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그룹이 회장 선임 과정 개편을 통해 지배구조의 정당성을 높이고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경영 기반을 다지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포스코그룹과 같이 이른바 '주인없는 기업'이라 불리는 KB금융그룹은 올해 경영 승계 과정에서 금융지주 경영승계의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스코그룹이 회장 선임 과정 등의 개편을 통해 KB금융그룹처럼 지배구조의 정당성을 높이고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경영 기반을 다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31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3월 포스코홀딩스가 출범하며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포스코그룹이 지배구조 평가기관으로부터 우수한 지배구조 체제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파악된다.
포스코홀딩스의 올해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보면 기업지배구조 핵심지표 15개 항목 가운데 '주주총회 4주 전에 소집공고 실시'를 제외한 14개 항목을 준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스코홀딩스는 올 3월 정기주총 소집공고를 3주 전에 실시했는데 2021년에는 이를 포함한 15개 항목을 모두 준수했다.
포스코홀딩스는 최근 한국ESG기준원이 발표한 올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급에서도 지배구조 부문에선 'A+'를 받았다. 1천여 개 대상기업 가운데 13곳만이 해당 부문 A+ 등급을 받았는데 S등급을 받은 기업이 없어 최상위 등급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그럼에도 포스코그룹은 올 3월 발족한 선진지배구조TF(테스크포스)를 중심으로 전반적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주사 포스코홀딩스의 차기 CEO 선출을 앞두고 있어 선임 관련 규정을 개편하는 것이 선진지배구조TF가 마주한 당면 과제로 분석된다.
정부는 올해 들어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견제를 강화하는 방침을 추진하고 있다.
소유분산기업은 지분이 분산돼 확실한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을 말한다. 포스코와 KT 등 민영화된 공기업과 우리·신한·하나·KB 등 금융지주회사가 대표적인데 '주인없는 회사'로도 불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30일 진행된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정부 투자기업 내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이른바 '스튜어드십'이란 게 작동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국민연금 등 정부 관련 기관들이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경영 감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포스코그룹은 최근 CEO 선임 관련 규정 가운데 '현직 우선 심사제' 규정을 수정하는 한편 '승계 카운슬'과 CEO후보추천위원회 구성과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포스코홀딩스는 현직 회장이 연임에 도전하면 단독으로 우선 심사를 받을 기회를 줬다. 'CEO 후보추천위원회'가 1달 동안의 심사를 진행해 적격 판단을 내리고 주총에서 선임 안건이 통과되면 연임할 수 있었다.
현직 우선 심사제는 경영 연속성을 보장하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하지만 다른 CEO 후보들의 기회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불공정성 논란이 항상 뒤따랐다.
포스코홀딩스는 현직 회장이 연임 의사를 밝힌 때 다른 후보자들과 함께 심사를 받도록 이사회 운영 규정을 수정하는 방침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함께 차기 리더십 창출을 결정하는 '승계 카운슬'과 CEO후보추천위원회 구성과 운영 방식의 개선 방안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그룹의 차기 회장 선출은 승계 카운슬 차기 회장 후보군을 선발해 CEO후보추천위원회에 회부하고 CEO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들 가운데 최종 후보 1인을 추려 주주총회에 추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승계 카운슬과 CEO후보추천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어 투명성 확보를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물론 CEO후보추천위원회가 사외이사 전원으로 구성돼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사외이사를 선출하는 과정 또한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고 있는지에 물음표가 따라붙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서는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사외이사후보추천 자문단의 비공개 운영을 이유로 든다.
포스코홀딩스와 같이 소유분산 기업인 KT는 지난 8월 말 김영섭 대표이사를 선임하기까지 반년 가까운 CEO 공백 사태를 겪은 바 있다.
KT 역시 포스코홀딩스와 같은 현직 우선 심사제를 두고 있었지만 불공정 논란 속 반년 가까운 CEO 공백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올 6월 현직 대표도 다른 후보들과 함께 심사받도록 제도를 수정했다.
구현모 전 KT 대표이사 사장은 올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지난해 말 연임의사를 밝힌 뒤 이사회에서 연임 적격후보로 선정됐다.
하지만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KT 대표이사 선발 과정이 내부자에게 유리한 방식이라고 문제 삼으면서 구 사장은 후보군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그 뒤 KT 대표이사 최종후보에 올랐던 윤경림 전 KT 사장도 3월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기대 수준을 넘어서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새 대표이사가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며 자진사퇴했다.
이에 KT는 현직 우선 심사제를 손본 뒤 8월 말 LGCNS 사장 출신 김영섭 대표이사를 선임하기까지 초유의 CEO 공백 사태를 겪어야 했다.
포스코홀딩스 역시 최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으로 9월 기준 포스코홀딩스 지분 7.72%를 들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도 최 회장이 연임의사를 밝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차기 CEO 선출 방식을 손보지 않으면 자칫 경영 공백 사태를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3월17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제55기 포스코홀딩스 정기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
KB금융그룹은 올해 9년 만의 회장 교체를 앞두고 국내 금융지주 경영승계의 모범사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오는 11월 양종희 부회장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KB금융은 7월20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시작일부터 숏리스트 결정 등 주요 절차마다 관련 내용을 시장에 투명하고 적극적으로 알리며 경영승계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벌어질 수 있는 논란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평가방식을 개선해 후보자들과 관련해 충분한 검증기간을 확보했고 내·외부 후보간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 투명성뿐 아니라 공정성, 독립성, 절차적 정당성을 마련해 관치금융이 강해질 여지를 줄였다.
이에 지배구조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포스코홀딩스가 차기 회장 선출 관련 규정을 투명하게 개편하고 KB금융과 같은 모범사례를 쓸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포스코홀딩스의 회장 선임 방식 개편은 주인없는 기업으로서 이전까지 '외풍'에 시달렸던 역사를 바꿔 나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그룹은 2000년 10월 민간기업으로 전환한 뒤 이구택, 정준양, 권오준 등 전 회장들이 연임에 성공했지만 정권 교체 뒤에 맞은 2번째 임기는 모두 마치지 못한 채 물러났다. 이를 놓고 포스코그룹이 CEO 자리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정치권 입김을 버티지 못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했다.
회장 선임 방식 개편을 통한 제도의 정당성 및 투명성 제고는 이와 관련한 소모적 논란을 해소하고 안정적 경영환경을 다지는 데 힘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포스코그룹 관계자는 "현재 선진지배구조TF에서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전반적 검토가 이뤄지고 있으나 구체적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