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첼시호텔부터 천호동 유니버스백화점까지, 영화제에서 만나는 건축물

▲ 제15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9월 개막을 앞두고 있다. 사진은 올해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드리밍 월스(Dreaming Walls: Inside the Chelsea Hotel)’의 한 장면. <서울국제건축영화제 홈페이지>

[비즈니스포스트] 올해로 15회를 맞는 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개막을 앞두고 있다.

9월6일 열리는 올해 영화제는 미국 뉴욕의 전설 첼시호텔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국 천호동 유니버스백화점까지 다양한 건축물과 장소에 얽힌 흥미로운 영화들이 상영될 예정이다.

경복궁 옆 열린송현 광장에서 펼쳐질 야외상영과 은평동 한옥마을에서 즐기는 한옥영화까지 즐길거리도 더욱 풍성해졌다.

11일 서울국제건축영화제 홈페이지를 보면 이번 영화제에는 18개 국가에서 작품 34편이 출품됐다. 다큐멘터리에서 춤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건축물을 조명하는 댄스필름까지, 이번 영화제 슬로건인 ‘스케일(Scale)’이 커졌다.
 
뉴욕 첼시호텔부터 천호동 유니버스백화점까지, 영화제에서 만나는 건축물

▲ 제15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개막작 ‘드리밍 월스(Dreaming Walls: Inside the Chelsea Hotel)'의 주인공인 뉴욕 맨해튼 첼시호텔. <첼시호텔 공식 홈페이지>

영화제 개막작은 뉴욕 첼시호텔의 리모델링 공사에도 호텔을 떠나지 않은 ‘마지막 거주자’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드리밍 월스(Dreaming Walls: Inside the Chelsea Hotel)’다.

뉴욕 맨해튼 23번가에 140년이 되도록 서 있는 첼시호텔은 ‘벽이 말하는 곳’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뉴욕의 랜드마크다. 

고풍스런 붉은 색 외벽의 이 호텔은 무수히 많은 예술가들의 집이었고 창작공간이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 화가로 활동하며 2016년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밥 딜런이 첼시호텔 211호에서 곡을 썼다.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희곡작가 아서 밀러는 마를린 먼로와 이혼한 뒤 첼시호텔 614호로 이사왔다. 

이밖에도 마크 트웨인, 지미 헨드릭스, 믹 재거, 잭 케루악, 스탠리 큐브릭, 앤디 워홀, 마돈나까지 다 언급하기도 힘든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첼시호텔에 머물렀다. ‘이 벽이 말을 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뉴욕 첼시호텔부터 천호동 유니버스백화점까지, 영화제에서 만나는 건축물

▲ 붉은 색 외벽의 뉴욕 첼시호텔 외관(왼쪽)과 수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든 첼시호텔의 바 '엘키오테'(오른쪽) 내부 모습. <첼시호텔 공식 홈페이지> 

드리밍 월스는 이런 첼시호텔이 고급 부띠끄 호텔로 바뀌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벽 안에 살던 사람들을 조명한다.

드리밍 월스는 다큐멘터리지만 첼시호텔의 역사와 호텔의 과거를 붙들고 현재를 산 ‘유령’같은 거주자들의 이야기는 어떤 영화보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드리밍 월스에서는 1883년 건축가 필립 위베르가 뉴욕에 예술가들을 위한 조합아파트 콘셉트로 설계한 첼시호텔의 먼지 앉은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

첼시호텔은 1884년 문을 열면서부터 입주민들이 값싼 집세를 내고 또는 직접 그린 그림 등을 임대료로 내고 살면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에 배고픈 작가, 음악가, 배우들이 모여들었다.
 
뉴욕 첼시호텔부터 천호동 유니버스백화점까지, 영화제에서 만나는 건축물

▲ 미국 뉴욕 첼시호텔에는 작가, 음악가, 배우 등 예술가들이 머물면서 창작활동을 펼쳤다. <첼시호텔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1905년 조합이 파산하면서 첼시는 실제 호텔로 개조됐다. 물론 호텔로 바뀐 뒤에도 여전히 많은 예술가들이 첼시호텔을 찾아 머물렀고 이곳을 집으로 삼는 장기 거주자들이 있었다.

첼시호텔은 그 뒤 파산과 매각을 반복했지만 주인이 바뀌어도 호텔로 운영됐다. 그러다 2011년 부동산 개발업자 조셉 체트잇이 인수한 뒤 리모델링을 위해 더 이상 투숙객을 받지 않았다. 

다만 첼시호텔의 장기 거주자 51명은 호텔을 떠나기를 거부하고 보수공사 기간에도 첼시호텔에서 살았다.

첼시호텔은 현재 리모델링을 마치고 2022년 11월 다시 문을 열어 투숙객을 받고 있다. 
 
뉴욕 첼시호텔부터 천호동 유니버스백화점까지, 영화제에서 만나는 건축물

▲ 제15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어반스케이프 섹션 출품작인 '유니버스'의 한 장면. 유니버스는 한국 서울 천호동에 1984년 문을 연 유니버스백화점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서울국제건축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도시와 건축의 관계를 주제로 한 ‘어반스케이프’ 섹션 출품작 가운데서는 서울 천호동에 세워졌던 유니버스백화점의 향수를 그린 영화 ‘유니버스’가 눈길을 끈다.

영화 유니버스는 원태웅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2022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소개됐다.

유니버스는 1980년대 서울 천호동에 문을 연 강동구 최초의 백화점 유니버스백화점의 이야기를 다룬다. 감독은 당시 유니버스백화점 앞에 있던 우주선 모양 놀이기구를 타고 광활한 우주를 상상했던 기억을 더듬는다.

유니버스백화점은 젊은 세대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할 것이다. 실제 백화점은 3년 동안 운영되다 부도가 나면서 짧은 자취만 남겼다.

유니버스백화점은 지하 2층~지상 5층 규모로 창원진흥기업이 건설해 1984년 개장했다.

유니버스백화점은 잠실 롯데백화점보다 4년이나 먼저 문을 연 백화점이었다. 하지만 건축주인 창원진흥기업이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유니버스호텔을 건설하면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1987년 ‘흑자’ 부도를 맞았다.

그 뒤 1988년 재일교포 기업인 목산통상이 인수해 목산백화점으로 운영되다 1992년에는 신세계백화점이 됐다. 

하지만 바로 옆 건물에 13층 높이 현대백화점이 경쟁자로 들어오면서 2000년 백화점 간판을 떼고 이마트로 변신했다. 바로 현재의 이마트 천호점이다.

매일 장을 보러 가던 우리 동네 건물 이면의 이런 역사는 유니버스백화점에 향수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일 듯싶다.
 
뉴욕 첼시호텔부터 천호동 유니버스백화점까지, 영화제에서 만나는 건축물

▲ 제15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비욘드 섹션 출품작인 '소비에트 건물 사용법'의 한 장면. <서울국제건축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이밖에도 올해 건축영화제에서는 건축과 춤이 만나는 댄스필름도 상영한다. 댄스필름부문에 출품된 작품 가운데 ‘소비에트 건물 사용법’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소비에트 건축유산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댄스필름이다.

영화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면전에 들어서기 전에 제작됐다. 하르키우 도시 곳곳의 콘크리트 건축물에 스며 있는 소비에트 연방시절의 잔재를 보여준다.

올해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스페셜 섹션은 한옥영화다.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을 포함 5개 작품이 출품됐다. 올해는 부대행사로 은평 한옥마을에서 스페셜 섹션의 한옥영화를 감상하는 특별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뉴욕 첼시호텔부터 천호동 유니버스백화점까지, 영화제에서 만나는 건축물

▲ 제15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어반스케이프 섹션 출품작인 '우연히 웨스 앤더슨:싱가포르 2'의 한 장면. 우연히 웨스 앤더슨 싱가포르 1편과 2편은 9월17일 일요일 오후 4시부터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야외상영으로도 볼 수 있다. <서울국제건축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또 9월부터 두 달 동안 진행되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연계해 종로구 경복궁 옆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서울 야경과 함께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출품작 ‘이토 도요오, 멕시코의 도전’, ‘우연히 웨스 앤더슨:싱가포르 Vol 1&2’을 볼 수 있는 야외상영 행사도 있다.

서울국제건축영화제는 아시아권의 유일한 건축영화제다. 오프라인에서는 이화여자대학교 ECC건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9월6일부터 10일까지 출품작들을 상영한다. 9월10일부터 17일까지는 네이버TV를 통해 온라인으로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영화제를 주최·주관하는 대한건축사협회 석정훈 회장은 9일 서울 서초구 건축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영화제는 건축에 대한 진입장벽을 과감히 허물고 많은 사람들이 건축을 즐겁게 체험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영화제를 통해 모두가 건축예술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