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 발생 이전부터 안전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기업에 경제적 제재를 부과하는 입법을 서두르도록 주문하면서 ‘예방적 과징금 제도’ 도입에 관심이 모인다.

지난 1일 국회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노동자 사망사고 발생을 전제로 영업이익에 연동된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과 달리 추가 입법이 이뤄지면 사망사고 없이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한 기업에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향후 제재 대상과 부과기준에 따라 기업의 안전관리 부담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정부와 국회 움직임을 종합하면 산업재해 발생 이전부터 기업의 안전조치 의무 이행을 유도하기 위한 예방적 과징금 제도 도입이 주요 입법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전날인 20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을 향해 “안전조치를 안 할 경우 과징금을 매출의 몇 퍼센트 아니면 정액으로 몇억, 몇십억 하기로 하지 않았느냐. 그걸 해야 현장에서 신경 쓴다”며 “국회 입법도 갑갑하긴 하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빨리해달라고 하라. 가서 빌어라”고 주문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에게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지난 1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여기서 나아가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1년간 노동자 3명 이상이 사망한 사업주에게 영업이익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했다. 영업이익이 없거나 산정이 어렵거나 5% 상당액이 30억 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30억 원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반면 이번 추가 입법은 사고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핵심 안전조치 미이행 자체에 고액의 과징금을 부과해 기업의 사전 안전투자를 유도하는 데 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노동부가 지난해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 62곳을 감독한 결과 55곳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258건이 확인됐다. 안전난간·작업발판 미설치 등 기본 안전조치 위반 24건을 포함한 30건에 사법처리가 진행됐으며 안전교육 미실시 등 관리적 의무 위반 228건에는 과태료 약 5억3220만 원이 부과됐다.

지난 9월 발표된 반도체 제조업 집중점검에서도 SK하이닉스 청주·이천캠퍼스 등을 포함한 27개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338건이 적발됐다. 이 가운데 28건이 처벌 대상으로 분류됐으며 120건에는 약 1억12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특히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에서만 119건이 적발돼 28건이 처벌 대상으로 분류되고 84건에 약 32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예정이다.

예방적 과징금 제도가 도입되면 이처럼 현장 감독에서 적발되는 핵심 안전조치 위반에 대한 경제적 제재가 강화될 수 있다.

한편 지난 1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의 과징금 기준을 과거 산업재해 사례에 가상 적용하면 반복적인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경제적 제재 규모가 9천억 원을 웃도는 것으로 분석됐다.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노동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월27일부터 올해 6월30일까지 1년 이내 노동자 3명 이상이 사망한 사업주는 36곳으로 사망사고 114건에 204명이 숨졌다. 윤 의원이 같은 사업주의 연도별 발생 사례를 구분한 45건에 과징금 최고 상한을 가상 적용한 결과 부과액은 모두 9494억 원으로 추산됐다. 다만 이는 안전조치 의무 위반 등이 인정된다고 가정한 금액이다.

▲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가 16일 부산 동구 민주당 부산시당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부산시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향후 국회에서는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대표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예방적 과징금 도입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 의원안은 추락·끼임·충돌·화재폭발·질식 등 핵심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법률에 명시하고 의무 위반 시 최대 3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9월1일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된 뒤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노동부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입법 전망에 대해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이 9월1일에 국회 상임위에 상정이 됐으니까 저희가 별도로 법을 만들거나 할 필요는 좀 낮아 보인다”며 “다만 추후에 어떻게 할지는 노사나 이런 쪽의 의견을 듣고 협의하면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부안 제출 여부에 대한 물음에 “나중에 상황이 바뀌면 (정부안을) 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일단 박 의원안 중심으로 논의를 해야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향후 국회 논의에서는 대통령이 언급한 매출액 연동 방식과 박 의원안의 최대 30억 원 정액 상한 방식 가운데 어떤 부과체계를 채택할지, 위반행위의 정도와 횟수에 따라 기업별 제재 수준을 어떻게 차등화할지 등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권석천 기자