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400조 머니무브' 퇴직연금 실물이전 개시 첫날, 직접 옮겨보니

▲ 31일부터 금융사 앱에서 퇴직연금 실물이전을 신청할 수 있다. <금융앱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타사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져오기 신청을 완료했어요.”

어쩌다보니 3년 가까이 유지한 '이중' IRP 생활을 청산하는 중이다.

첫 IRP는 주변의 권유로 만들었다. 그런데 주거래은행이 아닌 금융사(시중은행)다 보니 결국 1년 가까이 납입을 한 뒤 방치됐다.

이후 다시 IRP에 관심이 생기면서 평소 이용하던 금융사(증권사)에 새 IRP 계좌를 만들었다.

이전에도 두 IRP를 합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존 상품을 환매한 뒤 옮겨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걸렸다.

계좌를 들어가 보면 나름(?) 수익이 잘 나고 있는 듯한데 이걸 굳이 팔아야 한다는 점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31일 시작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배경이다.

실물이전은 기존 퇴직연금 계좌에서 투자하고 있는 상품을 매도해 현금으로 바꿀 필요 없이 그대로 옮길 수 있다.

지금까지는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사업자로 옮기려면 기존 상품을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소비자가 손실을 볼 여지가 있었다. 중도해지에 따라 기대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받거나 투자상품 환매와 재매수 사이 가격 변동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은 투자상품을 현 상태 그대로 옮기는 만큼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물론 업계에 따르면 기존 투자상품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퇴직연금 실물이전이 출범하기까지는 시스템 안정화 등의 사유로 개시일을 한 차례 미루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도입 과정과 달리 실물이전 신청은 버튼 몇 번을 누르자 끝났다.

다만 ‘신청’을 마쳤을 뿐, 실물이전이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체험기] '400조 머니무브' 퇴직연금 실물이전 개시 첫날, 직접 옮겨보니

▲ 퇴직연금 실물이전 실행 절차.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갈무리>

계약이전 신청을 하면 이관회사(현재 이용하고 있는 퇴직연금사업자)는 이전 예상 소요기간과 실물이전이 가능한 상품 목록 등을 가입자에게 안내하고 이전 여부에 대한 최종 확인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실물이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명된 상품은 현금화한 뒤 이전되는 '현금이전'으로 처리된다. 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확인 전화에서 이전 신청을 취소할 수 있다.

만약 확인 단계에서 이전 의사를 밝혔다면 실제 실물이전 실행이 진행되며 문자나 앱 등으로 결과가 전달된다.

기자의 경우는 오전 10시 쯤 신청을 완료한 뒤 5시간이 넘게 지났으나 아직까지 확인 전화는 오지 않았다.

퇴직연금사업을 하는 한 금융사 관계자는 "실물이전 신청 후 D+1일 안으로 불가능하면 통지가, 가능하면 확인 전화가 나간다"며 "서비스 개시 초반인만큼 시일이 더 걸릴 수 있으나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사 관계자는 "최초 신청부터 이전 완료까지 오후 3시 반 이전에 신청하면 최소 3영업일, 3시 반 이후면 최소 4영업일 정도가 걸린다"며 "다만 서비스가 이제 막 개시돼 상황에 따라 소요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물이전 가능 여부를 알려줄 전화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자니 추후 제공이 예정된 '사전조회 기능'도 절실해졌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은 가입자의 편의성 제고를 위해 보유한 상품의 실물이전 가능 여부를 신청 전에 미리 조회할 수 있는 사전조회 기능을 빠른 시일 내 개시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실물이전과 관련해서 아직 안내가 미흡하다고 생각된 부분은 또 있다. 실물이전 서비스 제공시간이 사전에 안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은 31일 실물이전 서비스를 개시하겠다고 했으나 시간은 안내되지 않았다.

직접 이날 여러 금융사의 앱을 접속해본 결과 실물이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금융사별로 달랐다.

A증권사는 새벽 00시15분부터 저녁 11시45분까지 신청을 받는다. 다만 첫 날인 31일은 오전 8시부터 서비스를 제공했다.

반면 B은행은 안정적 서비스 제공을 위해 일정 기간 신청 가능 시간을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 사이로 제한한다고 안내했다.

C은행은 오전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이용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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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앱 내 퇴직연금 화면에서 퇴직연금 '보내기' 서비스를 찾아볼 수 있다. <은행앱 갈무리>

또한 퇴직연금 ‘가져오기’가 아닌 ‘보내기’도 가능하다는 안내가 무색하게 ‘보내기’ 기능이 어디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수관회사(계좌를 옮겨가고자 하는 퇴직연금사업자)에 이미 개설된 퇴직연금계좌가 있는 경우 신규 계좌 개설이 필요하지 않아 이관회사(현재 이용하고 있는 퇴직연금사업자)에서도 이전 신청을 할 수 있다. 

이날 기준으로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회사는 모두 37곳이다. 실물이전 대상 적립금의 94.2%를 해당 금융사들이 관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의 퇴직연금 비교공시에 따르면 3분기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액은 400조793억 원이다.

이 가운데 은행권 적립액이 210조2811억 원, 증권사 적립액은 96조5328억 원, 보함사 적립액은 93조2654억 원이다.

실물이전 대상 퇴직연금사업자 44개사 가운데 나머지 7곳은 시스템 구축 등을 이유로 서비스 개시가 지연됐다. 조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