프를 지하에 건설할 때도 진공 튜브 등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예측됐다. 

자금을 확보한다 해도 통행권을 확보하고 현지 부동산 소유주, 규제 기관과 협력해 운영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런 비용 증가 요소들은 모두 단기적 수익이 없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

이는 하이퍼루프 선도 업체였던 영국 버진 그룹의 '하이퍼루프 원'이 작년 말 폐업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2014년 설립된 하이퍼루프 원은 2017년 5월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서 96m 구간을 111km/h로 달리는 데 성공했다. 같은해 8월 2단계 주행 시험에선 최고속도를 309km/h로 끌어올렸다. 2020년 11월엔 500m 시험 트랙에서 최고 속도 172km/h에서 최초의 유인 주행 시험에 성공했다. 

상용화 과정에서 여러 난제들이 발생하면서 하이퍼루프를 둘러싼 비관론이 본격 제기됐다.

미국 과학 잡지 파퓰러 사이언스는 지난 10일 "최근 미국의 기존 고속철도가 발전하면서 하이퍼루프에 관한 야심차고 비싼 약속이 덜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하이퍼루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보다 현실적 대안이 번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세계 곳곳에선 '꿈의 철도'를 실현하기 위한 도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부산 단 20분', 꿈의 철도 '하이퍼루프' 어디까지 왔나

▲ 유럽 하이퍼루프 센터(EHC)의 시험 노선 모습. <하르트>

최근 중국에선 하이퍼루프 시험운행과 관련한 돋보이는 성과가 관측됐다.

올해 초 중국우주과학공업집단공사(CASIC)는 하이퍼루프의 속도 신기록을 세웠다고 주장하며, "하이퍼루프 열차를 향한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정확한 속도는 공개하지 않았다.

CASIC는 지난해 11월 완공된 실물 크기의 2km 시험 선로를 이용해 자기부상 열차가 저진공 튜브 안에서 이동하면서 처음으로 안정적 부양을 이뤄냈다고 밝혔다. 또 최근 시험 결과는 지난해 발표한 최고 속도인 623km/h를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과학 전문 매체 IFL사이언스는 "중국이 목표로 삼은 최고속도 1000km/h는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테스트에 따르면 그들의 파이프(하이퍼루프) 꿈은 계획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캐나다 트랜스포드도 승객 54명 또는 화물 10톤을 싣고 시속 1000km로 달리는 '플럭스제트'를 2035년까지 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서울-부산 단 20분', 꿈의 철도 '하이퍼루프' 어디까지 왔나

▲ 하르트의 하이퍼루프 튜브와 포드 이미지. <하르트>

머스크 CEO는 하이퍼루프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제공했지만, 관련 기술 연구를 세계 최초로 시작한 곳은 한국이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철도연)은 2009년 '하이퍼튜브(HTX)'로 명명한 초고속 튜브철도 기술연구를 세계에서 처음 시작했다.

2020년 11월 철도연은 독자 개발한 17분의 1 축소형 모형 시험에서 시속 1019km 속도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하이퍼루프의 음속 주행을 세계 최초 과학적으로 규명한 사례로, 하이퍼튜브 기본 설계와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다만 유럽, 중국, 미국 등과 달리 국내에선 하이퍼루프 관련 기술 실증을 진행하지 못했고, 아직 기술 검증 단계에 머물러있다.

국토교통부 하이퍼튜브 테스트베드 부지 우선 협상 대상자에 선정된 전라북도는 2024~2032년 새만금지역에 하이퍼튜브 실증단지를 건설하고, 핵심 기술을 확보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2022년 11월과 지난해 10월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연이어 탈락했다.

전북도는 지난 4월 국토부에 국비를 건의하고, 예타 재도전을 위한 기술 연구에 나섰다.

새만금 하이퍼튜브 종합시험센터 사업이 시작되면 2024~2026년 1단계 사업에선 3377억 원을 투입해 1~2km의 짧은 구간에서 150~200km/h 속도로 기술 개발과 성능 검증을 추진한다. 2027~2032년 2단계에는 7890억 원을 들여 12km로 시험선로를 늘리고, 800km/h의 속도로 상용화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