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가운데)이 현지시각으로 19일 체코 오스트라바시 근교에 위치한 공장(HMMC)을 방문해 생산 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현대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은 높은 전기차 품질 경쟁력과 중저가 신차 도입 그리고 정의선 회장의 유럽 공략 의지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투자 시기를 놓친 독일에 맞서 유럽 시장 공략 기회가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로이터와 CNBC를 비롯한 외신을 종합하면 독일 3대 자동차회사가 일제히 실적 부진으로 자금난을 겪으며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국면에 놓였다.
로이터에 따르면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모두 올해 실적 전망치를 당초 예상보다 낮춰 잡았다.
벤츠는 매출 이익률을 10~11%에서 7.5~8.5% 사이로 하향조정했다. BMW는 이자 및 세전 이익 마진(EBIT)을 6~7% 사이로 기존보다 낮춰 잡았다.
폴크스바겐도 최악의 실적을 이기지 못하고 인력 감축은 물론 독일 내 공장 폐쇄라는 과감한 구조조정 선택지마저 저울질하고 있다.
내연기관차 경쟁력과 브랜드 가치만 자신하다 친환경차로 무게추가 이동하는 시장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투자 시기를 놓친 ‘실기’가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안방 시장인 유럽에서 전기차로 빠르게 전환하는 정책에 대응이 늦었던 것으로 지적됐다.
독일 자동차 3사가 전기차에 프리미엄 전략을 고집했으나 이는 소비자 수요를 읽지 못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관계자는 CNBC를 통해 “독일산 전기차는 너무 비싸다”라고 짚었다.
이 외에도 폴크스바겐과 벤츠 그리고 BMW 모두 2023년 기준 매출 비중이 3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는 점도 실적 악화를 가속화한 요소로 꼽힌다.
독일에서 전기차 산업을 활성화할 정책적 묘안이 마땅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현지매체 슈테른의 21일자 보도에 따르면 독일 집권당인 사회민주당(SPD)은 내연기관차를 폐차하고 전기차 신차를 구매하면 6천 유로(약 890만 원)의 보조금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허나 이러한 정책 도입 시기가 늦어지면서 전기차 산업을 부활시키는데 실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폴리티코는 “독일 당국이 내연기관차 수익에만 의존해 경쟁력을 잃어 가는 자국 자동차 업계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폴크스바겐 노동자들이 4일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열린 회사 총회 현장에서 공장 폐쇄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노동자측은 시위 인원이 1만6천 명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유럽 자동차 시장을 주도하는 독일 기업보다 전기차 경쟁력에서 앞섰다는 평가가 많은데 이들의 실적 부진을 틈타 사업 확장하기가 수월해질 수 있다.
독일 자동차 전문매체 아우토자이퉁은 올해 8월 현대차 아이오닉5N을 BMW M2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내렸다. 주행 편의성과 경제성을 비롯한 다수 기준에서 아이오닉5N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M2는 내연기관차로 성능을 비교했지만 독일 현지 매체까지 현대차 전기차를 자국 대표격 브랜드 차량보다 우수하다고 인정한 셈이다.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에볼루션도 “(폴크스바겐이나 BMW와 같은) 유럽 전기차는 한국 자동차 브랜드보다 한 세대 뒤처져 있다”라고 평가했다.
독일 자동차 기업이 실적 악화로 전동화 투자에 힘쓰기 어려울수록 유럽에서 현대차그룹 전기차가 긍정적 평가에 힘입어 소비자 선택을 받을 공산이 커질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올 연말 중저가형 보급형 전기차인 인스터(한국명 캐스퍼)와 EV3의 유럽 출시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판매고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요소로 꼽힌다.
독일 전기차가 높은 가격으로 소비자에 외면당한 빈틈을 파고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기차 전문매체 일렉트렉은 “2만5천 유로(약 3700만 원) 미만 가격대인 인스터는 유럽에서 가장 저렴한 차량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19일 체코 노소비체 공장(HMMC)을 방문해 유럽 전기차 사업을 강화할 의지를 피력했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 전기차 시장인 유럽에서 경쟁이 현대차 향후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을 짚은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기업 총수의 강력한 의지까지 등에 업은 현대차그룹이 독일 완성차 3사의 부진을 틈타 유럽 전기차 시장 확대를 노릴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뒤스부르크-에센 대학교 교수 겸 보훔자동차연구센터(CAR) 소장은 현지매체 디벨트를 통해 “독일은 전기차 판매에 높은 비중을 보였던 2022~2023년 상황을 2028년까지 재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