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함선 해외에서 건조 '핀란드 모델' 현실성에 의문부호, K조선 방산 확대 '첩첩산중' 

▲ 미국 해군 항공모함 USS 에이브러햄 링컨함이 3일 태국 촌부리주 램차방 항구에 정비를 위해 정박해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해외 조선소에서 자국 해군 함선을 건조해 인도받는 일명 ‘핀란드 모델’을 확대하려 하지만 시스템 통합을 비롯한 과제가 산적해 실현가능성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한국 조선사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따라 대미 투자를 추진 또는 확대해 한국에서 미 해군 함정 건조를 위한 물밑 작업에 나서고 있는데 사업 확대에 변수가 커질 수 있다.
 
10일(현지시각) 해군 전문지 네이블뉴스는 일본 조선업계가 자국 조선소에서 미국 호위함을 건조하는 사업에 소극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건조하는 함선이 최초 두 척이고 이후에도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일본 조선소가 얻을 경제적 이익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이 배경에 깔린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미국 함정의 해외 건조에 부과되는 조건인 대미 투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미국의 조선업 역량 약화로 공급망 구축과 인력 육성 등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 함선의 해외 건조 사업 추진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네이블뉴스는 “미쓰비시중공업을 비롯한 일본 군함 제조사가 미국 군함을 수주해도 상당한 재정 투자와 인력 투입이 불가피하다”며 “이런 점은 중대한 딜레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조선사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안을 공산이 크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모두 대미 투자를 준비 중이거나 현지 조선소를 인수해 미 군함 건조를 노리고 있다.

한화오션은 계열사 한화시스템과 2024년 12월20일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공동 인수해 미국 내 생산 거점을 확보했다. 

정부 조달 전문 매체 이그제큐티브비즈에 따르면 헝 카오 미국 해군장관 대행은 현지시각 9일 한화필리조선소를 방문해 투자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HD현대중공업도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잉걸스와 협력하고 있다. 지주사인 HD현대 또한 미국 내 조선소 인수와 지분 투자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국방부(전쟁부)가 지난 5월11일 발간한 30개년 건함 계획에 따르면 미 해군은 회계연도 2027~2031년 사이 5년 동안 3057억 달러(약 412조 원)를 들여 모두 75척의 전투함을 건조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일부만 수주해도 한국 조선사에 사업 기회가 될 수 있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의문이 나온 만큼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함선 해외에서 건조 '핀란드 모델' 현실성에 의문부호, K조선 방산 확대 '첩첩산중' 

▲ 데이비드 김 한화필리조선소 대표(왼쪽에서부터 3번째)와 헝 카오 미국 해군장관 대행(왼쪽에서 4번째), (왼쪽에서 2번째) 마이클 쿨터 한화디펜스USA CEO 등이 9일 미국 필라델피아주 한화필리조선소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화디펜스USA 링크드인 사진 갈무리>

미국 트럼프 정부는 자국 내 조선 역량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해외 조선소에서 군함을 건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13일 미 군함의 해외 건조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번스-톨레프슨법’의 예외 조항을 적용하는 내용의 국가안보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이는 미국 군 당국이 해안경비대 북극 안보 쇄빙선을 캐나다와 핀란드에서 생산하는 사례를 본떠 ‘핀란드 모델’로도 불린다. 핀란드 모델은 지난해 10월 공식화돼 올해 들어 선박 건조를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핀란드 모델은 함정 초기 물량을 동맹국에서 건조하고 해당 조선사의 기술을 미국으로 이전해 후속 물량은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방식인데 이를 둔 선결 과제가 최근 부각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각서는 미국 함선을 해외에서 건조하려면 대미 투자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구체적으로 미국에 새 조선소를 짓거나 기존 조선소의 소유권 또는 과반 지분을 확보해 미국인을 고용하고 모기업 조선 기술을 이전하는 내용도 담겼다.

더구나 미국 내 투자 기반을 구축해도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는 첫 물량은 2척으로 제한돼 투자 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핀란드 모델이 넘어야 할 다른 과제도 있다.

미국과 유럽 정책 분석 싱크탱크 유럽정책분석센터(CEPA)는 지난 9일에 펴낸 보고서에서 미 해군 함정의 해외 건조는 선체에 미국산 무기체계를 통합하고 인증하는 절차가 난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함정 설계와 미국 해군의 기술 기준이 달라 건조 단계부터 미국 무기 체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해외 조선소가 미 해군의 높은 기술 요구사항에 맞춰 함정을 건조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도 거론됐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브래들리 마틴 선임연구원은 안보 전문 매체 브레이킹디펜스를 통해 “가장 큰 어려움은 우선 미국이 전투함을 그런 방식으로 건조해 본 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이라며 “또 다른 어려움은 기술 관련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의회의 반대도 변수로 꼽혔다. 행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실제 예산 집행 과정에서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유럽정책분석센터는 “조선업이 발달한 주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함선의 해외 아웃소싱에 강력하게 반대할 유인이 있다”며 “이에 따라 동맹국 사이에 조선 협력을 막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결국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 미 해군 함정이라는 새 시장이 열렸지만 실제 사업화까지는 미국산 전투체계 통합과 설계·인증, 미국 의회의 예산 승인 등이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조선산업협회(MOW)의 매튜 팩스턴 회장은 지난 8월13일 공식 성명을 통해 “군함을 해외에서 건조하면 미국 조선소의 수요와 일자리 및 산업 역량을 빼앗을 수 있다”며 “이는 미래 세대 투자를 저해하는 결정”이라고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