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해외 게임사의 국내 대리인 지정제도 도입이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위시한 해외 게임 업체들이 규제를 회피하고, 국내 게임 이용자 피해에도 '나몰라라' 하는 먹튀 논란이 거센 가운데 이런 해외 게임사의 이같은 나쁜 관행을 없앨 대리인 지정제 법안이 21대 국회서 자동 폐기될 것으로 예상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먹튀' 중국 게임사 규제 또 물 건너간다, 국내업체 역차별 해소 막막

▲ 중국 4399의 모바일게임 버섯커키우기는 2023년 12월 국내 출시 직후 한국 모바일게임시장을 휩쓸고 있지만 부실한 고객대응으로 이용자와 게임업계의 눈총을 받고 있기도 하다.  


15일 게임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해외 게임사에 대한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게임산업진흥법 일부 개정안이 21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사실상 폐기될 전망이다.

현재 이 법률 개정안은 국회 법안 처리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21대 국회는 5월29일을 끝으로 회기를 종료하는데, 국회는 남은 회기 여러 정치적 쟁점법안을 먼저 표결에 붙일 예정이다.

나머지 대다수 산업 진흥에 관한 법안을 비롯해 이른바 민생 관련 법안들이 자동 폐기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법안을 발의했던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재선에 실패하며 21대 국회를 끝으로 의원직을 마감하기 때문에 22대 국회에서 이 법안이 다시 발의돼 논의될지는 예측하기 힘든 상태다.

이 법안은 해외 게임사의 국내 대리인에 사업자 의무, 금지사항 준수, 불법 게임물 유통 금지, 확률형 아이템의 표시, 광고 및 선전 제한 규정 준수 의무 등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최근 게임 업계에서는 중국 등 해외 게임 기업이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국내서 이용자를 모은 뒤, 단기간에 게임 아이템 수익을 내고 철수해버리는 이른바 '먹튀' 사업 행태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2020년 중국 게임사 페이퍼게임즈가 '샤이닝니키'라는 모바일 게임을 출시했다가, 게임 속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지지하는 내용을 실어 문제가 되자 서비스를 돌연 중단해 '먹튀' 논란을 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당시 이 게임 아이템을 돈을 주고 샀던 이용자들은 이 중국 업체의 돌연 서비스 중단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국내서 피해를 구제받을 길이 없었다. 

최근 버섯커키우기, 라스트워 서바이벌 등 중국 모바일 게임이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 10위 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들을 국내 게임 업체와 동일하게 규제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게임 이용자들의 항변이다.
 
'먹튀' 중국 게임사 규제 또 물 건너간다, 국내업체 역차별 해소 막막

▲ 2023년 10월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상헌 위원장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네이버 라운지 등 게임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접속 오류로 인해 게임 접속이 아예 불가능하다'거나 '결제를 했지만 아이템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등의 중국 게임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많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피해 구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국 게임 업체들은 중국에 서버를 두고 서비스를 한국에 제공할 뿐이거나, 국내 배급사에 서비스 운영을 맡기더라도 대부분 고객센터 등 이용자 불편이나 피해를 해결해줄 수 있는 조직이나 시스템을 두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8일 게임물관리위원회 수도권사무소를 방문해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의무화가 국내 게임 기업에만 적용되고 해외 기업엔 적용되지 않은 규제 역차별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해외 게임사는 단속이 어렵다고 들었다"면서 "국내 대리인 의무 지정 제도가 도입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도 규제 역차별 해소를 위해 사실상 국내 대리인 지정제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을 대책으로 보고 있었지만, 법안 자동 폐기에 따라 당분간 특별한 대책을 내놓기는 힘들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국내 대리인 지정제가 도입되더라도 해외 게임 기업에 대한 단속이나 규제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법이 제정되더라도 관리 당국의 지속적 관리감독과 처벌이 없으면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고, 해외 기업들이 실체가 없는 국내 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법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일례로 미국 메타(페이스북 운영사)의 경우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메타 커뮤니케이션 에이전트이라는 국내 대리인을 두고 있지만, 이 국내 대리인의 국내 주소지를 공유오피스로 설정해놓고 실제론 직원도 없고 전혀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 게임기업들은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규제는 점점 많아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규제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법망을 피해 사업하는 일부 해외 사업자만 이익을 보는 구조가 되선 안된다"고 말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