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이 대만 공략에 투자 규모를 더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려면 그만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경영 철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대상으로 지목된 대만 사업의 성과에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쿠팡 모회사인 쿠팡Inc는 27일(현지 시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2023년 매출 243억8300만 달러, 영업이익 4억7300만 달러를 냈다고 밝혔다.
쿠팡이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진행한 컨퍼런스콜 내용을 들어보면 올해 신사업부문에서 적자 규모가 늘어난다고 언급한 내용이 눈에 띈다.
거라브 아난드 쿠팡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해 전망과 관련해 “신사업부문에서 약 6억5천만 달러의 조정EBITDA(상각 전 영업이익)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쿠팡이 올해 신사업부문의 손실 규모가 늘어날 것이라고 공식화했다. 사진은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
쿠팡은 2022년부터 전체 실적을 제품커머스부문(로켓배송, 로켓프레시 등)과 신사업부문(쿠팡플레이, 쿠팡이츠, 대만사업 등)으로 구분해 공개하고 있다.
쿠팡이 내다본 올해 신사업부문의 예상 손실 규모는 4년 연속으로 적자를 이어가겠다는 것을 공식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쿠팡은 202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뒤 신사업부문에서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조정EBITDA 기준으로 2021년 손실 3억8700만 달러를 낸 뒤 2022년 손실 2억2500만 달러를 보며 적자 규모를 줄이는 듯 했지만 2023년 손실 4억6600만 달러를 보며 다시 적자를 키웠다. 올해 조정EBITDA 손실 6억5천만 달러를 내게 되면 2년 연속으로 신사업부문의 적자가 확대하게 된다.
김범석 의장이 신사업부문의 투자 확대를 전략적 기조로 세우면서 적자 확대 기조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특히 대만 사업에 대한 투자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김 의장은 컨퍼런스콜에서 “신사업부문 투자 증가의 대부분은 대만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우리는 대만에서 강한 추진력을 보고 있다. 대만에서의 로켓배송 사업 성장은 한국보다 더 빠르다”고 강조했다.
쿠팡이 대만에서 로켓배송 사업을 시작한 시기는 2022년 10월부터다. 이전에는 대만에서 퀵커머스 사업을 벌이면서 사업 기회를 엿보다가 전략을 로켓배송 사업으로 선회했다. 당시 해외사업의 다른 축을 맡고 있던 일본 사업을 접어버렸을 정도로 대만에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실제로 대만 사업에서 일부 성과도 나고 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지난해 마지막 2개 분기 동안 활성 고객과 매출이 두 배로 증가했다”며 “쿠팡이 한국에서 수년 동안 쌓아온 것을 활용하고 있으며 우리의 선택과 프로세스, 학습, 풀필먼트 물류 구축 및 최적화에 대한 지식, 공급만 최적화, 10년 이상 구축한 기술 등 모든 것이 대만에서의 확장 속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장이 쿠팡 신사업부문에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시기는 지난해 2분기부터다.
2023년 1분기만 하더라도 신사업부문의 조정EBITDA 손실 규모는 2022년 1분기와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지만 2분기에는 오히려 적자 규모가 3배 늘었다. 3분기의 손실 증가 폭은 4배나 됐는데 이는 쿠팡이 다시 ‘계획된 적자’ 전략을 꺼내드는 것 아니냐는 시각으로 이어졌다.
쿠팡의 계획된 적자 전략은 당장은 손실을 보더라도 물류 인프라 구축과 기술 확보 등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전략을 말한다.
쿠팡은 2010년 창사 이후 2022년까지 단 한 번도 연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이 기간 누적된 적자 규모만 6조 원이 넘는다.
쿠팡이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그 때마다 김 의장은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집중하기 위해 투자를 지속하는 것일 뿐 언젠가는 그 성과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김 의장은 2022년 3분기 쿠팡의 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자신의 계획된 적자 전략이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쿠팡이 지난해 누적 영업이익 6200억 원을 내며 국내 온오프라인 주요 유통업체 가운데 최고의 실적을 낸 것 역시 김 의장의 전략이 통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신사업부문에서 적자를 내면서도 투자하겠단 전략을 이어가려는 것은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그대로 따라가서 또다시 성과를 내겠다는 의미로 읽어도 무방하다.
예전과 다른 점도 있다.
쿠팡이 과거 돈을 벌지 못하던 시기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쿠팡에 현금이 떨어질 때마다 대규모 투자로 곳간을 채워줬다.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그룹이 운영하는 세계 최대 기술투자펀드인 비전펀드를 통해 쿠팡에 모두 30억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달리 현재 시점에서 쿠팡이 계획된 적자 전략을 다시 꺼내들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본업인 로켓배송의 탄탄한 성장 덕분이다.
쿠팡은 지난해 제품커머스부문에서 각 분기별로 평균 매출 성장률 20%를 보였으며 조정EBITDA 기준 이익도 꾸준히 늘렸다. 2023년 제품커머스부문의 조정EBITDA 이익은 15억4천만 달러로 성장률만 154%나 된다.
▲ 쿠팡은 본업인 로켓배송 사업의 탄탄한 체력을 바탕으로 대만사업 투자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대만 타오위안시에 위치한 쿠팡의 대만 2호 풀필먼트센터 전경. <쿠팡>
본업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이 충분한 만큼 이 가운데 일부를 대만사업에 투자해도 무리가 없다는 자신감이 계획된 적자 전략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의장은 대만 사업과 관련해 “우리는 그곳에서 더 빨리 수익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많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이루고 있는 진전과 현장에서 보고 있는 약속에 매우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탄탄한 사업을 바탕으로 또 다른 수익원을 만들어내겠다는 전략은 김 의장이 강조해온 쿠팡의 플라이휠 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플라이휠은 미국의 대표 이커머스기업인 아마존을 설립한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가 제시한 전략으로 사업 확장에 한 번 속도가 붙으면 관성으로 계속 사업이 커지는 효과를 말한다.
김 의장은 과거 쿠팡의 실적발표 때마다 여러 차례 “더 많은 제품에서 고객 채택과 참여가 증가함에 따라 쿠팡의 플라이휠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쿠팡이 지난해 4분기 글로벌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 파페치를 5억 달러에 인수한 것 역시 계획된 적자 전략의 일부로 여겨진다. 명품과 패션, 뷰티 등 약점으로 꼽히는 분야에서 단기간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돈을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
김범석 의장은 컨퍼런스콜에서 “몇 년 후 쿠팡이 어떻게 파페치를 명품 패션에 대한 고객 경험을 변화시키고 쿠팡의 전략적 가치를 담았는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길 바란다”며 “다만 그런 대화를 오늘 나누기엔 이른 단계다”고 말을 아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