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사진)은 2차전지 원료에서 소재에 이르는 사업을 확대하며 공급망 밸류체인(가치사슬) 내재화에 공을 들여 배터리 소재 산업 내 영향력을 더 확대하고 있다.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은 2차전지 원료에서 소재로 사업을 넓혀 밸류체인 내재화에 공을 들이면서 배터리 소재 산업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9일 포스코홀딩스에 따르면 자회사 포스코퓨처엠(옛 포스코케미칼)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2차전지 소재사업의 양적·질적 고도화가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이와 함께 포스코홀딩스는 차세대 소재의 개발·생산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실리콘음극재 사업은 포스코홀딩스가 최근 부쩍 속도를 내고 있는 대표적 차세대 소재 분야 가운데 하나다. 포스코홀딩스가 지난해 인수해 새 출발을 하게 된 포스코실리콘솔루션(옛 테라테크노스)는 연 5천 톤의 실리콘음극재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4일 경북도, 포항시와 3천억 원 규모 투자협약을 맺었다.
실리콘음극재는 현재 리튬이온전지에 대부분 사용되는 흑연계 음극재보다 에너지 밀도가 약 10배 정도 높아 전기차 주행거리 향상은 물론 충전 시간도 단축할 수 있는 차세대 음극재로 꼽힌다.
게다가 중국이 세계 최대 흑연 생산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리콘음극재 생산 확대는 음극재 관련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의미도 지닌다.
음극재 시장에서 실리콘음극재 비중은 2020년 6천 톤 규모에 불과했지만 2027년 약 32만 톤까지 늘어나 10.1%의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0~2027년 실리콘 기반 음극재 소재의 연평균 성장률은 76.6%로 다른 음극활물질과 비교해 성장률이 매우 가파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포스코퓨처엠은 자신들이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인조흑연음극재 생산능력도 확대하고 있다.
인조흑연음극재는 천연흑연음극재와 비교해 결정성이 높고 구조가 더 균일해 안정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석유계피치나 콜타르 원료를 가공해 침상코크스를 만들고 이를 분쇄한 뒤 뭉쳐서 가열하는 등 추가 제조공정을 거치므로 가격은 더 비싸다.
콜타르가 제철공정에서 부산물로 발생하는 만큼 제철사업을 하는 포스코그룹으로서는 원료확보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침상코크스를 자회사인 포스코MC머티리얼즈로부터 공급받는다.
현재 포스코퓨처엠은 경북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에 연산 1만 톤 규모의 인조흑연음극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배터리 소재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전고체배터리는 현재 리튬이온배터리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을 적용한 것이다.
전고체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적용하는 기존 배터리보다 더 높은 안정성을 지니며 에너지밀도도 더 높다.
포코스홀딩스는 고체 전해질 기술을 지닌 회사 ‘정관’과 합작회사 포스코JK솔리드솔루션을 설립한 뒤 연산 24 톤 규모의 고체 전해질 생산시설을 확보했다.
차세대 소재뿐 아니라 현재 주력 품목의 생산능력을 늘리며 이익 창출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달 이사회에서 하이니켈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양극재 제조설비 구축을 위해 3920억 원을 투자하기로 의결했다. 이는 포항 양극재 공장의 2-1단계 증설을 진행하는 것으로 투자 규모는 2022년 포스코케미칼 자기자본의 16.1% 수준이다.
앞서 포스코퓨처엠은 지난해 4월 포항시 영일만 산업단지 12만 여㎡ 면적에 양극재 공장을 조성하기로 하고 1단계로 2900억 원을 투자해 연간 3만 톤 규모의 양극재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1단계 공장은 2024년 가동이 목표다.
여기에 2-1단계 증설을 마치면 추가로 연간 2만9500톤 규모의 하이니켈계 양극재를 생산할 수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2025년까지 포항, 광양, 구미 등 국내에 연간 생산량 16만 톤 규모의 양극재 생산설비를 갖춘다는 계획을 마련해 뒀다.
포스코홀딩스가 포스코퓨처엠을 중심으로 다른 자회사 및 합작회사들과 함께 소재 분야 사업 포트폴리오를 알차게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보다 더 주목되는 부분은 포스코홀딩스의 2차전지 원료 확보 능력이다.
특히 정세 변화에 따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경제 권역이 주요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다. 2차전지 공급망 밸류체인에서도 미국을 소비처로 하는 곳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원료 확보 능력은 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2025년부터 ‘해외 우려 단체’가 추출·가공한 핵심 광물이 포함된 배터리는 보조금(세제혜택) 대상에서 빠지게 되는데 특정 국가나 단체 이름을 적시하진 않았지만 중국 기업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포스코홀딩스의 원료 확보 능력은 자체 이익에 기여할 뿐 아니라 포스코퓨처엠을 중심으로 한 소재 사업의 안정성을 높이고 원료 조달 비용을 낮추는 데도 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밸류체인 내재화의 시너지 효과가 적지 않은 것이다.
2차전지소재 밸류체인 구축은 최정우 회장이 역점을 두고 실행하고 있는 포스코그룹의 중요 사업과제로 꼽힌다.
애초 2차전지 관련 사업은 전임 권오준 회장이 애착을 보인 분야다. 하지만 권 회장은 리튬을 얻기 위해 필요한 염호 확보 과정에서 이명박정부 자원외교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고 이는 그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간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차전지 원료 확보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많았던 만큼 사업이 주춤할 수도 있었지만 포스코그룹이 사업 동력을 유지하며 2차전지 관련 사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 회장의 확실한 의지와 2차전지의 앞날에 대한 비전이 깔려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 회장은 2018년 포스코켐텍(현 포스코퓨처엠) 대표이사를 지내기도 하는 등 2차전지와 관련한 밸류체인 전반의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2차전지 소재 밸류체인을 강화하기 위해 호주와 아르헨티나 등 핵심광물 보유국들에서 협력기반을 넓히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아르헨티나와 호주에서 리튬과 니켈을 2030년까지 각각 연간 30만 톤, 22만 톤을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았다. 이를 위해 최 회장은 직접 발로 뛰며 원료 확보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6월 호주를 방문해 호주 자원개발 기업 핸콕의 지나 라인하트 회장과 만나 '리튬, 니켈, 구리 등 중요 금속과 철광석 등 광산개발 및 HBI 사업 추진에 대한 전략적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당시 최 회장은 호주 자원개발 기업 핸콕의 지나 라인하트 회장을 만나 "2차전지 원소재 개발부터 양극재, 음극재 등 제품생산까지 가치사슬(밸류체인)을 갖춘 포스코그룹과 광산업에서 우수한 경험과 역량을 보유한 핸콕이 리튬, 니켈 등의 2차전지 원소재 사업에서 협력한다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호주의 자원개발과 원료 가공 관련 기업 경영진들을 만나 협력기반을 다지는 한편 마크 맥고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지사 등 정치권 인사들과도 접촉면을 넓혔다.
지난해 초에는 아르헨티나 리튬광산에 4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당시 최 회장은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만나 “전기차 배터리의 필수 소재인 리튬은 포스코그룹의 미래 성장을 견인할 핵심 사업 분야로 아르헨티나 정부 차원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포스코그룹이 아르헨티나 염호에 선제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 리튬을 직접 생산해줘서 감사하다”며 “포스코그룹의 리튬 사업이 조속히 성과를 내고 사업 규모도 확장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인프라 및 인허가 등 모든 것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이태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세부지침 발표를 보면 핵심 광물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가공을 하면 세액공제를 허용함에 따라 포스코홀딩스의 광석리튬(4만3천 톤), 염수리튬 2단계(2만5천 톤), 포스코HY클린메탈을 통한 리사이클링(5천 톤) 등의 생산능력이 보조금 수혜 대상이 된다”고 파악했다.
이 연구원은 “리튬 매출이 본격화하는 2025년부터 중국산이 배제되며 빡빡한 수급을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포스코홀딩스 이익에 우호적 리튬가격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성봉 하나증권 연구원은 “포스코홀딩스가 호주의 광산과 아르헨티나 염호를 통해 니켈과 리튬을 추출해 판매할 예정”이라며 “아르헨티나 정부가 미국을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를 진행하고 있는 데다 아르헨티나의 리튬 비중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 정부와 협상에 따라 아르헨티나가 핵심 광물 조달국에 추가될 가능성도 크다”고 분석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