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와 민희진 갈등, 방시혁 '멀티레이블 체제'의 한계 수면 위로 올렸다

▲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수장 민희진 대표이사의 갈등을 놓고 하이브의 '멀티레이블' 체제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이 추구해온 ‘멀티레이블’ 체제의 효용성을 놓고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하이브가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수장 민희진 대표와 갈등하는 근본 이유를 멀티레이블 체제의 한계에서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26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따르면 이른바 ‘하이브-민희진 사태’를 놓고 방시혁 의장이 하이브의 경쟁력 가운데 하나로 꼽은 멀티레이블 체제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멀티레이블이란 1인 총괄 프로듀서 아래 모든 조직이 돌아가는 기존의 기획사 체제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한 기획사가 모든 신인 가수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레이블을 두고 각 레이블의 개성에 맞는 신인을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멀티레이블은 하이브의 경쟁력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하이브는 산하에 모두 11개의 개별 레이블을 보유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소속된 빅히트뮤직이 대표적이며 르세라핌을 데뷔한 쏘스뮤직, 지코 소속사인 케이오지엔터테인먼트, 뉴진스 소속사인 어도어, 엔하이픈과 아일릿 소속사인 빌리프랩 등이 있다.

각 레이블이 발굴해 육성한 아이돌그룹이 흥행하면서 각 레이블의 영향력도 급성장했다.

최근 한 증권사는 빅히트뮤직과 플레디스, 어도어, 빌리프랩 등 주요 레이블 4곳의 기업가치를 2025~2026년 실적 기준으로 총 12조 원으로 추산했다. 26일 기준 하이브의 시가총액이 8조4천억 원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각 레이블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하이브 매출이 2021년 1조2559억 원에서 2022년 1조7761억 원, 2023년 2조1781억 원으로 매번 신기록을 써온 배경에서 각 레이블의 성과를 빼놓기는 힘들다.

하지만 민희진 어도어 대표이사의 경영권 장악 논란과 관련해 하이브의 멀티레이블 체제가 조명되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멀티레이블 체제의 한계도 주목받는 모양새다.

민 대표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방시혁 의장은 두루 봐야하는데 어도어와 플레디스, 빌리프랩 등을 의장이 주도하면 알아서 기는 사람이 생긴다”며 “군대축구처럼 공을 자꾸 골대로 몰아주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레이블들은 의장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며 “자율적으로 경쟁해해야 건강하게 크는데 최고경영권자가 첫째와 둘째를 정해놓는다”면서 멀티레이블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민 대표는 방 의장이 최고의사결정권자로서 어떤 의견을 냈을 때 산하 레이블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구조라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자신이 하이브로부터 공격받고 있는 이유도 레이블 어도어만 유일하게 하이브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민 대표는 “‘시혁님(방 의장)이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했겠지’라고 생각하며 반기를 안 드는 게 역적이다”며 “이건 안 좋다고 얘기하는 것이 좋은 직원이고 이것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민 대표의 주장이 다소 일방적인 상황에서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다만 하이브가 멀티레이블 체제를 고수하면서 동시에 각 레이블에 우선순위를 정해두는 것이 이 체제의 취지와는 다소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업계의 한 관계자는 “애초 멀티레이블 체제를 운영하는 목적은 각 레이블의 개성을 충분히 존중해 개성과 경쟁력을 갖춘 가수를 발굴하는 데 있다”며 “하지만 총괄기업이 각 레이블의 신인 데뷔를 앞두고 전략적 판단이라는 명분 아래 홍보나 데뷔 시점을 조율하는 것은 멀티레이블의 정신과 결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이브와 민희진 갈등, 방시혁 '멀티레이블 체제'의 한계 수면 위로 올렸다

▲ 민희진 어도어 대표이사가 25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방시혁 의장이 하이브를 통해 실험해온 멀티레이블 체제가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방 의장은 하이브를 2020년 상장할 때부터 멀티레이블 체제를 하이브의 대표 경쟁력으로 꼽았다. 하이브가 상장 당시 비교기업을 엔터테인먼트기업으로 삼지 않고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플랫폼기업으로 삼았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수많은 독립 자회사들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듯 하이브 역시 플랫폼기업처럼 산하에 수많은 레이블을 두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영향력을 넓혀가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하이브는 사업보고서에도 “진정한 라이프스타일 멀티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며 멀티레이블을 통한 사업 확대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이브 내부적으로는 이미 멀티레이블 체제에 대한 고민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이사는 23일 사내 메일을 통해 “이번 사안을 통해 (멀티레이블 체제에)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며 “이번 사안을 잘 마무리 짓고 멀티레이블의 고도화를 위해 어떤 점들을 보완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하이브와 민 대표의 공방이 어떻게 결론 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결과를 떠나 방시혁 의장과 하이브, 산하 레이블 소속 가수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K팝의 주요 소비층인 1020세대 사이에서는 하이브 소속 가수들을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각 아이돌그룹을 응원하는 팬덤마다 갈등하는 것은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멀티레이블을 총괄 책임지는 하이브가 각 레이블을 차별했을 수도 있다는 시각이 퍼지면서 이번 사태에서 언급된 뉴진스와 르세라핌, 아일릿의 브랜드 가치 훼손도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